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언론과 차별화된 동대신문 만의 목소리 담아내길

동대신문 창간 58주년 기념 좌담회 - ‘동대신문이 나아갈 길’
 
좌 담 자

일  시 : 2008년 4월 2일 오후 7시
장  소 : 동국미디어센터
참석자 : 정희성 (시인·국문 79, 81년 취재부장)
참석자 : 이만섭 (여성발명가협회 부장·인철 88, 90년 취재부장)
참석자 : 김기영 (교수학습개발센터 연구원·교육 95, 97년 편집장)
참석자 : 손상민 (동국대학원신문 편집장·사회 00, 02년 편집장)
사  회 : 이윤재 (동대신문사 편집장)


사회 = 동대신문이 이제 창간 5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중년을 지나 원숙할 나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창간 이후 반 세기 이상을 지나오면서 동대신문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 자리는 동대신문의 지난날을 되짚어 보고 이를 통해 동대신문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지를 이야기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희성(국문과 79학번, 1981년 취재부장) = 제가 동대신문에 입사했을 1979년은 한국사회의 정치적 격변기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가 말기에 접어들면서 대학과 사회곳곳에서 독재권력에 대한 저항이 거세졌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79년 10.26 사태가 일어났고, 정치권력이 진공상태에 빠져들면서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죠.
물론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면서 권력의 핵심에 들어섰던 신군부에 의해 대학도 한동안 침체에 빠져들었습니다. 계엄령이 내려져 휴교가 되기도 했었구요, 휴교기간에도 신문조판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만섭(인도철학과 88학번 1990년 취재부장) = 80년대 말은 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87년 6월 항쟁이 대통령 선거의 패배로 한동안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대학이 사회변혁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그 어느때 보다 자신감에 차있었습니다. 대학도 사회변화를 추동했던 학생의 파워가 강해져 학원자주화에 대한 열망이 컸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사회민주화에서 대학민주화로 시선이 돌려졌던 것이죠.
특히 88년도의 학원자주화 움직임은 다른 대학에서는 보기 힘든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동대신문도 이같은 소식을 호외로 발행해 알리는 한편 심층적인 보도로 학내구성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당시만 해도 신문이 발간되면 학생들이 신문을 접어 다른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편지와 함께 대학생활을 주고 받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김기영(교육학과 95학번, 1997년 편집장) = 90년대 중반은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학생사회와의 갈등이 정점을 이루었던 시기입니다.
특히 한국대학생 총연합(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되면서 학생운동은 와해되기 시작했고, 대중성을 잃은 운동은 구심점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96년 8월에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범민족대회’는 행사불허방침으로 1만여 명의 학생이 17일 동안 학내에 갇혀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총련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사회전반적인 보수화의 흐름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학내에선 한총련의 ‘사수’냐 ‘탈퇴’냐를 놓고 학생사회 내부의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손상민(사회학과 00학번, 2002년 편집장) = 2000년을 지나면서 대학별로 서서히 학생운동이 퇴보하기 시작합니다. 서울대를 시초로 비운동권 학생들이 학생회 선거를 통해 당선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신문도 80년대말 최고조를 이루었던 대학신문 기자들의 조직인 전국대학신문 기자연합(전대기련)이 해체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학내에서도 운동권 동아리들이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고, 학내언론사들도 3D업종의 하나로 인식되면서 기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학생공동체의 와해라고 불릴 정도로 학생사회가 위축됐던 시기입니다.

사회 = 질곡의 역사를 걸어오면서 신문제작에 대한 애정이나 고민도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떤 고민을 하면서 신문제작을 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희성 = 70년대의 대학신문의 화두는 역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조화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학 본연의 사명인 학술적 고민이 근본이지만, 시대의 아픔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저희가 신문을 제작했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의 시기는 그래서 아무래도 저널리즘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일간지 뿐만 아니라 대학신문도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던 시기라 원고가 승인되지 않으면 신문의 한구석이 백지로 인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행간(行間)’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죠. 직접 표현이 안되니까, 에둘러 글을 쓰게 됐고, 독자들은 기자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 것입니다.

이만섭 = 선배님 군인들 사이에서 신문제작 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웃음) 80년대는 민주화의 진전으로 그 어느 때 보다 신문제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검열은 아니었지만, 신문제작이 끝난 후 대학신문 기자를 연행해 조사를 한다든지, 기획기사를 문제삼아 수배를 내린다든지 하는 구태는 여전했습니다.
저희 동기중에도 아침에 등교를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던 적도 있고, 검거명령이 떨어져 한동안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환경속에서 신문제작에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회민주화, 학원민주화를 위해 기여할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이 살아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기영 = 1996년에는 동대신문 기자 구속사건이 있었습니다. 대자보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소나기’라는 코너에 실린 ‘무장간첩 사건을 보고’의 내용 중 일부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자들이 구속되고 신문이 휴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을 거치면서 학생기자들이 위축되기도 했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매체발간에 있어 보다 세심한 검토가 이뤄진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학언론에 대한 탄압이 기자 내부의 자기검열로 이어지지는 않았는가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물론 어려운 시기를 거쳐 나오면서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손상민 =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학내 언론매체의 위축이 눈에 띄게 심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여러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시기에 주간신문으로서 과거의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매체의 지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신문사의 조직문화나 내부의 문제의식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신문제작에 있어서도 한국 대학 전체를 독자층으로 하는 ‘대학 내일‘이나 ’한국대학종합신문‘등이 발간되면서 경쟁지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동대신문도 인터넷 신문 발간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미약한 수준이어서 독자들의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 = 시대는 변해도 기자들의 고민과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동대신문 기자들 역시 고민의 내용은 다를지라도 고민의 강도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현재 동대신문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궁금합니다.
또 앞으로 동대신문이 걸어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한 말씀 씩 주시기 바랍니다.

정희성 = 대학신문은 과거 제도언론에서는 하지 못했던 진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성언론이 다룰 수 없었던 집회나 시위기사도 다루었고, 군사정권에 의해 백지로 신문이 발간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발간된 신문이 학내의 주요 이슈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대학신문은 대학사회의 소통을 주도하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동대신문은 그러한 여론을 주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대학내의 아젠다를 끌어내는 기능이 약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독자들에게 끌려가기 보다는 학내의 주요 이슈를 중심으로 아젠다를 설정하고 이를 내세워 여론을 선도하는 기능을 보완해 다른 대학신문과는 차별화된 동대신문만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만섭 = 저도 선배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여론을 반영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다 보면 대중에 의해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동대신문은 여론을 반영하기 보다는 선도하는 신문이 됐으면 합니다.
특히 다양한 학내의 사안이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역사의식을 가지고 냉철한 시각으로 독자들에게 사실의 전달 뿐만 아니라 진실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의 책임의식이나 실천적 윤리규범도 가져야 할 것이구요.

김기영 = 현재는 정보 홍수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같은 홍수시대에 정작 부족한 것이 바로 ‘물‘이라는 점입니다. 즉 쏟아지는 정보는 많지만 옥석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많은 정보를 가치구분 없이 다루는 무가지와 상업적인 기성언론과 구분되는 ‘홍수속에서 빛나는 물’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엄청난 양의 정보를 걸러줄 수 있는 정보의 리트머스 혹은 정보의 거름종이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손상민 =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양은 늘어났지만, 정작 대학내의 의사소통의 창구는 더 작아지고 좁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대학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정보의 유통은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정작 소통에 장애를 느끼는 구성원들은 더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동대신문이 그러한 의사소통 창구로서의 책임감을 더욱 절실하게 새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 긴 시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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