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하철 문이 닫힌다. 급히 계단을 내려오던 남자가 창을 통해 망연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내가 조금전 서있던 저곳이 얼마나 견고하게 차단되었는지 실감한다. 열차 밑으로 밀려가고 그의 모습을 보며, 창밖에 실리는 승강장의 낙오자들을 비웃었다. 무릎이 풀리고 취기로 상체가 젖혀지며 바라본 어두운 창 너머에서 그림자를 닮은 내 영혼이 그가 보냈던 눈길로 나를 본다.

2. 자정이 넘은 시간 노출된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전화기를 안고 있는 여자가 있다. 노란 불빛 아래 단정치 않게 흩어진 어둠이 그녀를 노리듯 맴돌고, 그녀의 긴 머리칼은 어깨와 수화기를 삼킬 듯 덮고 있다. 그녀의 움직임 없는 어깨선에서 통화가 거절된 앙칼진 신호음을 읽다가 문득 지하철 창에 기대던 취기의 사내를 떠올렸다. 시선이 묶인 채 걷는 나. 지하철처럼 등뒤로 빠져 나가는 부스의 여자.

3.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시오’라고 친절한 안내방송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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