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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책, 보물급 책…이곳은 책들의 사회책이 들려주는 중앙도서관 생태계
  • 김현수 문화부
  • 승인 2013.10.07
  • 호수 1544
  • 댓글 0
   
 

아침 9시, 환하게 불이 켜지며 또 하루가 시작된다. 하나둘 자리를 잡는 이용자들과 근로학생들이 보인다. 오늘은 지난 한 달 동안 온몸에 쌓였던 먼지들을 털어낼 수 있을까. 맞은편 서가에 있는 세 권짜리 소설은 벌써 몇 주째 자리를 비우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중앙도서관 1층 인문과학실에 살고 있는 책이다. 5년 전 출판된 지 며칠만에 중앙도서관으로 옮겨왔다. 이래 뵈도 왕년에는 유명 연예인의 소설집으로 작가의 유명세 덕에 학생들이 자료구입 요청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이곳 서가에는 나랑 똑같은 책이 무려 다섯 권이나 된다. 평범한 단행본 치고는 많은 숫자다. 물론 이들은 내 옆에 나란히 꽂힌 채 먼지만 쌓여가는 신세일 뿐이다.

끊임없는 신간, 그 속에서 살아남기

처음 이곳에 온 날이 생각난다. 학생들이 구입을 희망한 도서는 매일 취합해 주문이 이뤄진다. 모든 책을 구입하는 것은 아니고 도서 검토, 복본(複本) 조사 등을 거쳐 승인이 되면 주문할 수 있다고 한다. 나 같은 국내도서는 대부분 일주일 안에 도서관에 도착한다.

중앙도서관에는 많으면 하루에 수백 권의 책이 들어온다. 자료실별 선정도서의 경우 한 달에 한두 번씩 300~1,000권 가량을 주문한다. 수시로 들어오는 교수 추천도서와 강의교재, 그리고 학생들의 희망도서까지 합하면 하루 평균 125권 정도가 새로 들어오는 셈이다.

출고된지 나흘만에 중앙도서관에 들어선 날, 도서관 근로학생의 손을 거쳐 나에게 ‘780XXX’라는 등록번호가 부여됐다. 겉표지엔 문학-한국문학-소설을 의미하는 8, 1, 3으로 시작하는 청구기호도 붙었다. 그리고 신착도서 서가에 안착. 각 자료실 입구에 자리한 신착도서 서가는 학생들과 거리가 가장 가까워서 책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평생 한 번밖에 지나지 못하는 곳이라 잊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신착도서 서가에서 첫 대출자를 만나고 나면 책들은 십진분류법에 따른 서가로 이동해 이용자를 기다리게 된다.
처음 몇 주 사이에 대여섯 번 정도 학생들이 나를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책들처럼 서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지금은 한 달 넘게 개점휴업 상태다. 나를 보지도 않을 거면서 내 앞을 지나가는 학생은 왜 이리 많은지 야속하기만 하다. 나처럼 빌려가는 일이 드문 경우도 많지만, 학생들이 많이 찾는 책은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다.

유명 작가의 신간 베스트셀러나 ‘고전세미나’ 등의 강의교재로 선정된 책은 예약 순번을 받아야 대출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찢기고 접히고’ 성한 데 없는 인기서

나도 한때 ‘잘 나갔던’ 책이지만 일주일에 몇 차례씩 들락날락거리는 그들이 부러워서 몇 번 투정을 부린 적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 한다. “한 달에 대여섯 명씩 읽는 사람이 바뀌어 봐라. 침 묻혀서 책장 넘기는 사람, 책날개를 책갈피처럼 써서 뚱뚱하게 만드는 사람, 자기 책인 것처럼 밑줄 긋고 종이 접는 사람 등 온갖 수모를 당해 봐야 알지”

그들은 학생들이 너무 험하게 다뤄서 몸이 상하고 훼손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중앙도서관에 다시 돌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처럼 유명한 친구들은 이용자들이 빌려갔다가 반납하지 않아 현재 등록된 다섯 권 중 네 권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용자가 빌려가 읽어주길 오매불망 기다리는 나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도서관에 머무른단 사실만으로도 아우라를 뽐내는 분들도 있다. 바로 고서실에 있는 분들 얘기다. 고서실에는 권상로, 한용운 선생이 데려 온 도서 등 3만 여 분들이 모셔져 있다. 특히 소장 중인 불교관련 분들의 가치는 국내외에서 독보적이라고 한다. 감히 말도 붙여보기 어려울 정도로 귀중한 국보, 보물 등의 분들은 귀중본실에서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

청년 실업 등 사회적 불안과 불확실성 앞에서 20대 학생들은 우리를 읽을 여유가 없는 듯 해 안타깝다. 올해 상반기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 이른바 힐링 관련 친구들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서가의 대부분의 책들은 나같이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채 방치됐다. 바야흐로 독서 흉년이다.

김현수 문화부  witness@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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