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행동하고 나서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고 나서 행동하는 사람,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사람. 붓다는 생각한 다음에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잡아함경 28-2 무명). 무상, 무아의 인식이 있고 나서야 그것이 실천으로 옮겨지는 것이고, 무아의 세계가 정비되는 곳부터 실천의 길은 저절로 뚫린다. 바른 지혜가 있고 나서야 바른 실천이 따르게 된다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는 말씀이다.

요즈음 세간에서는 “천주교 사제가 정치적 견해를 밝혀도 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라고 하지만 친정부적 발언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 반정부적 비판이 늘 세평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비판하는 사람은 종교의 베일 뒤 안전한 위치에 있다고 무책임한 정치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반면에 종교인이야 말로 짓밟힌 인권문제와 유린된 불의에 분연히 마주서야 하는 사명을 띤 존재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논쟁을 보면서, 종교인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를 위해서 소신껏 일을 하는 것을 금지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종교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상 기본권인 참정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간에서는 불교인에 대하여 현실참여가 부족하다고 평한다. 불교인 스스로도 속세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참뜻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옳지 않다고 본다. 불교인 중에도 현실참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듯 던지는 의인들이 많다.

명(明)이 있는 곳에 정념(正念)이 생겨난다. 生이란 지혜라는 뜻이다. 가려진 것이 제거됨으로써 존재가 그 진상을 드러낸다.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무아인 것을 무아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무명(無明)이란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 마음이 가려있는 상태이며, 무명이 원인이 되어 사념(邪念)이 생긴다.

사람이 더러운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괴로움이 그를 따를 것이니
바퀴가 수레를 끄는 짐승의 발을 따름과 같을 것이다.

자아를 발견하여 지상에 낙원을 이룩하자! 대학시절 나를 처음으로 사찰로 찾아가게끔 끌어 당겼던 문구이다. 이 문구를 가슴에 되새기며, 스스로 초심을 잃지 않으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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