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거ㆍ마 대학생 사건’은 대학생 5,000여 명이 다단게 영업에 내몰린 사건이었다. (사진출처=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영화 ‘국가대표’를 본 사람은 다단계판매에 빠져 남자들에게 ‘옥장판’을 팔던 한 소녀를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 소녀와 같은 젊은 학생들을 우리 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로 ‘거ㆍ마 대학생’들이다.
대학생 김 모(여, 22) 양은 올 초 친척오빠로부터 “전문연구기관에 일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말을 듣고 찾아간 곳에서 김 양은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당한 채 다른 여성 7명과 감금되다시피 합숙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 양은 대출금은 금방 갚을 수 있다는 부추김에 넘어가 연 39%의 높은 이자를 무릅쓰고 제2금융권으로부터 1,000만원을 대출받아 투자했다. 대학 4학년인 김 모 군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속아 저축은행에서 1,500만원을 대출받아 물품구입비로 냈다. 그러나 두 학생 모두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금융채무 불이행자, 즉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피해자를 동시에 가해자로
다단계에 빠진 대학생들은 주로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에서 합숙을 해, ‘거ㆍ마 대학생’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감시와 압박 속에서 기본적인 인권조차 유린당한 채 고금리 대출을 받아가며 다단계 영업에 내몰린다. 신문에서 뽑은 ‘불법 다단계… 슬픈 동거’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다단계 불법 판매사기 범죄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러한 ‘거ㆍ마 대학생’들은 다른 일반적 사기범죄보다 더 심각하게 여겨진다. 일반 사기범죄의 피해가 대부분 지나친 탐욕에서 빚어진 반면 거ㆍ마 대학생들은 어쩔 수 없는 절박함에서 당하는 사기인 까닭이다. 청년실업에까지 이른 취업의 어려움, 등록금 마련의 어려움 등 대부분의 대학생들의 어려운 현실을 악용하는 셈이다. 이들은 빚에 대한 불안과 죄책감, 기약 없는 내일에 대한 공포를 먹이로 삼아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더구나 학생 자신만이 아니라 친구들까지 끌어들여 스스로 공범이 되도록 만들어 대학생들을 사회적 낙오자로 전락시키고 만다. 결국 대학생 다단계 불법판매 사기는 관련된 학생들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든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일종의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교묘하게 진화하는 ‘괴물’ 다단계

 

불법 다단계 판매 사기를 ‘머리를 잘라도 계속 머리가 생기고 자라나는 괴물’이라고들 한다. 뿐만 아니라 불법 다단계 판매는 더욱 진화하여 과거 합숙, 물건판매 형식에서 비합숙, 취업알선 형태로 바뀌고 있다. 또한 거여, 마천 지역을 중심으로 하던 것이 이제는 교대, 역삼, 방배 등 강남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유인방법도 ‘대면’ 방식에서 쉽게 인맥을 쌓고 관리할 수 있는 ‘SNS’로 옮겨갔다. 과거 거ㆍ마 대학생의 경우 ‘합숙의 강요’라는 명확한 증거와 ‘열악한 주거환경’ 그리고 합숙으로 인한 ‘문란한 사생활’ 등에 대한 사회적 반응과 여론으로 혐의의 입증이 쉬웠다. 문제는 최근의 비합숙 형태는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쉽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뻔한 사기에 쉽게 속는 대학생들을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들 대학생들의 어리석음만 탓할 수 있을까? 대학생들에게 건강한 희망을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만든 피해자요 희생양은 아닐지. 우리가 학생들을 불가능에 가까운 취업전쟁의 사지로 내몰아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고통 속에서 사물을, 현실을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존재인 ‘보이지 않는 괴물’로 만든 건 아닐까. 학생들은 잘못된 사회구조, 체제, 제도의 피해자가 된 것은 아닐까. 피해만 당한 학생들은 신용불량자가 되어 청춘을 저당잡히고, 어쩌다 피해를 만회해보려고 친구에게까지 피해를 입힌 학생들은 범죄자가 되어 인생을 통째로 압류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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