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난 떠나야해.”
“새삼스럽게 그런 말은-”
“입대를 했으면 제대를 해야 하니까.”
“그건 나하곤 아무 상관없는 일예요.”
“상관이 있지 여기서 살았다는 죄가… 나는 가봐야겠어.”
그는 문을 열었다.
“그런 얼굴로 싫어요.”
“그럼 어떤 얼굴을 할까.”
“이런 땐 취한 얼굴이라면 좋아요.”
“아냐 정신은 말똥해”
“거짓말로라도 취했다고 해주세요.”
“그게 진실인걸.”
“아냐요. 뚜렷한 이야기도 없이 뭐-”
“뚜렷한 명분이 있으면 이럴 필요도 없지.”
“하지만 내 마음은 틀려요”
“이제 가봐야겠어“
그는 댓들로 나와서 워커끈을 졸라맨다.
“왜 날 피하세요. 여길 찾아온 건 또 뭐예요?”
“시간이 남아서고 제대를 알리려 왔어”
“참말 그것뿐예요? 취하셨어요.”
“군화끈을 졸라매는 솜씨를 보면 알게 아냐.”
“취했다고 좀 해주세요.”
그녀가 빽 고함을 질렀다.
“큰일을 치룬 사람처럼 심각하지마세요. 고고한 척 하지 말란 말예요. 아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그녀는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그녀의 흰 목덜미가 여느 때 없이 가냘프고 길어보였다.
“좋은 추억거리였어”
그리고 그는 마루기둥에 기대서있는 그녀를 향해 “정말 좋은 추억거리였어”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문을 나왔다. 그녀는 뒤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발길을 옮기면서 좀 전 거리를 걷던 공장 여직공들의 말을 상기하였다.  얘, 그인 꼭 데리러 온데. 집정리를 해놓고 온대는 거야, 지금 내 밴 넉달째야-. 결국 그는 자기의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새삼 느낀다. 적어도 기다림을 덜어주었고, 그것은 분명히 추억거리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까.
다음날, 해가 설핏 기울 무렵 해서 보충병 대대 병력이 내무반으로 호송되어왔다. 간단한 사무처리가 완료되고 훈병(보충병) 둘이 내무반으로 인계되자 내무반장인 박병장으로서는 장황한 연설이 없을 수 없다. 그는 훈병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놨다. 이 연설은 보충병들이 들어올 때마다 레코드판처럼 재생되지만 그 말속에 얼마나 많은 보충병들이 녹아 났던가. 말이야 항시 두서가 없고, 내용이 없어도 되지만 음석이 쩌렁쩌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훈병들은 이제 삼사일 후면 각 부대로 배치된다. 그동안 너희들은 이 보충대 질서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군대란, 배꼽위로 배설하는 곳이다. 배꼽 아래로 배설하는건 모두가 시원한 것들이나 배꼽위로 배설하는건 입맛이 쓰다.
그러나 참지 않으면 안 된다. 입대 전 너희들이 따뜻한 이불속에서 꿈을 다듬고 있을 때 우리는 총을 들고 적을 응시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 너희들이 나라를 지켜줄 위대한 시기가 온 것이다.
사실 나라를 지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군대는 시원하게 배설이 안 되는 곳이고, 결국 참아내라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은 국민의 말이며 군의 지시다.
다음으로 본관의 말이 있다. 훈병들은 거의 삼개월동안 훈련에 시달려와서 통 바깥바람을 쐬지 못했다. 그래서 치맛자락만 보아도 설렌다는 심정을 잘 안다.
본관은 이날 밤은 기꺼이 너희들에게 외출을 보내줄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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