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세인의 비난 속에 발표


近代(근대) ‘리얼리즘’劇(극) 확립


  ‘입센’(Henrik Ibsen 1828~1906) 詩人(시인) 劇作家(극작가). ‘노르웨이’ 南方港口(남방항구) 都市(도시)인 ‘세엔’에서 부유한 商人(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敎育期間(교육기간)에 가정의 破産(파산)으로 學校敎育(학교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16歲(세)때 小都市(소도시) ‘그림스타트’시의 약방에서 일을 보면서 醫師試驗(의사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文學修業(문학수업)을 하게 되었다. 當時(당시) ‘로마’共和政(공화정) 末期(말기)의 社會(사회)를 慨歎(개탄)하며 쓴 作品(작품)이 3幕(막)의 韻文劇(운문극)으로 그의 처녀작 ‘카티리나’(1849). 이 作品(작품)을 翌年(익년) 匿名(익명)으로 自費出版(자비출판)하였으나 46부 밖에 팔리지 않았다. 그 후 ‘크리스티나’ 大學(대학)에 적을 두고 同好(동호)의 靑年文人(청년문인)들과 政治(정치) 諷刺的(풍자적) 評論誌(평론지)를 發行(발행)하기도 하였다. ‘베르겐’市(시)의 國民劇場(국민극장)에 監督(감독) 兼(겸) 脚本作家(각본작가)로 있었으며 57年(년)에는 ‘크리스티나’市(시)의 ‘노르웨이’劇場(극장)의 監督(감독)으로 招聘(초빙)되기도 했다.
  그 후 ‘수산나·트레센’과 結婚(결혼) 후 家庭劇(가정극) ‘사랑의 喜劇(희극)’(1862)을 發表(발표)하였으나 世人(세인)의 비난을 받아 쫓기는 마음으로 1864년 이태리로 건너가 1892년 귀국 전까지 이태리 독일에서 머무르며 大作(대작)을 썼다.
  66년에 5幕(막)悲劇(비극) ‘브란트’가 성공하여 인기를 모으고 79年(년) 유명한 ‘人形(인형)의 집’으로 세계적인 劇作家(극작가)로 기반을 굳혔다. 그 후 ‘幽靈(유령)’ ‘民衆(민중)의 敵(적)’ 등 일연의 社會(사회)극을 내놓아 演劇界(연극계)의 問題(문제)를 던져 주었다.
  ‘人形(인형)의 집’이 女性解放問題(여성해방문제)를 대담하게 다룬 것으로 社會的(사회적)인 반응을 크게 일으킨데 뒤이어 2年(년) 후 ‘幽靈(유령)’은 이와 반대로 가정에 끝내 忠實(충실)한 ‘알빙’부인의 悲劇(비극)을 通(통)하여 近代科學(근대과학)에서의 重要(중요)한 事實(사실)의 하나인 遺傳問題(유전문제)와 아울러 婦人解放(부인해방)을 表面(표면)에서 더욱 合理化(합리화)시켰다. ‘幽靈(유령)’은 劇作(극작)技巧(기교)上(상) 가장 圓熟(원숙)한 作品(작품)으로 劇構成(극구성) 가운데 特記(특기)할만한 점은 事件(사건)의 論理性(논리성), 伏線(복선)의 교묘한 설정에 있다. 突發的(돌발적) 偶發的(우발적)인 印象(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 近代(근대) ‘리얼리즘’ 演劇(연극)에서 必須的(필수적)인 要件(요건)을 이 劇(극)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내어 주고 있다.
  作品(작품)의 타이틀인 ‘幽靈(유령)’은 ‘오스왈드’와 ‘레지네’와의 관계가 ‘알빙’과 ‘레지네’어머니(下女(하녀))와의 그것이 幽靈(유령)이고 둘째 ‘오스왈드’의 병이 아버지의 幽靈(유령), 셋째 우리 祖上(조상)의 因襲(인습)과 생각이 幽靈(유령)이라는 점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