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 있는 격정의 계절, 가을입니다. 구석진 어느 푯말의 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당신의 어질고 깊은 사념의 눈매로 침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기억해 봅니다.
여기 당신에게 드리는 무질서하고 정돈 없는 내 조그마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먼저 나의 房(방)을 소묘합니다. ‘나이브’한 독백이 한참을 입술에서 전개됩니다. 그리곤 절벽에 선 者(자)의 허전한 자인식처럼 나는 곧 그 강하디 강한 공극 속에서 나의 안정이 파괴됩니다.
  …아아 이 공극, 가슴에 스미는 무서운 공극, 나는 가끔 생각하네.
  단 한번만 롯데를 가슴에 안을 수 있다면 이 공극도 완전히 채워질 것을… 눈물과 흐느낌의 뒤범벅 속에 나는 왜 悲嘆(비탄)의 臺詞(대사)를 잊은 미치광이가 되는지 모릅니다.
  육체의 고통보다도 恥辱(치욕)의 고뇌가 더 참기 어려웠고 상처의 아픔보다 동정의 아픔이 훨씬 더 酷毒(혹독)하다는 것을 아는 나는 왜 또 의미 없는 웃음으로 입니까? 당신 앞에서 나는 피로한 자세로 입니다.

  甘味(감미)로움과 충만한 무늬의 시선으로 나를 본 순간 나에게 孤絶(고절)과 悲壯感(비장감)으로 가슴은 포화합니다.
  우장 따위 맥을 못추는 강한 빗줄기 속에 멀리 암울한 선을 그리는 산들을 앞으로 하고 끝없이 걷는다면 피곤을 모르는 시간이겠습니다. 그리곤 대화가 이어져 나가는 거죠.
  달려오는 바람 속에 웃음을 넣어주며 당신과 나의 호흡을 허공에 던지는 일.
  그 당시의 우린 어떤 행복이겠습니까?

  <저기 로마의 황후가 되기보다도 당신의 아내되기를 열망하며…>
  이것은 수도녀 에로이즈가 역시 수도자인 아베라르에게 준 과장 없는 書翰(서한)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가 흘러나오는 거기에 정돈시킬 수도 있는 것같아 토론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내가 정성껏 목소리를 합하면 어느 의미에서 한줄기 ‘사랑의 노래’가 작곡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이름지을 수 없는 한 아름의 감정을 다시 웁니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세어보듯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만나고 헤어진 후는 항시 미흡, 바로 그것입니다. 바둑판 같은 빌딩 사이로 어둠이 깔릴 때 ‘아스팔트’ 鋪道(포도) 위를 걸으면서 말했습니다.
  “시간이 꽤 됐군요. 다음엔 좀 더 미소이기예요”
  혼자 돌아오면서 서글픈 貧困(빈곤)을 한꺼번에 움켜 쥔 것 같은 무거움이었습니다.

  어느 시인이 사랑의 길은 많으나 그 지혜는 드물다고 했습니다. 불쑥 사랑은 결코 ‘하나’에서 시작되어 ‘하나’로 끝나 간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직은 먼 곳에 있을 유나. 짙은 갈매 색깔의 포도송이와 하얀 나비떼 처럼 나리는 소나기와 헤어진 후의 허전한 安堵(안도), 그것들을 글로서 묘사할 수만 있었더라면 정말이지 표현할 수만 있었더라면 나는 정녕 이 무질서 하고 정돈 없는 연신을 띄우지는 않았습니다.
베토벤이 스물다섯살 때에 쓴 열정에 넘친 가곡 <아델라이데>의 일부를 기억 합니다.
  “거울 같은 강물을 보거나 눈덮인 알프스의 산을 보거나 석양의 황금빛 구름을 보거나 아델라이데여! 그대의 모습은 빛나고 있다.”
  ‘그대의 모습은 빛나고 있다’가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폭풍이 일고 간 그 폐허에 새싹이 움트고 있어 나는 그 새싹을 위해 나의 외투를 벗엇습니다.

  항시 내 단어와 문장은 설익은 것임을 압니다. 아직도 무수한 나의 소리가 내 가슴속에 있음을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펜을 놓자는 마음이 되자 곧 미흡의 강물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오늘밤 내꿈의 향연에 초대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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