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 명제 남긴 명저

  영화 ‘변호인’에서 한 권의 책이 법정에 등장한다. 바로 E.H.카아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등장인물 진우(임시완 분)는 친구들과 이 책을 읽고 모진 고문을 당한다. 불온서적인 이 책을 읽은 것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변호인 송우석(송강호 분)은 이 책이 불온서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서 고군분투한다.

  카아는 영국 외교관으로서 소련의 전문가였다. 따라서 소련을 연구하고 다량의 서적을 남겼다. 반공 개념이 철저했던 1980년대, '역사란 무엇인가'는 영화에서처럼 금서가 되었다. 그럼에도 대학생 독서모임 등에서 널리 읽혔다. 나아가 한국사를 진보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당대의 젊은이들에게는 필독서였다. 시간이 흘러 불온서적들이 해금되고 이 책은 불멸의 고전으로 남았다. 근래에 영화 ‘변호인’의 흥행과 더불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은 사실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서 골라낸 것들이다. 무슨 이유로 선택된 것일까? 간단히 말해 현재에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다. 반대로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것이 카아가 말하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즉,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인 것이다.
 
  이 책은 1961년 카아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강연한 것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역사가에 대한 설명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역사가가 과거를 말할 때는 정확한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한편 역사가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역사는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의 대화여야 한다.
 
  또, 역사는 과학과 같이 원인과 결과를 연구한다. 그러나 역사는 과학과 달리 종교와 도덕관념을 무시할 수도 없고,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이에 따라 역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역사가도 계속해서 새로이 과거를 재해석한다. 카아는 세계는 계속해서 진보한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역사도 진보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역사를 보수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관점에 대해, 갈릴레오가 남긴 유명한 말로 마무리한다.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
 
  곧 대입수능시험에 국사 과목이 필수로 지정될 예정이고,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편에서는 특정 시각을 담은 역사교과서 채택에 관한 찬반 여론이 쟁쟁하다. 올바른 역사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할 때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은 중요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0년대에 발간되었다. 그럼에도 카아의 목소리는 아직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단순히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현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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