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종필 법학과 교수, 본사 논설위원

지난 2월, 과거 군사정권 하의 공안사건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과 부림사건)에 대 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로써 사 건 관련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삶 을 옭죄어 온 오명의 굴레를 벗은 셈이다. 하 지만 검찰의 상고로 진실을 향한 마지막 싸 움은 아직 진행중이다. 무죄판결을 놓고 사 회 일반은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반면 정치 노선을 달리 하는 세력 간에는 반응이 엇갈 린다. 일각에서는 검찰 및 사법부의 사과와 책임 있는 자들의 응징을 촉구하고 나선 반 면, 다른 일각에서는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 거나 영화 ‘변호인’이 재판부의 판단에 영 향을 미친 양 의아해 한다.

진실이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에 따라 다를 리는 없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진실 을 가리는 것이 녹녹치 않음은 분명하다. 당 사자의 선이해에 따라 사건에 대한 주장이 다르기 일쑤다. 자백사건이라도 그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지 혹은 어떤 정황에서 이루 어졌는지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가 령 ‘자식을 둘로 나누고자 하는 여자라면 결코 친모일 리 없다’는 일종의 경험칙에 기 댄 솔로몬의 재판에서도 완전한 실체로서 의 진실은 유예되어 있다. 억울함의 하소연 은 어떤 사건에서도 생길 수 있다. 권위주의 적 정치체제나 권력 하에서는 더더욱 그러 하다. 형사재판이 진정 민주적 법치국가원 리(특히 적법절차원리)를 먹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에 있다.

재심재판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것도 이 러한 적법절차의 핵심축인 증거법원리를 그 르쳤는지 여부였다. 두 사건의 재판부는 각 각 국과수 필적감정의 신빙성과 불법구금으 로 인한 자백의 임의성을 문제삼아 무죄를 선고했다. 유서대필사건에서는 중요한 증거 가 국과수의 필적감정뿐인데다 그 감정인이 1심 선고 뒤 다른 사건에서 뇌물을 받고 허 위감정 혐의로 구속된 점, 피고인 측이 제출 한 다른 감정서의 감정결과는 배제된 점 등 적지 않은 허술함이 엿보인다. 부림사건에 서도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 기에는 불법구금, 자백강요 등 중요한 절차 상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유죄인정에 합리 적 의심의 여지가 남아 있다면 유죄판단은 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재심재판부의 무죄선 고는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 로’원칙의 법치국가적 함의를 재조명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권력의 그늘 아래서 범죄자로 내몰렸던 관련자 모두가 일단은 덧씌워진 무거운 멍 에를 벗긴 했으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 과 참담함으로 얼룩진 과거의 자화상에서 얼마나 쉽게 회복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사법종사자들의 직업윤 리 제고, 민주적 검찰상과 법관상의 재정립, 건강한 감정다원주의의 정착, 증거재판주의 의 고양, 사법기관의 법왜곡에 대한 대응장 치 마련 등이 그 예들이다. 동시에 대법원의 최종판단에 따라 과거의 잘못에 대한 검찰 과 사법부의 진정어린 사과도 있어야 할 것 이다. 그럴 때에만 참된 회복을 위한 신뢰가 싹 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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