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통의 목적에 접근

연극은 人間(인간)主體(주체)의 藝術(예술)이다. 따라서 연극예술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인간행위의 진실을 추구하고 深化(심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것은 현대극이나 근대극, 중세극이 그랬고 희랍의 고전극 역시 매한가지였다. 희랍의 연극이 인간의 운명적 깊이를 묘파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현대극의 歸贊地(귀찬지)가 되고 있다.

현대극은 근대극으로부터 급진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은 세 가지의 類型(유형)으로 각기 원래의 목적에 다다르고 있다.
첫째는 표현주의와 상징주의가 발표 변형된 신표현주의, 혹은 현대상징주의이며 이 계열에 속하는 작가로는 미국의 유명한 테네시 윌리암스가 있다. 그리고 윌리암스와는 많은 차질을 보이고 있지만 운명적 비극성의 추구에 집착하는 불란서의 장아누이와 독일의 브레이트가 있다.
둘째는 근대극의 입센에게서 볼 수 있었던 사회성을 다분히 내포한 작품계열의 아서 밀러를 들 수 있다. 밀러는 한 때 공산주의자라는 지목까지 받으리만큼 사회비판 사회부정 폭로에 앞장섰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냉철한 비판가인 동시에 사회적 현실주의자이다. 엄격한 의미로 영국의 ‘성난 젊은이’ 존 오스본도 이 계열에 속한다.
이 ‘앵그리 영맨’이 외치는 주장도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사회적 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회의 부정과 사회제도의 비안간화에서 과감히 투쟁하는 작가적 자세를 모색하는 것이다. 셋째는 극행위의 본원성으로 봐서 가장 희랍극에 근접한 방법이다. 즉 알벨 까뮤와 장 폴 싸르트르를 대표로 하는 실존주의와 이에 도전하는 사무엘 베케트와 이오네스코, 아다모프 등을 중심으로 한 소위 反劇作家(반극작가)의 무리들이다. 그러나 위에 제시한 세 가지 유형은 기껏 폴-티가 종합 분류한 ‘극의 36 경우’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36 경우’ 안에서 좀 더 인간의 생명적 진실을 추구하는 모든 예술의 공통적 목적에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연극행위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진실에 너무나 육박하고 있다. 인간의 주체 (배우의 행동)를 재현하는 행위와 관객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다 같이 인간실존의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가 되고 있으며 인간의 현대희곡(극의 내용) 이 모색하는 방향의 궁극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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