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를 기반으로 새로 선 캠퍼스

1978년 10월, 문교부는 서울시내에 소재한 대학에 모집정원 증원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대신, 지방 분교의 설립을 통한 증원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정부 방침에 따라 우리학교는 1978년 10월 7일 경주분교의 설치를 인가 받았다.

당시 우리학교가 승인 받은 모집정원은 한의예과 등 10학과 400명이었다. 신라문화의 발상지인 경주에 분교가 설립된 것은 우리학교의 건학이념과 경주지역 문화가 불교문화라는 공통적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 며, 이곳에 대학이 들어서는 것은 단순한 외적확장 이상으로 민족문화사적으로도 큰 의미를갖는 일이었다. 또 한의예과가 신설된 것은 의과대학이 없던 우리학교의 숙원사업 중 하나가 해결된 것으로, 향후 경주대학 발전에도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분교 설립이 확정되자 우리학교는 1978년 11월 27일에 건설위원회를 발족하고, 2월 23일에는‘경주대학 건설본부’를 신설하였다. 경주대학이 들어설 부지는 월성군 견곡면 금장리 일대 18만 6,000여 평이었다.
학교당국은 경주캠퍼스 조성을 위한 4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이 기간 중 대학본부·도서관·박물관·대강당·학생회관·의대 부속기관·교수아파트 등 총 45개 동에 연건평 1만9,380평 규모의 건물과 부대시설을 건설하기로했다.

경주대학은 신입생 모집 첫해인 1979년도에 400명의 학생을 모집하고, 3월 1일부터 개강하였다. 초기에는 강의실 등 교육시설이 부족하여 인근 고등학교 건물을 사용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캠퍼스 조성계획에 따라 차례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점차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1979년 6월에 착공한 인문사회학관이 1년 3개월만인 1980년 9월에 완공되었고, 1981년 3월에는 한의학관이 완공되었다. 또 1982년 1월에 기숙사가 완공되었으며, 1983년 2월에는 도서관이 완공되었다. 이어 1984년에는 경대교(慶大橋)와 경주시 동천동의 교직원아파트, 실내체육관, 학생회관 등이 들어서 명실공이 대학캠퍼스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경주대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경주지역 최고의 명문캠퍼스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한의예과를 중심으로 영남지역의 우수 한 인재들을 유치하고 지역사회에 평생교육의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산학연 연계를 통하여 영남지역 경제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용범
소설가·동국 100년사 대표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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