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오늘의 문제점 - 서양사

 


클럽 워크 通(통)한 一貫性(일관성)있는 比較硏究(비교연구)해야
言語壁(언어벽) 헐고 廣範圍(광범위)한 硏究(연구)를


  和蘭(화란)의 文化史家(문화사가) 잔·로메인은 ‘亞細亞(아세아)의 世紀(세기)’라는 그의 저서(Jan Romein, Das Jahrhundert in Asien, 1958)를 통해서 東洋社會(동양사회)의 物質生活面(물질생활면)이 1천5백년대를 전후해서 西洋社會(서양사회)보담 뒤치기 始作(시작)했음을 例證(예증)했었다. ‘Vasco da Gama’가 印度(인도)를 향해 망망 大海(대해)에 배를 몰았을 무렵 까지는 東洋(동양)의 物質文明(물질문명)이 西洋(서양)보담 최소한도 동등했다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써 機械文明(기계문명)을 과시하며 東漸(동점)에 나선 유럽은 그 近代社會(근대사회)형성에 있어 ‘르네상스 人間(인간)’이라는 중요한 精神的(정신적) 要素(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世界(세계)는 하늘과 땅 사이의 높이만이 아니고 넓이와 길이가 있다는 中世(중세)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확신을 ‘르네상스 人間(인간)’들은 가졌던 것이며 그들의 世界觀(세계관)과 勇猛(용맹)이 저 近代社會(근대사회)基底(기저)를 튼튼히 뒷받침했던 것이다.
  이래서 西勢東漸(서세동점)에 자극된 東洋(동양)은 유럽의 科學(과학)과 기술을 동경한 나머지 19世紀後半(세기후반)부터 多方面(다방면)으로 西洋硏究(서양연구)를 행했는데 먼저 유럽 社會(사회)의 歷史的形成(역사적형성)을 알고자 한데서부터 西洋學(서양학)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西洋(서양)의 歷史的(역사적) 발전을 간략하게 그려 보면 고전 고대의 노예制(제)사회가 中世(중세)에는 農奴的(농노적)인 封建社會(봉건사회)로 변모했고 르네상스와 宗敎改革(종교개혁)을 거쳐서 近代的(근대적) 市民社會(시민사회)를 형성했었는데 帝國主義(제국주의)의 亂舞(난무)로 말미암아 유럽主義(주의)(Europaeismus)의 盛勢(성세)가 기울자 第一次大戰後(제일차대전후) ‘슈펭글러’같은 이는 ‘유럽’ 沒落(몰락)의 위기를 그려냈고(Spengler:Der Untergang des Abend landes, 1918) ‘바레리’같은 이는 ‘유럽人(인)’이란 무엇이냐? 같은 심각한 문제를 역사에 묻기도 했었다.(Valery L'Europeen, 1922) ‘바레리’는 ‘유럽피언’이라는 역사적 요소를 希臘情神(희랍정신)과 로마의 影響(영향) 그리고 基督敎(기독교)의 三者(삼자)에서 구했었는데 이 3요소가 융합되어 오늘의 ‘유럽社會(사회)’를 示現(시현)하고 있다는 歷史解釋(역사해석)에는 많은 史家(사가)들의 공명하는 바다.
  위와 같은 ‘유럽’의 歷史的(역사적) 形成(형성)을 ‘유럽’의 대표적인 史家(사가)들은 각기 어떻게 해석했으며 또한 그들의 소위 歷史思想(역사사상)을 어떻게 전개시켰나를 보면 近代史學(근대사학)의 始初(시초)라고 불리는 ‘랑케’의 ‘게르만’民族(민족)의 주체성에 입각한 ‘유럽’歷史(역사)의 事實主義化(사실주의화)(L.v.Ranke;Die Epoche der neueren Geschichte, 1854), 歷史(역사)속에서 恒常的(항상적)인 것과 반복되는 것 및 유형적인 것 등을 실증적으로 구명하려 했던 文化史的(문화사적) 方法論者(방법론자)인 부르크하르트(J, Burckhardt, Die Kulftn der Renai ssance in Italien,1860)체험의 追究說(추구설)을 통해서 역사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딜테이’(W.dilthey. Das 18. Jahrhun. dert und die geschi chthche Welt, 1901), 사회의 발전을 階級鬪爭(계급투쟁)으로 看破(간파)한 막스의 唯物史觀(유물사관)(K.Marx: die deuische Ideologie, 1846), 理想型(이상형)(Idal Typus)의 적용으로 歷史現象(역사현상)의 特色(특색)을 찾으려 했던 ‘막스·베버’(Max weber:Die protestant sche Etik und der Geist des Kapitalusmus, 1905) 歷史事實(역사사실)의 個體化的(개체화적)고찰을 통해서 歷史世界(역사세계)를 解明(해명)한 ‘마이네케’의 歷史主義(역사주의)(F.Meinecke:Die Entstehung des Historis, 1936), 모든 歷史(역사)는 現代意識(현대의식)과 歷史家(역사가)의 주체에서 이해되고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크로체’(B.Croce. Zut Tlieorie und Geschichte dei Historicgraphie, 1915) 歷史主義(역사주의)의 全體論(전체론) 부정을 반대하고 ‘크로체’와 ‘코링우드’(Colling wood)처럼 歷史認識(역사인식)에 있어서 歷史家(역사가)의 主管(주관)을 중시하면서도 다른 한편 역사의 본질을 막스의 社會史觀(사회사관)을 現代(현대)의 工業化論(공업화론)과 合理化論(합리화론)으로 수정하려는 입장의 카(E.H. Carr:What is History, 1950), 21個(개)의 文明圈(문명권)이 挑戰(도전)과 應戰(응전)(Challenge and response)에 의해서 각각 發生(발생), 成長(성장), 衰退(쇠퇴), 解體(해체)의 과정을 밟는 것이 世界史(세계사)였다고 보는 토인비의 文明史觀(문명사관)(A.Toynbee:A Study of History, 10vol, 1934-54), 文化形態學的(문화형태학적) 연구로써 현대를 해부하여 새시대 人間像(인간상)과 새로운 世界史像(세계사상)을 그리는 알푸레드·웨버(A.weber:Kulturgeschichte als Kulur soziologie, 1950), 人間性(인간성)과 인류의 일체성을 世界宗敎(세계종교)의 근원에서 찾아 미래의 世界史像(세계사상)을 世紀(세기)의 哲人(철인) 야스퍼스(K.Jaspers Vom Urspr nuand Ziel der Geshichte,1952) 等等(등등)이 저들 史學(사학)의 사상인 동시에 學的(학적) 흐름이였고 또한 歷史硏究(역사연구)의 많은 方法論(방법론)들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西洋(서양)의 思想界(사상계)와 西洋史學(서양사학)의 동향을 우리들 東洋人(동양인) 특히 韓國人(한국인)은 어떻게 보아야 하며 또한 西洋人(서양인)의 歷史學(역사학)이 우리들의 西洋史(서양사)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저들의 歷史知識(역사지식)을 정확하게 습득하고 또 저들의 歷史像(역사상)을 연구해 나갈 것인가에는 學問(학문)을 위한 姿勢(자세)와 방법의 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첫째 西洋史學(서양사학)을 위한 우리의 基本姿勢(기본자세)라고 한다면 終戰後(종전후) 獨立主權國家(독립주권국가)로써 드디어 世界史(세계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우리의 現代意識(현대의식)에서 출발하여 歷史(역사)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이며 둘째 방법論上(론상)의 문제로써는 近代化(근대화)추진에 歷史學(역사학)이 一役(일역)하겠다는 확고한 자세가 서지 않았기에 종래 이 나라의 史學(사학)방법論(론)에는 방법論的(론적) 통일성이 결여되고 있는 點(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近代化(근대화)에 기여’라는 自己認識下(자기인식하)의 硏究方向(연구방향)을 위해 우리는 조속히 史學硏究方法論(사학연구방법론)의 統一性(통일성)을 이룩해야 하겠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西洋史學界(서양사학계)를 보면 解放後(해방후) 趙義高(조의고) 金聲近(김성근) 金成植(김성식)氏(씨) 等(등) 3氏(씨)가 西洋史硏究(서양사연구)의 중진으로써 많은 제자들을 배출시켜 그들로 하여금 지금 各大學(각대학)의 西洋史(서양사) 교육을 받도록 했고 또한 10餘年前(여년전)에 西洋史學會(서양사학회)도 발족시켜 ‘西洋史論(서양사론)’이라는 學會誌(학회지)를 현재 九輯(구집)까지 發刊(발간)하는 등 많은 어려운 與件下(여건하)에서도 미흡하게나마 西洋史學(서양사학) 硏究(연구)를 육성시켜 왔지만 우리들의 활동을 歐美史學界(구미사학계) 활동에 비해보면 其實(기실) ‘유럽’의 實證的(실증적) 연구결과 이 조차도 充分(충분)히 소화 하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西洋史學(서양사학) 硏究發達(연구발달)의 幼年期的(유년기적) 形態(형태)인 것이다.
  筆者(필자)가 此際(차제)에 提言(제언)하고 싶은 것은 철저한 西洋史硏究(서양사연구)의 初步的試圖(초보적시도)로써 우리는 먼저 西洋(서양)의 많은 言語(언어)들을 익혀야 하겠다는 점이다. 西洋(서양)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나라는 많다.
  尙今(상금) 우리의 처지로서는 東歐圈(동구권)의 연구 등은 內外事情(내외사정)의 억압으로 度外視(도외시)되고 있는데 우선 ‘슬라브’ 言語群(언어군)의 語學的(어학적) 훈련만이라도 적극 勸獎(권장)해서 장차는 西(서)‘유럽’偏重(편중)의 연구경향을 지양하고 廣範圍(광범위)한 西洋硏究(서양연구)를 행해야 할 것이며 補助學(보조학)(史學(사학)을 위한 隣接學問(인접학문))과 實證的(실증적) 史料學(사료학) 연구의 훈련을 통해서 多樣的(다양적)인 歷史現象(역사현상)의 정확한 解釋(해석)을 위한 社會學的(사회학적) 史學方法論(사학방법론)의 定向(정향)에로 그 統一性(통일성)을 이룩해야 할 것 같다.
  祖國(조국)의 통일과 近代化(근대화)를 이룩하고 나아가서 자유로운 위대한 사회의 建設(건설)이 우리의 당면한 과제라고 전제한다면 이 나라의 西洋學徒(서양학도)들은 유럽이 資本主義(자본주의)에로 移行(이행)한 과정, 市民革命(시민혁명)과 産業革命(산업혁명)의 연구 東歐諸國(동구제국)의 沈滯性(침체성) 유럽의 國民國家(국민국가) 形成期(형성기)의 社會相(사회상)연구 등을 Club Work의 주제로 하여 일관성 있는 全體的(전체적) 비교연구로써 韓國的(한국적) 西洋文學(서양문학)의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祖國近代化道程(조국근대화도정)에서 傳統社會(전통사회)의 特色(특색)을 살릴 수 있는 社會構造變換(사회구조변환)을 위하여 西洋史學(서양사학)이 건전하게 寄與(기여)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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