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청부 살해사건’은 지난 2002년 경기도 하남 검단산에서 발생한 청부 살해사건이다. (사진출처=SBS 그것이 알고싶다)

얼마 전 온 나라를 깜짝 놀라게 한 어느 방송프로그램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부제가 바로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이었다. 그깟 외출이 뭐가 대수여서 다수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외출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외출을 했거나, 외출을 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시간과 장소로 외출을 했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이 한 때 장안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여대생 청부살인’으로 유죄가 확정된 어느 재벌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을 보도한 것이다. 유죄가 확정되어 자유형을 선고받았기에 응당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하여야 당연한 그 사모님은 어떻게 된 일인지 교도소가 아니라 거의 자유로운 몸이 되어 있었다. 외출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으로 외출, 아니 장기 외박을 하고 있으니 그래서 ‘이상한 외출’이라고 했을 것이다.

돈으로 면죄부 받는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2002년 명문대 법대에 재학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22살의 여대생 하지혜양이 경기도 하남시에 소재한 검단산에서 머리와 얼굴에 6발의 공기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되었다. 하양의 아버지는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 그 배후엔 청부살인을 사주한 재벌회장의 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벌부인의 살인청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살인범을 잡아야 한다고 결심하고, 범행 후 베트남으로 도주한 청부 살인범 2명을 검거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재벌 사모님으로 부터 1억 7000만 원을 받고 재벌의 사위와 불륜관계를 의심받던 하양을 살해하게 된 것이다. 2004년 이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은 사모님을 비롯한 2명의 살해범 모두에게 무기징역을 확정, 선고했던 사건이다.

지금까지는 별 이상함이 없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교도소에 있어야 할 사모님은 2007년 유방암 치료를 시작으로 각종 질병의 치료를 이유로 검찰로부터 형집행정지 허가를 받은 이래, 수 차례에 걸쳐 연장처분을 받아 병원 특실에서 생활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외박과 외출도 빈번하게 한 것으로 들어 났다.

물론 사모님의 이 이상한 외출이 가능했던 것은 의사와 검찰의 알게 모르는 ‘도움’이 있었고, 호의에 대해서 사모님의 부군인 회장은 의사에게 사례비를 주었으며, 이 일로 회장과 의사 모두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모님의 병은 과연 수형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위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형집행 정지 처분은 아주 위중한 병을 앓고 있어도 일반인들에게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도 어렵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위중하지도 않은 사모님이 수 차레에 걸쳐 형집행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였기 때문이다.

권력자들, 살인해도 무죄받아내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몇 해 전 ‘홀리데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영등포교도소 탈주범 ‘지강헌’이 80년대 처음 보급된 칼라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전 국민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소리쳤던 외침이다.

물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미식축구선수요 영화배우였던‘O. J. 심슨’은 민사소송에서 어마어마한 피해보상을 선고받아 전처를 살해한 혐의가 인정되었지만 엄청난 돈을 들여 꾸린 ‘드림팀’이라는 변호인단의 도움으로 형사재판에서는 무죄평결을 받았던 사건이 가장 유명한 예이다. 중국에서도 최근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한때 중국 정치권의 실세였던 전 충칭 시 서기의 부인인 ‘구카이라이’가 영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혐의를 받았지만 사실상 무죄선고나 다름없는 사형유예를 선고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부러진 화살’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던 모 대학 김 모 전교수의 석궁테러사건도 작은 개인과 거대 기업과 그 비호세력에 대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설문조사에서 국민들은 가장 법을 지키지 않는 직종으로 정치인과 기업인을 1, 2위로 꼽았다. 그 이유로 법보다 권력이나 돈이 효과적이며, 그래서 법의 집행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이는 바로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이 존재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뿐만 아니라 이제는 ‘무권유죄(無權有罪), 유권무죄(有權無罪)’, 즉 권력이 있으면 무죄요, 권력이 없으면 유죄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법정의란 죄가 있는 곳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지은 죄에 상응한 처벌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법 앞엔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기본이며, 이 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법정의(Criminal Justice)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사법부정의’(Criminal Injustice)가 팽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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