나, 너를 만나 행복했다. 그 행복으로 이 시절을 견디다

▲ 나는 오직 글 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 지은이 : 원재훈 / 펴낸곳 : 예담 / 15,000원 / 567쪽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 혁명의 결과 왕권을 타파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 자유, 평등 등의 가치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을 근ㆍ현대의 특징이라 할 때, 현대의 기업에는 그러한 헌법적 권리가 사실상 유보되고 있다는 측면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책을 많이, 깊이 읽고 독서근육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의무감에 책을 읽는 내가 있다. 좋아하는 작가만 쫓는, 베스트셀러만 겨우 읽는 내가 있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나는 어디로 갔나? 안되겠다. 정말 원하는 독서를 하고 싶을 때까지 책을 멀리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하여 나는 2014년 1월 1일, 스스로에게 절독선언을 했다. 
 
그런데, 맙소사! 숨겨져 있는 좋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것도 재미있게.
나를 사로잡은 책, 어떤 독서가 나를 행복하게 했던가? 고맙게도 떠오른 책이 있다.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다소 날카로운 톤의 제목이 더 마음에 들었다. 서문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원재훈’이라는 필자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서문만으로 크게 공감하며 이 책이 나를 사로잡을 거라는 행복한 예감이 들었다. 이 책은 원재훈이라는 시인이 작가들을 인터뷰하여 쓴 책이다. 글을 쓰는 이들의 솔직한 삶이 전해지는, 꽃이라는 작품을 피우기 전에 어떤 뿌리를 가졌으며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작가 본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작가들의 인터뷰가 대거 등장하는 (물론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있다)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순수하게 책에 몰입했다. 

 이 책은 정현종 작가부터 성석제, 은희경, 윤대녕, 공지영, 김연수, 신경숙, 윤후명, 조정권, 정호승, 김형경, 김용택, 도종환, 문태준, 박상우, 전경린, 조경란, 구효서, 이순원, 김선우, 김인숙 작가까지 원재훈 시인이 만난 우리 시대 작가 21인의 행복론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들자면 ‘시인은 자기 삶 견디며 남의 삶 견디는 존재’ 시 완벽주의자 정현종 작가, ‘깊은 슬픔의 강 지나야 그 물결 위에 기쁨이 새겨져요’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쓰는 소설가 신경숙, ‘외로움은 상대적이지만, 고독은 절대적이죠’ 인간의 그늘 속으로 들어간 시인 정호승, ‘시 쓰던 시절 행복했죠, 소설 쓰는 지금? 재미있죠’ 살청의 작가 성석제가 떠오른다. 

 시인이 쓴 글이어서 그런지 그의 글은 울림이 있다. 인터뷰에 앞서 그 작가를 만나기까지 글의 서문처럼 접근하는 방식도 독특하고 재미있다. 

 ‘이러한 이력을 종이에 쓴다면 무거워 들기 힘들다. 단, 선생의 시 한 편은 날개를 달고 있다. 그래서 가볍게 우리에게 날아오는 것이다. 선생의 가볍고 환한 시는 이러한 육중한 바위 덩어리와 같은 이력을 통해 나오는 샘물이고 어둠 속에 별이다.’ 필자가 말하는 정현종 시인의 이력이다.

또한 그의 인터뷰에는 그 작가에 대한, 그 작가를 움직인 독서를 포함하고 있다. 작가 과거의 독서와 현재의 독서를 비교해가며 책에서 책으로 꼬리를 물고 있다. 그 책을 당장 읽고 싶어 몸부림치게 만든다. 단순히 작가의 정보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그와의 인연을 엮으며 그 작가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그 책에서는 사람과 사랑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작가 성석제의 사표,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친 형과 국어선생님, 무협지와 바둑에 대한 사랑, 재치 있는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형 대신에 읽은 무협지에 빠져들고 그 덕분에 지금의 독서 속도를 얻게 되고 바둑이 50%, 만화가 25%를 차지할 정도로 바둑에 큰 흥미가 있었던 그의 중학교 시절, 바둑을 좋아하는 국어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게 되는 사연과 그 인연이 재미있다. 

 정호승 시인은 본인의 서정이 인간을 이야기하는 서정이라고 했다. 꽃 하나를 보아도 자연물을 보아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고 본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서정이 묻어나온다. 사실 나는 여행사에서 엮어준 인연으로 몽골을 정호승 시인과 동반한 적이 있다. 문득 그의 인터뷰를 읽다가 그 곳에서 우리가 만났던 낙타소년을 기억했다. 낙타를 매일 몰고 다니는 낙타소년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윽히 그의 눈을 바라보던 정호승 시인, 그러나 어느 날 대문 앞을 지나다 끌려가 마구 폭행을 당한 것처럼 가난이 그의 삶을 패기 시작했던 것도, 신춘문예로 등단해 장학금으로 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절박할수록 시가 있는 삶은 우리의 감정을 울리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가 신경숙도 이 책에서 만났다. 그녀는 지금도 주인공의 죽음을 아파하고 소설 속 주인공들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정말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그녀를 떠올리면 작은 외딴방에 혼자 있는 모습이 강하게 기억된다. 필자는 그녀의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에 그녀가 말했다. ‘억지로 되는 건 없어요. 소설은, 아니 모든 작품에는 그것만의 운명이 있는 것 같아요. (중략) 제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제가 진실로 쓰고 싶은 것을, 쓰는 동안 정성을 다할 거예요.’

 신경숙 작가의 말처럼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니체는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기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고 했다. 고통의 꽃, 문학과 예술. 세상에 문학과 예술이 존재하는 한, 나에게 있어 책과의 인연은 운명이라 믿는다. 나는 우습게 극단적으로 절독선언을 했지만, 다시 책을 만나 마음 열기를 반복할 것이다. ‘꼼꼼한 독서는 일종의 예술행위’라는 필자의 말처럼 정성을 다해 책을 읽을 것이고 책 읽는 동안 행복할 것이다.

나도 필자처럼 그녀의 책 ‘깊은 슬픔’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본다.

나, 책을 만나 행복했다. 그리고 그 행복으로 이 시절을 견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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