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스님
(서울 법련사 주지)

올 여름은 시작부터 ‘마른장마’ 같은 날씨에 관한 이상한 말들이 넘쳐났다. 언제부턴지 기후변화는 평상심을 잃은 사람이 부리는 날선 변덕 같기만 하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더위와 추위가 보다 일찍 오고 늦게 물러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마른장마’라는 말을 올해 여름에야 처음 알았다.

무슨 말인가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땅이 마를 정도로 비가 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단다. 반대로 초가을 잦은 비를 ‘건들장마’라고 한다는데, 한 해에 두 장마를 모두 보고 싶지는 않다.
최근 UN산하기관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이 같은 폭염현상은 2020년에는 2배, 2040년이면 4배 증가할거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보다 더 편리하고 쾌락을 자극하는 즐거움에 목매는 동안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야할 이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는 것이다.

간화선의 이론적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대혜종고(1089∼1163)선사의 소담한 법문을 모아놓은 ‘종문무고(宗門武庫)’라는 책이 있다. ‘선문의 무기창고’의 뜻인데, 책 중간에는 이런 법문이 나온다. “눈이 내릴 때면 세 종류의 스님이 있다. 가장 우수한 스님은 승당 안에서 좌선을 하고, 중간쯤 스님은 먹을 갈아 붓을 들고 시를 지으며, 가장 못난 스님은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고 떠든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여름이 가기 전에 마쳐야할 숙제가 하나 있어서 낡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여 서고를 떠나지 않고 몰두하던 즈음이었다. 나는 법회에 나가서 이 이야기를 몇 차례 하기도 했다. 우리 같은 스님은 더위에 상관없이 수행에 전념해야하고, 자기 질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마지막 부류는 분위기를 잘 타서 쉽게 휩쓸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간세의 즐거움은 인간 속에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세계를 살아가야한다. 난 책상머리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신도들에겐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름휴가들을 꼭 다녀오시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대지의 열이 아직 내리지 않는 속에서도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 좋은 것까지 나무랄 수 없어도 자기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올 가을이 더욱 뜻 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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