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이어진 계단

빌딩 로비로 들어서자 높은 천장의 조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전 시간이었지만 조명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로비의 바닥이 빛을 받아 반들반들하게 윤이 났다. 면접 대기실 입실 시간까지 10분 남짓 남아 있었다. 경비원은 간신히 막차를 탄 것처럼 들어온 나를 보자마자 21층으로 서둘러 올라가라고 재촉했다. 그 전에 우선 화장실부터 찾았다. 택시 운전기사가 쫓아올까 노심초사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발도 구두로 갈아 신어야 했다.

거울 앞에 서서 얼룩덜룩해진 얼굴을 봤다.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서류 전형에서 매번 ‘불합격’통보를 받았던 순간들. 토익 시험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어 감독관의 눈치를 봤던 기억. 어김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막막했던 느낌.

“걷는 게 꼭 나사 빠진 로봇 같다, 너.”
어젯밤 일을 마치고 집에 늦게 들어온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통증에 대해서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잔소리도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다행히도 엄마는 내 걸음걸이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최대한 돌아다니지 않고, 방 안 푹신한 의자에 앉아 면접 준비에 몰두했다.

 
가방에서 콤팩트 파우더를 꺼내 화장을 고친다. 작은 입자들이 피부에 달라붙으면서 얼굴빛이 밝아진다. 서둘러 쇼핑백에서 구두를 꺼내 신발을 갈아 신는다. 한층 높아진 시선에 자신감이 한 뼘 더 붙는 듯하다. 화장실을 나가자 좋았던 기분이 다시 흐트러진다. 꼬리뼈의 존재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꼬리뼈의 날카로운 부분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나를 억척스럽게 움켜쥐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대기 장소를 찾는다. 많은 사람이 미리 도착해 앉아 있다.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기로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실 면접 관리자가 계속 서 있는 나를 지적한다. 의도하지 않게 대기실에서부터 튀는 모습을 보이는 꼴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빈 의자에 가서 앉는다. 구두 굽이 생각보다 높아 걸을 때마다 불안하다. 덩달아 얼굴에 머금고 있던 미소도 자꾸만 달아난다.

“면접장은 위층에 있는 대회의실입니다. 한 명씩 호명하면 나와서 문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세요.”
면접 관리자는 웃으면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계단이라니. 엘리베이터를 두고 계단이 웬 말인가. 자리에 앉아 손거울을 보며 표정을 연습한다. 긴장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면접실의 의자는 어떤 것일까. 한편으로는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도 크다. 면접을 끝내고 나면 몸 안에서 흔들리고 있는 못이 제자리를 찾아 박힐 것 같다. 거울을 보면서 예상 질문에 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익숙한 이름이 들려온다.

“한소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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