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땐 정구부 주장, 축구부 조직하기도

敎育界(교육계)에 20여년간 獻身(헌신)

 

부산직할시 교육위원회 李鍾源(이종원)(49) 장학관은 본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興亞科(흥아과)를 42년 전에 졸업한 교육계의 중진-.

교육위원회라면 보통 학무국과 관리국으로 나뉘어 관리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교육청의 살림 전반을 맡고 학무국에서는 주로 각 학교 학생들의 장학관계와 교직원들의 人事(인사)관계를 맡아보는 곳이다. 부산시 교육청은 모름지기 직할지청으로서 손색없는 면모를 갖춘 전통 있는 교육위원회. 또한 교육위원회의 장학관이라면 교육감 바로 밑의 학무국장, 중등교육과정, 초등교육과장과 같은 지위로 학무국에선 가장 높은 자리다.

“그땐 일제 때인지라 조국, 민족을 위한 투쟁활동이 학생들의 본분처럼 되었었지요.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면 학생들의 반수 이상이 사상범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었지” 하며 당시 나라를 잃은 학생들의 민족애와 조국애에 언급을 하면서 요즘 학생들은 그런 감정들이 차츰 희박해간다고 걱정이다.

운동을 좋아한 李(이)동문은 재학 시에 정구부 주장을 역임했다. 축구부를 처음으로 조직하여 보성전문학교와 겨루었다면서 그 시절을 더듬기도-.

22세 때 대학을 졸업하고 만주로 가서 4년여를 지낸 적도 있다. 일본에서 해방을 맞아 귀국 후 敎育(교육)계에 투신했다.

64년 9월 종립학교인 해동고등학교 교장직을 떠나 교육청으로 옮겼다. 李(이)동문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못 주는 것이 미안할 뿐이라고 모교를 적극 뒷받침할 수 있는 동창회를 육성하는게 희망이라면서. “불교정신을 본받아 민족애와 자비심을 가진 東大生(동대생)다운 특성을 살려주기”를 후배들에게 부탁했다.

83歲(세)의 老母(노모)를 모시고 부인 朴珍姬(박진희)(43) 여사 외 4男(남) 1女(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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