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맞는 졸업생들의 수상

 

‘겨울 아닙니까’ 자꾸 망설여지는 季節(계절)
  시장 모퉁이를 돌아설 때였다. 사람 몇 명이 빙 둘러서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참으로 따분했던 나는 조금이라도 즐거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로 그들 축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깨알같이 유쾌한 사건(퍽 심심했던 나는, 웬 만큼의 사소한 사건이라도 내 흥미가 이끌리는 한 깨알만큼 재미가 있었다.)과는 달리 너무도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빙 둘러선 가운데, 화장품 장수가 징징징 울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화장품 그릇들이 온통 망가져서, 그 유리 조각들은 서슬이 퍼렇게 번득이고 있었고, 화장품 장수는 피가 질질질 흐르는 손으로 반직이 되 버린 크림들을 휘젓고 있었다. 그의 손은 피와 함께 가지가지 색깔의 화장품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市場(시장)의 노점을 정리하는 경찰관이 화장품을 온통 망가뜨려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별로 유쾌한 구경거리가 못 되었다. 나는 심드렁한 마음으로 구경하기를 그만 두었다.
  화장품 장수는 징징 울고.
  그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皇建門(황건문)
  올 겨울 들어 두 번째로 눈이 내리던 날 눈은 참 푸지게도 내렸다. 그렇게 눈이 내린 날은 한결 날씨가 온화해서 좋다. 아무래도 언제나 가난하기만 한 우리네에게 추운 겨울이란 그닥 달갑지가 못하다.
  등교하는 오리막길이랑 황건문 지붕위에도 소담하게 쌓였다. 약간은 살벌한(?) 것 같은 우리학교 등굣길이 이런 날은 심산유곡처럼 호젓해서 좋다.
  한적한 등굣길을 비스듬히 내려 보는 황건문 앞을 하얗게 덮고 있는 風景(풍경)들-이제는 다시 학생의 기분으로 맞이하지 못 하는 게 아닐까. 입학시험을 칠 무렵. 얼음이 스산하게 얼어있는 이 길들과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던 황건문 주위는 퍽 나를 낯설게 했다.
  “이젠 진짜 겨울이야”
  그렇게들 즐거운 비명(?)으로 여학생들은 이 눈 내리는 언덕길에서 유쾌해 하고 있었다.


겨울 아닙니까
  ‘아름답다’는 表現(표현)이 있다. 그 아름다움중의 하나가 아마 回憶(회억)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요사이는 왜 그렇게 스산한 기분인지 통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스산하고 마냥 망설여지는 가운데 졸업이 다가오고 있는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
  지금처럼 황량한 심정을 ‘空虛(공허)’라고 해도 적절한 表現(표현)이 될까….
  入學(입학)을 하고 이 겨울을 맞기까지 참 많이도 쏘다녔다. ‘學生活動(학생활동)’이라는 것 말이다.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 아름다운 추억도 그닥 생각나지 않는다. 많이 쏘다녔으니까, 그 중 아름다운 것이 하나쯤 있을 법하지 않느냐.
  쫌 난처한 반문이다.
  어느 해인가, 그 손이 남루한 화장품장수 생각이 난다.
  “겨울 아닙니까?”하고 말할 여유조차도 없다.
  갈래갈래 찢겨진 손을 다 깨어져 번들거리는 화장품 그릇의 유리조각을 휘저으며 그 화장품을 사달라고 징징 울어대던 화장품 장수 말이다.


햇살
  새해는 무엇보다 벽에 걸어놓은 새 달력에 먼저 온다. 달력을 외면하면 도시 새로움을 느낄 도리가 없다. 역시 세월이란 달력 위의 숫자를 하나씩 잡아먹는 것이 아닐 까.
  ‘당신은 봄 눈 위에 대이는 햇살 처럼 찬란하게 오십시오’라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허나 왜 이렇게 이 겨울은 춥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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