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만교육 인생성장의 지침서

梵(범)과 我(아)를 인식하여 宇宙(우주)의 根源(근원)에 접근해

 

인간의 文化(문화)가 종교적 전통에 의하여 조장되어 졌을 때, 敎育(교육)은 실제행동분야에서 분리시킬수가 없다. 교육은 사회생활 일상생활의 복잡한 유대관계, 宗敎(종교)에 대한 의식절차 및 믿음, 우주, 인간등 생활 전체를 총괄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은 교육의 주제에 관한 것을 古代文化(고대문화)에 대한 특정한 도덕적 규범이나 종교적인 계율에 적혀있는 聖典(성전)에서 찾으려 한다.

印度(인도)의 경우 Vedas-吠陀(폐타), 印度(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문학으로 婆羅門(파라문)의 근본성전이나 Upanishads-優波尼沙土(우파니사토), 개인아와 우주와의 일치를 주장한 고대 힌두교의 철학서적으로 印度(인도)의 철학, 종교사상의 근원이 되는 Veda 文學(문학)의 후기작품에서 인도의 敎育(교육) 및 철학의 일면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경의 Bhagavad Gita 및 Manu의 儀式聖典(의식성전)에서 고찰할 수 있는데 이러한 聖典(성전)을 A.D 500년경 완전한 체재를 갖추어 Bramans의 도덕과 법률이 되었다.

上記(상기)의 설명과 더불어 인도의 이론적 사상체계와 모든 學說(학설)은 Upanishad와 Bhagavad Gita Veta 파의 수우트라의 세가지학문 Psrasthanatraya의 주석에 기초를 두고 최고의 원리로서 Brahman과 본질적인 個我(개아) Atman의 차별상 정신균질 양계의 상관상, 明知(명지)와 無明(무명)에 대한 思辨相,(사변상), Bhakti(信愛(신애))의 實踐相(실천상), Karma(業(업)) Samsara(輪廻(윤회)), Vimukti(解脫(해탈))의 究明(구명)을 일삼는다. 學派(학파)와 學說(학설)의 중요한 것을 들자면 Sankara學派(학파)의 Kevadvaita(絶對不二論(절대불이론)), Bhaskara派(파)의 制限不二論(제한불이론), Nimbaruka파의 二元一元論(이원일원론), 本性的不一不異說(본성적불일불이설), Vallabha파의 純椊一元論(순졸일원론), 淸爭不二論說,(청쟁불이론설), Madhavabk의 二元論(이원론), Visnusvamin파의 二元論算(이원론산)이 있다.

印度哲學(인도철학) 및 倫理(윤리)에서 인생의 目的(목적)으로 다음 세가지를 實現(실현)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Kama(愛慾(애욕)), Artha(利益(이익)) Dharma(法(법), 倫理的規範(윤리적규범)을 實踐(실천)하기 위하여 Vatsyyayana의 Kama-Sutra, Kautilya의 實利論(실리론), 제종의 法經(법경) Dharmasutra 및 法典(법전)을 硏究(연구)하고 이 以外(이외)에 Moksa(解脫(해탈))을 추가한다.

종교적 실천에 관하여 첫째 Karman(行(행)), 둘째 Jnana(認識(인식))-우주의 진리를 인식함으로서 解脫(해탈)의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것, 셋째 Bhakti(信愛(신애)) 최고신에 대하여 열열하고 순수한 신앙을 바쳐서 최고신을 기쁘게 하고 그 은총에 의하여 윤회의 세계에서 이탈하려고 한다.

Bhraman Atman 에 의하면 各個我(각개아)가 대립하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거짓모습이며 勝義(승의)에서는 大我(대아)에 불과하다. 타의 個我(개아)는 자기와 동일한 또는 연속되어있는 것이란 점에서 타인을 사랑한다는 도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일반적인 善業(선업)은 善(선)한 果報(과보)를 惡業(악업)은 惡(악)한 果報(과보)를 가져온다는 因果應報(인과응보)의 관념을 가지고 있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언제나 善(선)한 일을 하여야 하고 個我(개아)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人類全體(인류전체) 및 세계평화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환언한다면 Upanisada의 中心(중심)과제는 개인과 宇宙(우주)와의 本質(본질)과 양자의 관계를 중심과제로 하고 개인의 생명은 Atman(我(아))인데 이것은 생명의 근원이고 모든행동의 원동력이 되고 우주에 있어서도 中心生命(중심생명)인 Brahman이 존재하여 一切現象(일체현상)을 관철하는 原理(원리)가 되고 동시에 神(신)이 創造神(창조신)으로서 우주를 창조 지배한다고 믿었다.

이범과 我(아)는 본질상 동일체로서 我를(아) 認識(인식)하면 범을 인식하여 宇宙(우주)의 生命(생명)에 참여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태가 解脫(해탈)이며 1차별관념을 벗어나 理想(이상)의 心境(심경)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반드시 종교적 실천을 필요로 하고 윤회와 業(업) 思想(사상)이 Upanisada에서 발생하였고 이사상이 후에 佛敎(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生活(생활) 그 자체에서 實存(실존)의 流出(유출)이 나타나는 佛敎(불교)에 대하여 깊고 심오한 경지, 실생활속에서의 平和(평화), 마음의 安定(안정) 및 和平(화평)을 찾고 實現(실현)을 찾기 위하여 Nirvana(涅槃(열반)), 모든 번뇌, 建理(건리), 建事(건사), 見惑(견혹), 四諦(사체)의 理(리)에 建(건)한 見道所斷(견도소단)의 번뇌, 建事(건사)는 修惑(수혹) 물건의 事相(사상)에 建(건)한 경계 때문에 修道所斷(수도소단)의 번뇌를 말하며 貪(탐)·瞋(진)·痴(치)·慢(만)·疑(의)·見(견) 6종을 들어 이것이 모든 惑(혹)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근본번뇌라하며 그중에 見(견)의 五理便(오리변)을 나누고 오둔사와 합하여 열가지 근본번뇌라 한다.

興舍(흥사)는 견혹에 88수혹에 10 및 10전을 보태어 108번뇌라하고 唯識(유식)에서는 견혹 112에 수혹 16을 합하여 128의 근본번뇌를 둔다. 다시 번뇌는 義(의)와 구별하여 結(결)⦁使(사)⦁縳(전)⦁取(취)⦁蓋(개)⦁前(전) 등의 별칭이 있는데 - 이와 같은 모든 번뇌를 없앤 至福(지복)의 경지인 열반의 경지로 들어가기 위한 것은 죽음으로부터 다시 육신을 부여하여 영혼이 다시 새 육신을 얻어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Nirvana 열반은 인간영혼의 眞正(진정)한 特性(특성)을 표현하려는 현명한 자기가 좋아서 하는 행동이고 World Spirit 세계적인 우주정신의 본질적인 결합을 위한 행동이다.

善(선)과 知識(지식)에 依(의)하여 감정이나 원한 앙심, 심술과 같은 악으로부터 벗어나 眞正(진정)한 본심에 의하여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고 악으로부터 벗어나 自由(자유)분망한 善(선)과 知識(지식)에 依(의)하여 실천하고 연구해야 한다. 자기본위의 생각이나 행동은 칭찬할만한 일이 못되나 非利己的(비이기적)인 행동도 존재할수 없다. 왜냐하면 vedas의 연구는 결국에 가서 自愛的(자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위에 있어서 정당하게 지배되어진 사람은 不滅(불멸)의 世界(세계)로 갈 수 있고 그가 希求(희구)하는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다.

자기실현의 탐구와 저 世上(세상)과의 조화는 印度敎育哲學(인도교육철학)의 목표였고 특히 形而上學的(형이상학적)인 면에 있어서 헌신을 강조 하였다 할지라도 결코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실현과 저 세상과의 조화는 기쁨에서 자기 운명을 개척하여 나아가고 의무와 사명, 德(덕)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은 지역사회와 가정에 대한 책임 유년기⦁소년기⦁청년⦁장년기 등 여러 형태의 발전과정의 단계에서 개인이 교육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단계와 환경을 통하여 이룩될 수 있다.

성장과정에서 이러한 발전과정이 없다면 인간은 聖者(성자)가 될 수 없고, 성직자는 발전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뛰어 넘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Brahman의 敎育(교육)은 神學(신학)에 적용될 수 있는 정도의 ‘人生科學(인생과학)’이다.

自然(자연)과 人間(인간)의 속성은 神(신)의 뜻을 비추어 주기 때문에 獨裁的(독재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靜的(정적)인 社會(사회), 특히 敎職制度(교직제도)를 신봉했다. 질서가 무너질 때 生(생)의 神聖(신성)한 근원으로 되돌아오게 되므로 원상상태로 복귀시킬 수 있게 된다.

다음은 Arjuna와 Krishna 사이의 對話內容(대화내용)을 간주린 것으로 人間行動(인간행동)의 方向(방향)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명상과 行動(행동)의 두 길 중에서 어느 길이 더 좋습니까?

이 世上(세상)을 살아가는데 두 길이 있다. 知的(지적)인 면에서 Sankhyas(실제 行動(행동))을 通(통)하여 일하는 것이고 yog(靈的(영적)인 명상)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精神的(정신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분리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어누 누구도 實際行動(실제행동)을 기피할 수 없고 행동을 단념하여 完全(완전)하게 될 수 없다.

언제나 명상과 행동은 大自然(대자연)의 法則(법칙)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幻想(환상)의 행동을 뜻한다. 생각하고 探究(탐구)하고 行動(행동)하는 것은 태만보다 우세하다. 이 세상에는 人間(인간)이 하여야 할 일이, 연구하여야 할 일이 山積(산적)되어 있으나 단지 人間(인간)이 알지못하여 게으르게 태만하게 時間(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苦痛(고통)으로 충만되어져 있는 것 같은 이 세상은 고통이 없을 수도 잇고 信仰(신앙)으로부터 영혼의 믿음으로 자유스러워 질수 있다.

人間(인간)은 神(신)의 目的(목적), 신의 바라는대로 신의 뜻대로 잘 수행한 것이다.

神(신)을 섬기고 믿어라. 그러면 자비의 은혜를 입을 것이오,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운 人生(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위대한 世界歷史(세계역사)의 큰 바퀴를 돌리려고 노력하는 것을 도와줄것이며 잃어버린 生(생)을 다시 찾아 보람찬 人生(인생) 最上(최상)의 至福(지복)의 경지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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