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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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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때와 화해하는 저녁 만찬 ‘바베트의 만찬 Anecdotes of Destiny’

   
▲바베트의 만찬
지은이 : 이자크 디네센
펴낸곳 : 문학동네
12,000원 / 325쪽
중앙도서관 인문과학실
청구기호 : 839.81 D583a추
어느 허름한 비디오가게에서 생소할 수 밖에 없는 덴마크 영화 한편을 고른 그날은 몹시도 추웠던 기억이다. 사실, 추위보다 더한 냉기에 마음 전체가 얼어 있던 시기였으니 그때의 마음이란 게 저장소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면 시커먼 진액으로 범벅된 담배꽁초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고작 이 정도 회상만으로도 유쾌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부러 죽여 버린 삶의 한때였다.

1988년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이었던 영화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은 모든 걸 잃었다 자책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무엇이 결여되었고 어찌 채워야할지 알려주었던 감사한 영화로 기억된다. 거의 20여 년이 지난 이제야 그 원작인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 Anecdotes of Destiny’을 펼쳐 보았다. 얄팍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치유의 손길이 여전히 두툼한 걸 알게 된다. 과거 삶의 어딘가에서 비롯되었을 불안과 두려움, 부들부들한 회한의 떨림마저 오롯이 감싸 안아 버릴 포근한 시선이 담겨 있다. 여기에 예술·예술가의 가치에 대한 남다른 울림은 추가 되는 교훈이다.

영화와 달리 원작에서는 예술가의 소명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언급이 색다르다. 스스로를 예술가로 칭하며 자신의 만찬 음식 자체가 예술이었다는 바베트의 외침을 듣다보면, 문득 예술의 가치 하나가 선연해진다. 그건, 지난 삶의 한때와 ‘화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치다. 예술가 본인이 지니고 있을 내밀한 의식, 경험, 상처나 열정 등이 총화 되어 구현된 결정이 바로 예술이 아닐까.

예술가가 스스로와 대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나 결과에 동참하며, 예술가 뿐 아니라 바라보는 이들 또한 각자의 삶 어느 곳에 놓여있을 날카로운 가시와 대면하게 된다. 그런 대면의 시간 속에서 뾰족한 가시 끝을 무디게 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날카로운 가시를 안고 있다. 누구에게나 검은 넥타이마냥 아프게 매달고 있는 기억이 있고 담배꽁초마냥 짓뭉개진 심정이란 게 있다. 최고의 열정을 다해 살았다고 뿌듯하게 고백할 시간이 있듯 삶에 주어지는 선택의 순간 이후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나? 문득 회한하거나 따끔거리는 상처 따위에 아파할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아픈 삶이 있기 마련이어서 언젠가는 그렇게 우울한 편린들이 서로 따뜻하게 화해할 때를 기다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권하고 싶다. 죽이고픈 어느 한때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 보이고 싶다. 너무나 추웠던 시절, 나를 눈물짓게 했던 바베트 그녀의 따스함으로 끓는 만찬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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