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환 유시집

 

詩人(시인) 李星煥(이성환) 동문의 遺稿集(유고집) ‘銀杏記(은행기)’가 나왔다.

31세를 1期(기)로 유명을 달리한 지 벌써 2年(년)이 된다.

어린 날부터 詩(시)와 더불어 살아온 그는 그의 詩(시)만큼 早熟(조숙)했었고, 그렇게 고독했었고, 그렇게 빨리 갔었다.

“우리는 그대가 이루어 놓은 業績(업적)이 量(양)은 적지만 그 質(질)로는 우리 詩文學史(시문학사)에 오래 빛나는 것이 될 것을 믿기 때문에” 오직 慰勞(위로)로 삼을 밖에 없다는 것이 未堂(미당) 徐廷柱(서정주) 詩人(시인)의 序(서)이다. 너무도 빠른 夭折(요절)이었지만 그가 남긴 詩(시)는 빛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는 中學(중학)시절에 이미 ‘黃昏線(황혼선)’ (1951)이란 詩集(시집)을 가졌다. 高等(고등)학교 때에 ‘별과 나’ (1954), 東大(동대)國文科(국문과) 재학 중 詩壇(시단)에 등장, 졸업하던 해에 詩集(시집) ‘구름은 울지도 못한다’ (1959)를 냈다. 濟州大學(제주대학) 助敎授(조교수)로 在職中(재직중)엔 ‘現實(현실)’ 同人(동인)으로 활약하면서 ‘詩(시)의 意味論(의미론)’을 깊숙이 파고들기도 했다.

-國會議事堂(국회의사당)에도 어둠이 덮혀오면서

찬바람을 쓸어 모으는 노역부여

너에 비하면 國會議事堂(국회의사당)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

<‘勞役夫(노역부)’의 1節(절)>

星煥(성환)의 遺詩集(유시집) ‘銀杏記(은행기)’에는 그의 遺作(유작) 18편과 李(이)姓(성)敎(교), 朴(박)在(재)森(삼)등 文友(문우)들의 ‘追悼(추도)’의 글을 묶고 있다.

‘勞役夫(노역부)’에서도 보여지듯이 그의 詩(시)는 象徵的(상징적)이었다. 言語(언어)를 참으로 알았고 아낄 줄 알았다. 詩(시)로서의 이러한 達觀(달관)은 그의 끈질긴 노력에서 매듭을 이룬 것들이다. 詩(시)의 內部(내부)로 숨겨진 크나큰 고통이나 슬픔, 혹은 그런 現實(현실)을 그는 조용하게 추구하다가 他界(타계)한 것이다. 아까운 나이로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詩片(시편)들 속에 그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文藝舍刊(문예사간). 총 84面(면). 값 3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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