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맞는 졸업생들의 수상

 

  1967년 겨울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내가 겨울을 느끼는 것은 피부 위 감각에서 부터다.
  공기가 싸늘해지고 어머니가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면 포근한 겨울잠에서 나는 길고 긴 인생의 꿈을 꾼다.
  原色(원색)의 혼란했던 피곤이 안온한 故鄕(고향)을 찾은 ‘에뜨랑제’의 휴식같이 달콤해지고 내가 긴 수면에 빠지는 겨울.
  그것은 나의 파릇한 꿈의 시절 少年期(소년기)와 靑年期(청년기)의 일부분의 감정이었고 오늘 나는 눈발이 흩어지는 거리모퉁이에서 星座(성좌)를 잃은 떠돌이별의 슬픔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이 주는 의미는 언제나 따뜻한 故鄕(고향)같은 것은 아닌가보다.
  몇 집이나 낯선 목로주점을 거쳐 이렇게 바람이 세찬 거리 위에 서 있어도 돌아갈 집이 없는 애초에 孤兒(고아)같은 서글픔에 젖어있는 것을 청년기에서 장년기로 긍 더듬어 올라가는 진통일까.
  1967년 겨울. 그것은 내일을 설정하지 못한 불안한 공허만을 안겨다주었다.
  또 하나의 生産(생산).-
  “여러분은 卒業(졸업)을 어떤 과정의 끝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또 다른 出發(출발)을 하기 위한 진행의 한 방법일 뿐입니다.”
  6年前(년전) 高等學校卒業式場(고등학교졸업식장)에 낭랑히 울려 퍼진 교장선생님의 訓示(훈시)였다.
  그리고 여섯 해가 지난 지금 나는 또 다른 出發(출발)을 위해 卒業(졸업)을 하는 것이다.
  유쾌한 젊음이 大學(대학)캠퍼스에 메아리치던 시절의 미련을 버려야 한다.
  뿌듯했던 出發(출발), 高校(고교)과정을 마친 후의.
  지금의 출발엔 비장한 각오와 심각한 근심이 엇갈린다.
  다시는 캠퍼스에서 午後(오후)의 햇살을 받지도, 흰 노트위에 사각거리며 교수님의 잔잔한 음성을 옮기는 즐거움도 마지막인 것이다.
  그리고 특유한 全羅道(전라도)사투리 친구 놈의 담배꽁초 달라는 희극적인 표정도 다신 보지 못하게 되는 아쉬움.
  상습적 컨닝맨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한 나머지 열심히 실습을 해보던 진땀나는 곡예 등이 그대로 생생한데 나는 學士服(학사복)을 입어야 하는 失業(실업)예비생.
  <글쎄 남들도 다하는 大學卒業(대학졸업)이 너만 뭐 대단하다고 이러니저러니 되지못한 형용사를 亂發(난발)한다고 꾸짖는 學兄(학형)들도 있겠지만, 거짓 없이 찔끔거리는 눈자위를 욕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곳이 있습니다.>
  <生産者(생산자)는 죽게 마련이고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데 天倫(천륜)이라면 약속 없는 내일을 기대하여 순잔을 들어봅시다.>
  새해는-.
  누구에게나 자기 生活(생활)의 目標(목표)는 있지만, 새해가 되면 다시 새로운 각오들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는 年末(연말)이 되면 성과 없는 계획에 반성이란 ‘타이틀’의 회고록을 작성하게 된다.
  새해라는 意味(의미)를 구태여 구별 짓고 싶지 않은 것이 年末(연말)에 이 글을 쓰는 나의 변명인지는 몰라도 새해엔, 새해에는 나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기만 비는 것이다.
  좀 더 각별하다면 졸업을 하고 새로 펼쳐지는 나의 일터에 대한 꿈이 조금 웅크리고 있을 뿐.
  새해는 언제나 자기의 값있는 出發(출발)에 存在(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나의 새해로 年中行事(연중행사)의 한 部分(부분)같은 감정에서 맞고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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