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정지(■) - 재생(▶)

구두 소리가 로비 바닥에 닿으며 천천히 리듬을 만들었다. 로비 바닥에는 여러 개의 사각형이 선을 맞대고 그려져 있었다. 선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평형대 위를 걷듯 천천히. 평형대 끝에는 회전문이 있다. 처음 보는 듯 낯설다. 무뎌진 통증과 함께 회전문을 향해 걸어간다. 앉는 것도, 걷는 것도, 뛰는 것도 힘든 나는 회전문 앞에서 가만히 멈춰 선다. 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문을 열고 들어왔더라. 아침에 정신없이 들어왔던 탓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을 당기고 들어왔었나, 밀고 들어왔었나. 자동문이었던가. 그때도 회전문이 있었나. 가만히 서 있어 통증이 잦아들었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발등을 보았다. 검은색 구두코가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몸 안에 박혀 있는 못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만히 서 있어야만 하는 걸까. 햇볕이 건물 바깥의 인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니 고작 한 시간 정도만 흘렀을 뿐이었다. 아침에 나를 보고 재촉하던 경비원이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오후에 비 온다는데, 우산은 챙겼어요?”

 


경비원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이제 다시 볼 일 없는 경비원이었다. 로비의 조명과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조형물이 어느새 익숙해진 듯했다. 비가 오면 걷기가 더 힘들 텐데. 나는 경비원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경비원은 뒷짐을 진 채 로비와 엘리베이터 주변을 걸어 다녔다. 1층에는 나와 경비원 둘뿐이었다. 내 다음 순서인 면접생은 꽤 오랜 시간 면접을 보는 모양이었다.

빛나는 구두코를 보자 쇼핑백에 넣어 둔 운동화가 떠올랐다. 회전문 옆에 선 채 운동화를 꺼내 갈아 신었다. 그동안 평형대를 걷고 있는 것 같았는데, 발바닥이 바닥에 닿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면접을 보던 시간이 아주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다. 운동화 끈을 조이고 구두를 쇼핑백으로 넣으려 할 때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 옆을 지나 회전문을 밀고 지나갔다. 나와 함께 대기실에 있던 사람이다. 그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재킷의 단추를 풀면서 흔들리지 않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나갔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문이 매끄럽게 한 바퀴 돌더니 반 바퀴 더 돌다가 멈췄다. 정신을 차리고 회전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저에게는 특별한 꼬리뼈가 있습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꼬리뼈였다.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발목을 잡다니. 그나저나 엄마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여전히 나는 나사 빠진 로봇처럼 걸어 다니고 있는데.

기우뚱거리며 한 발짝을 뗀다. 몸의 중심이 흔들린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흔들리는 일에는 익숙하니까. 또 지금 내 앞에는 단단한 손잡이가 있다. 팔에 힘을 주어 손잡이를 앞으로 민다. 몸도 함께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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