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다사로운 太陽(태양)은 떠오르리라

 


  올따라 서울의 겨울날씨가 차갑다는 것을 피부로 받으며 추위가 저물도록 여기 머물러야만 한다니 실로 따분한 일다.
  작년만 같았어도 하마 시골의 고드름 열린 초가집 아랫목에서 그저 독서랍시고 읽을거리에 취해 있을 겨울방학.
  졸업이 코앞에 다가오고 해서 學窓生活(학창생활)을 청산해야 하고 남보다는 좀 더 훌륭히 사회에 첫발을 들어놓아야 한다는 초조와 긴장에 어지간한 추위쯤 잊을 법도 하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한해를 보내며 또다시 겨울을 맞으며 걷잡을 수 없는 감회에 쌓이다보면 시골에서 철없이 유랑하던 겨울방학이 오히려 잊고 싶어지는 것들뿐이다.
  大學院(대학원)엘 進學(진학)하고 해외유학을 재촉하는 풍성한 가정의 귀염둥이가 되지 못한 나 자신을 알았을 때, ‘學究(학구)’에의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시골에서 나락 팔아 비싼 학비, 생활비에 무리한 長期投者(장기투자)를 감행 한 탓으로 가정을 파산직전까지 몰고 갔던 눈물겨운 고난이었지만, 그러나 이런 모험의 대가로 축적된 자신의 成長(성장)을 대학 1학년 때와 비교하며 여간 대견스럽게도 새겨본다.
  경제공황 속에서도 학우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꾸려가던 3학년 시절의 겨울방학. ‘멋진 대학생활’을 한답시고 여학생 꽁무니를 따라다녀도 보았다.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던 여인과 晋州(진주)에선 술을 마시고 南江(남강)의 어름 위를 거닐 때, 얼음이 녹아 빠질 뻔 했던 일.
  이것이 추억이라면 추억의 전부일 게다.
  시시한 일은 하지 말자고 학우들과 어울려 社長族(사장족) 흉내를 내며 술을 마시고 또 술을 마신 것이 대학시절이다.
  크게는 정부를 비난하고 이따금씩 성토대회니 데모니 밤잠 못자고 세밀히도 짜여진 擧事計劃(거사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유야무야 그 때마다 끝나 버렸기에 주제넘게 학생운동을 했다면 지나친 표현일께고……. 다만 학원선거의 열풍에 휘말려 겨울방학이면 공연히 심한 출혈을 해야 했다.
  전라도 고창 산골까지 어찌 알고 찾아오는 각급 입후보자 운동원들이 交通杜絶(교통두절)을 핑계 삼아 여장을 풀고 며칠이고 푹 쉬는 통에 아버지 눈치 보며 죄 없는 닭목을 비틀어야만 했던 애꿎은 즐거움. 그러나 이젠 찾아올 성가신 벗도 없게 된 것이 썩 기분 좋은 일도 못된다.
  아무튼 싫던 좋던 대학에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게 된 마당에 좀더 배우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테지만 이 지루한,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난 졸업장을 받아 교문을 나서야 하니, 모든 게 마지막인 것 같다.
  새해와 함께 밀려온 마지막 방학은 성인으로써 마지막 손질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긴긴 밤이다.
  이 밤에 난로를 지피우고 자리에 누우면 거센 파도가 내 피부에 닿고는 부서지는 소리에 잠을 깬다.
  머리에서부터 흠뻑 물속에 젖어 목욕을 계속하는 동안 기어이 해는 떠오르리라.
  너무나 허술하게 지나쳐버린 대학 4년-건방진 친구는 뱃장을 튕기다가 터져버리고, 또 그것도 없는 녀석은 질질 끌려다니다가 이제 와서 당황하는 추운겨울에도 생의 설계에 부풀어 꿈틀거린다.
  ‘배움의 길’에서 나는 途中下車(도중하차)하는 人生(인생)이다. 그러나 평범하게도 滿期除隊兵(만기제대병)이 長期服務(장기복무)에의 미련을 듬뿍 간직한 채 제대 후의 새로운 세계를 그리워하는 심정이다.
  국민 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 신기로움도 아닐 게고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진학할 때의 설렘도 없다.
  담담한 심정으로 눈 녹이며 찾아오는 봄과 함께 펼쳐질 내 세계를 기다리며 찾아야 한다.
  거기엔 모든 것이 산재한 꿈의 세계, 꽃동산의 장관이겠기에 난 이 추운 밤에도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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