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문턱에 들어선 이들에게

自主的立場(자주적입장) 마지막 完成(완성)단계
一切(일체)를 自己(자기)스스로 解決(해결)해야


  大學(대학)의 좁은 문에 들어 선 여러분들의 새로운 학생의 개막을 충심으로 축하드린다. 맨 앞자리를 차지한 여러분들의 가족과 모교의 은사님들을 위시하여 삼천만의 관중들이 만당을 메웠고 화려한 무대 위엔 2, 3, 4학년의 선배들과 교수님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거창한 역사의 드라마에 하나의 중요한 역을 치르기 위해 갓 등장한 것이다. 군들의 심정은 지금 어떤 것일까. 2百(백)80일을 어머니의 태반 위에서 숨 쉬다가 갓 나온 신생아 경우를 생각해 본다.
 
  군들은 지금 신생아처럼 설레고 어리둥절한 마음이 아닐까. 어머니 배안처럼 안온하고 안전하면서도 갑갑하고 이를 데 없는 <사랑과 구속>의 세계에서 갑자기 인격과 학문의 도야를 주안점으로 삼는 大學(대학)이라고 하는 공동사회의 <비정과 자유>의 울타리도 방비도 보호도 간섭도 제약도 없는-흡사 폭풍우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광야를 연상케 하는 낯설고 거칠고 삭막한 세계에 내던져진 것이나 아닐까. 거기서 여러분들은 교수님들의 길잡이에 크게 힘입어야 하겠거니와 여러분들에겐 초등장자다운 흥분과 호기심과 기대감이 각자의 개성에 알맞게 작용하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여러분들이 이제까지의 12년 동안의 학교교육과 그 사회를 위해서 비유한 바와 같이 어머니 배안의 세계와 다름없고 대학교유과 그 사회는 흡사 폭풍우가 난무하는 광야나 노도광란이 쉴 사이 없는 거친 바다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무한의 자유가 허락된 대신에 사랑이 결핍되어있고 아무런 구속도 없는 대신에 지나치게 非情的(비정적)이다.
  이제까지의 학교사회에 있어서의 여러분들의 위치는 주로 依他的(의타적)이었기 때문에 여러분들 자신의 主體的(주체적) 입장이라는 것이 확립되지 않았지만 대학사회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니다. 자유의 量的(양적)인 관점에서 볼 때 大學社會(대학사회)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과의 격차가 너무나 심하고 그것이 체계적인 연속이라기보다는 斷層的(단층적)이며 비조직적이라고 함이 적절한데에 병적증상이 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自由(자유)의 楊(양)의 分配(분배)가 高等學校(고등학교)까지와 大學(대학)에서부터의 것이 점진적 증대가 아니고 돌변적 팽창인 점은 흡사 무와 유의 양극적 대립과 같아서 이는 확실히 우리나라교육의 불건전상이며 후진국가적 양상이거니와 이점은 <단적으로 한국의 교육사회선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부를 많이 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공부하지 않는다>는 선진사회와는 전연 색다른 기현상으로 그럴싸 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제일 많이 공부하는 학교는 초등학교이고 세계의 교육사 위에서도 가장 공부 많이 하는 학생은 한국의 초등학교 육학년생이라는 결론 대신에 한국의 대학교와 대학생은 공부 않고 노는 것이 주목적인 것처럼 돼있는 것이 저간의 형편이 아닌가. work와 play가 한국의 교육사회에서는 아주 전도된 역현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되겠다. 그러기에 문교부에선 근자에 생각하면 약간 우스꽝스러운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부하는 大學生(대학생)과 연구하는 교수>가 있는 大學(대학)의 재건이라면서 과거에 없는 예산책정에 비하면 실효가 박약한 구호에만 그치고 있거니와 외국인들이 보면 이해도 안가려니와 우리로서 보더라도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이제까지의 大學社會(대학사회)였나 보다. <공부 않는 大學生(대학생)과 연구 않는 敎授(교수)>가 차지한 大學社會(대학사회)였다는 증거다.
  말이 약간 빗나간 듯 하지만, 大學社會(대학사회)의 本疾(본질)과 그 있어야할 方式(방식)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면 다행한 일이다.
  위를 종합하여 한마디로 말한다면 大學生(대학생)은 이제까지의 非主體的(비주체적)입장에서 依他的(의타적)이 아닌 自存的(자존적) 自立的(자립적) 입장에로의 전환을 감행하는 아니 감행해야할 人格的(인격적) 主體(주체)라는 것이며 大學(대학) 社會(사회)란 그러한 自己脫皮的(자기탈피적)기틀을 마련해 주는 學校(학교) 敎育(교육)의 오메가이며 現實(현실) 社會(사회)에의 알파로서의 마지막 완성 단계인 것이다. 이제까지의 <남으로부터의 남에의 나>에서 <나로부터의 나에의 진정한 나>가고 고의 소리를 올리는 첫 階梯(계제)이며 낡은 ‘내’가 죽고 새로운 ‘나’-곧 문자 그대로의 본질적인 ‘나’가 탄생하는 시기다. 청년심리학자들은 청년기를 제2의 탄생이라고도 하고 老哲學者(노철학자) 슈프랑거(Sprunger-1882)가 청년기의 정신적 특성을 대견스럽게도 <自我(자아)의 發見(발견)>이라고 한 것도 모두 그것이다.
  청년 중기에 대한 大學生(대학생)은 사춘기에 자각하기 시작한 막연한 自我(자아)를 재확인하고 재검토하면서 자기 나름의 人生(인생)의 외로우나 독자적이며 衆愚(중우)들의 박수갈채는 따르지 않을망정 특이하고 孤高(고고)한 길을 더듬고 굳혀가는 행운의 기회를 大學(대학)은 마련해 줄 것이다. 大學(대학)은 <기회를 주는 곳>이지 이왕에 코를 뚫어 잡아끌진 않을 것이다. 끌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간 大學(대학)의 4년을 그저 놓치고 만다. 그럴 사람이면 차라리 총액 壹百萬(일백만)원을 가지고 전답을 사거나 장사를 시작함이 영리한 일일 것이다. 주어진 마지막 행운의 기회를 포착하여야한다. 이놈을 최대한도로 이용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살리는 것이다. 고등학교교육이 個性(개성)의 발견과 지도라는 본래의 구실을 망각하고 영수학관이 돼 버린 지가 오랜 오늘, 大學(대학)은 고등학교에서의 일마저 뒤늦게나마 수행해야하는 임무를 지녔으면서도 거기엔 유감스럽게도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요컨대 한국의 오늘의 大學社會(대학사회)는 인격도야의 사회로서의 확고한 리더십이 없다. 大學(대학)의 병폐는 크다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과는 對話(대화)의 창문이 막혔고 과외활동의 기회라는 것이 전연 없다시피한 오늘의 현실에선 學生(학생)상호간의 交通(교통)조차도 차단된 채로다. 흡사 한국 사회의 축도나 되는 것처럼 캠퍼스 안에學生(학생)의 數(수)는 넘쳐흐르나 개개인은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고독하기만 하다. 學生(학생)은 敎授(교수)앞에서 孤兒(고아)이며 서로서로는 냉담한 적대관계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급기야 大學(대학)은 학사증배급소로 전락해 버리고 만 셈이다.
  강의는 있을지 모르나 敎育(교육)은 없는 大學(대학)에 크게 기대를 걸어선 환멸감밖엔 없을 것이니 끌어 주기만 기다리지 말고 자기가 나서야 한다. 나를 살려야 한다. 내가 공부해야 한다. 등록금을 낸 것만큼은 아니 그 이상으로 남들이 지불하고도 그 몫을 챙기지 못하여 남아돌아가는 부분까지 내 차례로 해야 한다. 이건 남의 것의 약탈이 아니라 流産(유산)될 국가의 재산의 활용이다. 그래서 신입생 8백60명중에서 그들이 낭비를 방지하고 허송되는 시간들을 유용하게 건져내서 한 두 사람의 ‘엘리트’가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를 정점으로 大學群(대학군)의 피라미드가 형성된다. 大學(대학)은 그로 인해서 생각하고 발전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휴강시간과 불실한 강의와 당국의 태만 등에 대하여 떳떳이 자기를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大學(대학)은 건강해지고 敎授(교수)는 연구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학생의 태만 속에 大學(대학)전체의 태만이 싹튼다. 그 책임은 피장파장이다.
  나아가서는 사회전체의 무드가 책임의 일단을 져야 할 것이고 大學(대학)의 첫날에 大學(대학)4년의 설계를 해야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올1년의 계획표를 작성해야 한다. 大學(대학)4년은 人生(인생)80년의 盛花期(성화기). 다음에 올 풍성한 結實(결실)을 위하여 멋있게 꾸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인가 한 가지 것에 아주 미쳐버릴 줄 알아야 한다. 미쳐 버리는 그 한 가지 것은 곧 宇宙(우주)의 根源(근원)과 통하는 核心(핵심)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청춘의 깊고 깊은 고민을 통하여 神(신)의 뜻을 짚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생애를 바쳐서 매어달릴 수 있는 그 하나의 것을 찾아 젊은이들아 放浪(방랑)하고 여행하라.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를 찾아 地平線(지평선) 끝까지 編曆(편력)을 계속하라. 우선 단 한 번의 기회가 될 오는 여름휴가 60일을 그저 놓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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