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기 철학과 교수
평생 교수라고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처지에 IMF 환란이 막 일어났던 직후 참으로 운 좋게 우리 학교 교수로 처음 부임했을 때 단단히 결심했었다. 교수로 뽑힌 것이 너무나 고마와 학생들에게 내가 평생 수련한 학문이 도움 된다면 시간과 체력을 불문하고 내놓을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2천년대 들어 첫 십년기 중반까지는 이런 소망과 다짐이 학생들의 호응을 받는 듯했다.


그러나 2008년 후반기 전 세계를 휩쓴 경제위기 이후 학교 울타리 안에서 누리고 있던 공부의 자유와 행복에 굵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강의 이외의 시간에 학생들과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스터디를 구성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우선은 학생들로부터 오는 배움의 요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대학의 공부라는 것은 강의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심도와 양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강의에서 발전된 주제로 별도의 스터디를 조직하거나 아니면 학기말에 연장 수업을 위해 주말 전체를 털어 온종일 블록 세미나를 매학기 개최했다. 밤늦게까지 종강 세미나를 하고 쫑파티까지 하고 교통이 끊긴 학생들을 내 승용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느라 인적 없는 서울 시내를 동서남북으로 누비고도 흐뭇했었다.

그런데 2008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빈 시간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주말에 알바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아진 줄 한참 뒤에야 확인하고 너무나 속이 쓰렸다. 전공 학부생들의 자율세미나는 학기 중반부터 취업 준비로 대부분의 멤버가 빠져 나갔다. 보다 고급의 능력을 체화하고 삶의 기회를 배가시켜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당장의 생계를 위해 도구적인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학생들의 집안 사정 앞에서 교수가 학생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 없는 현실은 이 시대의 교수들에게 한없는 자괴감을 안긴다.

어느 자리에 갔다가 교수로서 제일 큰 소원이 무엇이냐기에 “학생들에게 공부나 좀 시키고 싶다.”고 했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은 적이 있다. 적어도 대학 시절만은 학생들을 최고급의 인력으로 키워낼 그럴 날은 올 것인가? 최소 학점만 받아 졸업장만 쥐어주고 내보내는 해가 늘어가면서 이러다가는 언젠가 대학 무용론이 터질 듯해 조마조마하다. 제발 내가 정년 퇴임할 때까지만은 그러지 말았으면 하지만, 어디 세상이 내가 바라는 대로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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