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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신문 창간 특집] 인물로 본 동대신문 64년언론 · 교육 · 정관계 등 진출해 종횡무진
  • 남우정 수습기자
  • 승인 2014.04.14
  • 호수 1549
  • 댓글 0

   
 
동대신문이 창간 64주년을 맞이했다. 동대신문의 역사는 해방이후 한국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큰 걸음을 걸어왔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그리고 대안을 찾아가는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동대신문은 쉽지 않은 역사를 기록해왔다. 그 쉽지 않았던 기록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젊은 동대신문의 기자들이 함께 했다.

그들은 대학신문 기자를 거쳐 사회에 진출해서도 언론과 교육, 정치, 관료, 기업인으로 활약해오고 있다. 동대신문이 지나온 64년의 역사와 동대신문이 배출한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자.

50-60년대 기자·교수등 활동 활발

1947년에 동대신문의 효시인 ‘동국월보’가 창간됐다. 하지만, 일부 논문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면서 배부되지 못한 채 압수됐다. 이후 1950년 4월 15일 당시 정치학과 학생이었던 신국주(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총장서리 역임) 동인 등이 주축이되어 동대신문이 창간된다.

하지만 6월 2호 조판 중 ‘6.25 한국전쟁’이 발발됨에 따라 발행이 중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2년 6월 피난지인 부산에서 2호를 속간하지만 조연현 동문의 ‘동국대학과 나’라는 글이 문제가 되어 배부되지 못했다. 1953년 4월 서울로 돌아와 양주동 교수의 지도로 ‘동대월보’ 3호가 속간된다.

1960년에는 주간제를 두고 초대주간에 정태용 동문이 취임했다. 1961년 7월 5일에는 대학신문 사상 최초의 호외를 제작해 배포되기도 했다. 동대신문은 ‘동대월보’, ‘동국월보’, ‘동대신보’, ‘동대시보’ 등의 제호를 거치고 1962년 7월 6일 현재의 제호인 ‘동대신문’으로 제호가 고정되었다.

1963년 ‘동대학술상’와 ‘전국 고교생 문학 콩쿠르’를 제정했다. 1965년 6월 영문학회에 의해 창간된 영자신문 ‘The Dongguk Post’를 자매지로 인수했다.

이 시기는 동대신문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 아래에서도 활발한 학생기자들의 활동이 있었기에 동대신문은 결코 암울하지 않았다. 이때 활동했던 대표적인 동문으로는 동국대 전 총장 신국주 동문(사학 46), 세종대 전 총장 이종출 동문(국어국문 50), 전 동국대 교수이자 시인 이형기 동문(불교 51), 국회의원을 역임한 임덕규 동문(법학 56), 한국출판협회 이사 윤청광 동문(영어영문 59), 전 동국대 교수 송재운 동문(철학 60),전 MBC 제작국장 이창식 동문(사학 62), 전 동국대 교수 이황우 동문(경찰행정 63), 전 연합뉴스 기자이자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정남기 동문(경제 64) 등이 학생기자로 활발히 활동했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1975년 4월 본지 창간 25주년 기념 동대신문 논설집 ‘대학의 이상’을 발행했다. 1980년 5월 13일 ‘유신독재 반대 각계 시국선언문’은 주요 내용이 삭제된 채 하얀 여백을 남기며 게재되었다.

1983년 4.19기념호로 발간예정이었던 853호 동대신문은 4.19와 관련된 기사들을 써 배포 금지를 당해 신문을 모두 빼앗겼지만 간신히 1000부를 빼돌렸다. 그 후, 853호를 인정하지 않는 학교 당국과 학생기자들의 뜨거운 대립 결과 853.4호라는 지령으로 합의를 내렸다.

1988년 1000호 기념사업으로 칼럼선집 ‘달하나 천강에’ 및 동대신문 축쇄판 제 1권을 발행했다. 1989년 3월부터 전면 가로쓰기 체제로 변경했다. 이 시대는 유신정권, 제5공화국의 시대로 언론이 자유롭지 못했고 사전 검열을 받아야만 했다. 기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이다.

이때 활동했던 대표적인 동문으로는 전 KBS 9시뉴스 앵커 박대석 동문(경영 68), 경향신문 전 편집부국장 김택근 동문(국어국문 75), KBS CP 김학순 동문(무역 79), 문화일보 편집부국장 최중홍 동문(국어국문 81), 불교방송 국장 남선 동문(영문 81), 아시아경제 편집부국장 허진석 동문(국문 83) 등이 있다.

90년대~ 침체속 꿋꿋한 활동

1996년에는 무장간첩 사건을 다룬 게시판 기사로 학생기자 구속되는 필화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약 한 달 동안 신문발행이 되지 않았다. 1999년에는 제호를 한글로 변경하고 인터넷 신문 기사서비스 제공을 시작한다. 2007년에는 학내 언론 통합기구인 동국미디어센터가 출범하며 동대신문은 산하기구로 개편되었다.

이 시기에는 연합뉴스 이집트 특파원으로 파견된 한상용 동문(일어일문 95), 미국 앨라배마 주립대 교수인 김용환 동문(신문방송 96), 경향신문 기자 이성희(문예창작 00), 경향신문 기자 송윤경 동문(사회학 01), 입법고시에 합격해 국회사무관으로 근무하는 최성민 동문(경제 02), 경인일보 기자 윤설아 동문(신문방송 08) 등이 활발한 활동을 했다.

남우정 수습기자  woojung212@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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