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자금성·이화원…조선 사신들의 발자취 따라간 5박 6일 간의 여정

 

 ▲명, 청 시대 중국의 정치와 문화 중심이었던 자금성.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총 5박6일 동안 충무역사탐방단이 사학과 서인범 교수의 인솔 하에 중국 대련, 단동, 요양, 심양, 산해관 그리고 북경에 다녀왔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사명의식으로 뭉친 탐방단의 여정에 기자가 동행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실시한 대학생들의 역사인식 수준에 대한 통계 조사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됐다. 총 8개 문항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객관식과 주관식 형태로 물었을 때 정답률이 약 69%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어, 도시락 폭탄의 주인공을 묻는 문항에서는 ‘윤봉길 의사’라고 답한 비율이 55%인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렇게 대학생들의 낮은 역사의식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대학은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매년 충무역사탐방을 기획하고 있다. 20명으로 구성된 올해 탐방단은 1차 서류전형 및 보고서 제출과 2차 면접 전형을 통해 선발됐다. 2006년을 시작으로 8년 째 진행되고 있는 이번 탐방의 주제는 ‘조선 사신들의 발자취를 따라 바라 본 한중 관계의 역사적 고찰’ 이었다. 과거에 조선은 중국으로 사신들을 보냄으로써 대외관계 유지에 힘썼고 중국에 대한 통찰력을 높였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중국과 여러 외교현안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적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아시아의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인범 교수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웃나라 중국과 연관하여 대두될 수 있는 수 많은 외교문제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 탐방 의의를 강조했다.

6월 27일 오전, 탐방단은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5박 6일은 대련에서 북경까지 120km에 이르는 거리를 둘러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때문에 탐방단은 과거 사신들이 걸었던 사행로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들만 방문할 수 있었다. 기자가 6일 동안 느꼈던 중국은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크다, 많다, 화려하다.”

大, 스케일이 남다른 만리장성과 자금성
우선, 중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이다. 중국에서 이동시간은 탐방시간의 반을 차지했다. 중국인들은 한번 이동할 때 버스로 다섯 시간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정도다. 길었던 이동 시간 동안 지칠 법도 한데 배움의 열의로 가득했던 탐방단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작은 세미나 시간을 가졌다. 역사교육학과 김태승 군은 “사절단이 이용한 연행길은 한양, 평양, 압록강을 거쳐 심양, 산해관 그리고 북경까지 이르는 육로를 가리킨다”며 “서울에서 북경까지 도보로 약 40~60일이 소요 되는 코스였는데 우리는 이 길을 6일 만에 이동하는 것”이라고 사전에 조사해 온 정보를 발표했다. 버스 안 세미나를 통해 탐방지에 대한 윤곽이 조금 더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산해관 해신묘에서 서인범 교수의 설명에 집중하는 학생들.

‘크다’는 우리가 방문했던 탐방지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만리장성과 자금성은 압도적인 규모로 우리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만리장성은 산해관 노룡두에서 시작해 북경까지 이르는 인류 최대의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사신들이 북경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산해관 성루를 통과하며 연암 박지원 선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의 큼을 모를 것이요, 산해관을 보지 못하고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요, 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같은 장소에 대해 일어일문학과 이예한 양은 “만리장성은 산해관에서부터 북경까지 바다와 산을 양쪽에 두고 마치 만물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류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만리장성은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나라 시황제가 쌓기 시작한 산성으로 명나라 때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확장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은 아직까지도 확장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과 우리나라는 동북공정 문제를 두고 갈등 관계에 있다. 서 교수는 “최근 중국은 원래 고구려의 박작성이 있었던 단동 호산에 장성을 새로 건설하고 이곳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 우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리장성의 크기에서 오는 거대함과 웅장함에 감격한 것도 잠시, 이곳은 동북공정이 진행 중인 우리의 역사전쟁터라는 사실도 배울 수 있었다.

북경에 위치한 자금성은 명, 청 시대 중국의 정치와 문화 중심이었던 궁궐로 우리나라 경복궁과 같은 곳이다. 경복궁의 면적이 약 34만㎡ 인 것에 비해 자금성은 약 72만㎡ 로 경복궁의 두 배 가량의 규모를 자랑한다. 자금성이 도시 속에 지어진 또 하나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유도 그에 있다. 자금성을 구경하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고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황제의 색을 뜻하는 금색의 지붕들이 그 화려함을 더했다.

多, 사람, 음식, 한자가 많은 나라
‘크다’ 이외에도 만리장성과 자금성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많다’이다. 우선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자금성과 만리장성에서는 인파에 휩쓸려 사람을 구경하는 건지 고궁을 구경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더 아쉬웠던 점은 사람들의 뒤떨어진 윤리의식이었다. 중국은 새치기의 천국이다. 사람이 많았던 것만큼 질서를 지켜 서로 배려하며 관광했다면 더 효율적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중국은 사람이외에도 많은 것이 두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음식과 글자이다. 중국에서 모든 음식을 먹어보고 죽는 것과 죽기 전에 한자를 다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왕부정 거리의 명물 전갈꼬치.

음식의 다양성은 왕부정 거리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왕부정 거리는 북경의 명동과도 같은 곳으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길거리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 각종 꼬치, 만두, 국수 등의 음식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전갈 꼬치이다. 처음에는 혐오스러운 겉모습 때문에 먹기 망설여졌지만 한번 맛보니 고소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갔다. 문득 전갈 꼬치는 중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 오기 전에는 ‘더럽다,’ ‘시끄럽다’ 등의 비호감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막상 와

 ▲북경의 명동, 길거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왕부정거리.

보니 ‘통이 크다,’ ‘잘 발달된 도시 인프라’ 등 배울 점도 많았다. 중국은 어느 새 기자의 생각 속에 다시 와보고 싶은 나라로 새로이 자리 잡고 있었다.

華, 명ㆍ청 시대 화려함이 남은 건축양식
마지막으로 중국은 ‘화려하다.’ 요양에서 방문한 광우사는 분명 사찰이라고 들었는데 하나의 고궁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광우사 외관의 화려한 색채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불교학부 전효진 양은 “목각탱은 광우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양식이다. 여러 가지 관음보살이 한곳에 어우러져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상상력이 자극됐다”고 평했다. 심양 고궁을 방문했을 때, 서 교수는 “이곳은 조선과 청의 중계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청나라 황제에게 예의를 행하고 회의, 의식, 축하 등의 행사를 치를 때 조선 사신들도 함께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자금성처럼 심양고궁의 지붕 역시 황금색을 복원한 노란색이었고 황제가 주요 업무를 행했던 대정전의 기둥은 용이 휘감아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어 화려함을 더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화려했던 곳은 북경의 이화원이었다. 이화원은 중국의 3대 악녀라고 불리는 서태후의 여름별장이다. 길이가 728m나 되는 중국에서 가장 긴 복도 건축물 창랑 상단에는 1만 점이 넘는 그림들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다른 그림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창랑 옆에 위치한 220만㎡의 인공호수에는 유람선이 떠다닐 정도로 거대했다. 신문방송학과 유리 양은 “이화원의 화려한 장식과 사치스러운 건물 하나하나가 그녀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건물 내부 곳곳에 새겨진 목숨 수(壽)를 바라보니 서태후의 삶에 대한 집착도 느껴졌다” 고 말했다.

 ▲자금성과 충무역사탐방단

5박 6일 동안 느꼈던 중국은 크고, 많았고, 화려했다. 이번 탐방은 분명 여행 이상의 교훈을 남겨주었다. 중국에 오기 전 가졌던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변화된 중국을 보게 됐다. 동북공정과 같이 한중 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역사 문제들을 다시 보게 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함을 느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한중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선구자 역할을 했던 조선 사신들의 지혜를 다시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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