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리기 위해 ‘어제’를 살피지 않을 수 없어

  고전이란 말이 함의하고 있는 범위는 너무 다양하고 넓다. 대개는 고상하고 품위있고 고급스러운 뜻으로 새기고 있으나 고전문학이라는 말에 와서는 그런 기품어린 이미지 대신 어렵고 낡고 딱딱하고 어려운 한문 서적더미로 이미지화한다.
  고전문학이 언제부터 이처럼 백안시되다시피 하고 오늘 우리의 일상과 무관한 유물로 돌변했는가. 모르긴 해도 왕성하게 서구 문학작품을 본뜨고 그 나름의 이론적 바탕을 궁리하던 끝에 일부 문인들 안에서 자기합리화로 비롯된 전통단절론이 나타나면서 고전문학의 모습은 한결 초라하게 되지 않았나 한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의 뿌리 돌아보기 정신이 고조되면서 고전에의 회귀와 더불어 자기문화 몰각은 주춤했으나 그 시대가 지나자 대세는 역시 서양문학 일변도로 치닫고 말았다.
  시대현상은 지기 동기가 숨어있고 나름의 필연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 안에서도 우리는 구차스럽지만 우리시대 고전문학이란 무엇이며 여전히 의미 있음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넓게는 우리시대 국문학자 각각에게 돌리는 물음일 수도 있고 좁혀보면 한 대 고전문학의 선봉에 서서 뚜렷한 결실을 남긴 동국대 국문학연구팀의 후학으로서 옛 영광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나약해진 오늘의 위상을 반성해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겠다.
  고전 문학을 포함한 전통적 유산의 보존과 연구가 어쨌든 우리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주고 미래를 밝혀주는 구실을 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겠으나 지금과 같이 현대문학연구로만 사람이 몰리고 그나마 고전문학연구는 전공자 몇몇만 은밀히 향수하는 선에서 그치고 마는 한 우리가 바라는 건실하고 균형 있는 국문학연구는 요원하다. 이의 극복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고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필 필요를 느낀다. 병의 원인균을 알면 치료는 의외로 쉬워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국문학을 비롯해서 어떤 학문이든 출발에서 연구자들의 ‘오늘’ ‘여기’의 문제가 다른 무엇보다 크게 개재한다.
  이점에서 고전문학에 대한 우리시대의 냉담한 반응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는 되물음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주 현대적인 대상으로 돌아와 그 본질을 캐보고자 애를 쓰는 경우라 하더라도 연구는 ‘오늘’에만 한정되어 이루어질 수 없다. 곧바로 이전 시대로 돌아가 그 ‘어제’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또 연구대상이 설사 현대성과는 무관한 고전문학이더라도 ‘당대적’이 아니라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그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연구자의 시각과 현실적 법칙에 따른 객관성을 확보하는 한에 있어 고전문학은 여전히 우리의 새로운 기대지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방법론에 대한 선입견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오해도 고전문학연구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한 요소가 아닐까.
  실증적 작업은 어느 학문이든 제일차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당연한 태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고전문학 연구자 중에는 실증주의와 실증적 작업을 혼동하는 예가 적지 않다. 이른 시기에 벌써 저 현란한 서구문학과 다양한 문학이론에 맛들인 제2의 연구자들에게 기성세대가 보여준 그 맹목적 실증주의는 과연 문학연구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를 깊게 해주기 족했으며 마침내는 고전문학의 동기유발을 크게 저해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기성 연구자들은 애써 고전문학의 중요성을 강변하기보다 학문의 방법과 세계관의 통일성이라는 원칙에 서서 차분하게 그를 주지시키고 학생들 역시 주체적 문학이론을 추구하는 뜻을 갖고 고전에 주위를 기울일 때 더 이상의 고전문학무용론, 위기론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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