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함이 도드라져, 엔간해선 손대지 않았을 책 하나를 골라 본다. 도처에 정신병자가 널린 현실이건만 ‘사이코’란 단 어엔 여전히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표지 앞뒤로 붙어있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스티커 는 누군가의 장난질로 여겼다. 도서관 책 몇 페이지쯤이야 예사로 오려내는 세태에서 애교로 봐줄만한 장난으로.

주인공이 애인을 찾아가는 초반부부터 어수선함이 상당하다. 의미없는 대화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 그가 자위 중 떠 올리는 캘빈클라인 광고만큼이나 무의미 한 관념들이 나열된다.

뉴욕의 상류층 여피족인 27살, 베이트 먼의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지금에도 적용될 물질주의 세태의 만연함을 세밀하게 늘어 놓는다. 명품의 나열로 표현되는 그의 일상엔 오로지 물질만이 진득하게 배어있는 것이다.

물질 이면의 공허함이 과도해서일까? 호사 가득한 삶의 빈자리를 베이트먼은 가학적인 섹스, 살인 그리고 식인과 같이 광기로 채워나간다.

당혹스럽게도 이런 과정에 대한 묘사에서 작가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텍스트 너머로 조망할 뿐인 입장에서조차 참담함이 경계를 모를 지경에 이른다.

텍스트가 담아내는 잔혹함이 영상물에 비할까 했는데, 텍스트의 완승이다. 지나버린 단락을 거스른다는 것이 두려 울 정도다.

광기의 과정을 따르다보면 침만 고인다. 정신이 힘든 독서의 와중에 침삼키는 동작이 부담스러웠을지도, 고약해져 가는 장면의 나열에 쓴물이 고이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게다.

경고 스티커는 ‘건전한 상상력을 유지하고픈 자는 평생 접근 금지’라고 교체해도 무방하지 싶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숨이 막힌다. 인간 본성의 기저엔 원초적인 악함만이 있는 것인가? 오염된 인간에게 출구란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광기는 이어지나 어떤 해결책도 없다. 무미건조, 씁쓸함, 잔혹, 끔찍, 분열, 쓴 물, 울렁거림과 속쓰림, 토악질, 돈과 자 본주의, 살인, 거짓, 가식, 동정, 환상과 망상, 외면, 허기와 외로움, 식욕.

지독함 끝없는 지독함. 막혀버린 출구와 같이 따라오는 단어들이고 그 끝에 인간의 광기가 있다. 우리 깊숙한 곳에 담겨 있을지 모를 광 기의 일부라도 엿보기를 원한다면 크게 심호흡하고 책 읽기를 시작해도 좋다. 다만, 다 읽고 도서관 탓하지 않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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