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세계로 이끌어 주는


  침울은 묵은 채 나의 생리가 되어버렸다. 꽃피는 4月(월)이 와도 잔인하다고 생각되지도 안하거니와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느끼지도 안한다. 검음 구름이 대기를 덮고 있듯이 나의 머리는 항상 우울한 기분에 잠겨져있어서, 나 이외의 어떠한 外界(외계)도 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산들바람에 휘날리며 떨어지는 초가을의 낙엽을 보아도, 울긋불긋 피어난 코스모스가 나풀거려도 애수를 느끼거나 기쁨을 느끼는 일도 별로 없다. 다만 氣分(기분)에 따라 落葉(낙엽)이 흩어지는 가운데 미친 듯이 춤이나 추고 싶거나, 미소짓는 듯 나풀거리는 코스모스에 내손이나 흔들어 주고 싶은 가냘픈 한 느낌을 가질 때도 있기는 하나 대체로 감정도 정서도 메말라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나치게 내 사념에 사로잡혀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해 가을 산비탈에 쌓여있는 落葉(낙엽)위에 주저앉아 미끄럼질을 해본 일이 있다. 그때 맡은 落葉(낙엽) 냄새가 좋았다. 바삭거리는 소리는 더욱 좋았다.
  그러나 깊은 기쁨은 아니었다. 내 몸을 枯葉(고엽)속에 내던지므로 가을을 진정 촉감해보려는 몸부림이었던가. 그것도 아닌 듯 하다. 내 마음을 침울에서 脫出(탈출)시켜보려는 시도였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다. 감옥은 우울하다. 거리를 헤매는 것도 산을 쫓는 것도 마음의 감옥에서 도망쳐 보려는 충동에서 오는 것이 많다. 무엇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에게는 季節(계절)감이 없다. 봄바람이 불건 落葉(낙엽)이 지건 그것은 눈알에 붙은 티끌만치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
  사색이나 명상이나 혹은 피로에 잠겨있는 마음에는 外界(외계)의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내면 世界(세계)의 季節(계절)과 自然(自然(자연))계의 季節(계절)과는 큰 관계없이 움직이는가 보다. 그러나 사람이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自然(自然(자연))에 몸과 마음을 내던지면서까지 자아에서 이탈하려 하여도 그러면 그럴수록 안으로만 굳어가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느 한 때는 바깥 世界(세계)의 사물에 마음이 밀착하여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개방될 때도 있다. 나 개인에 관하여 말하면, 맑고 밝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때다. 투명하고 높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 내 정신은 완전히 하늘 속에 녹아버린다.
  내 가슴의 문이 활짝 열려, 얽히고 설킨 나의 머리는 완전히 풀어치고 맑아진다. 하늘이 나를 당겨 올려 내 자신의 마음과는 몸을 깨끗이 씻어주는 것 같다. 이럴 때는 나는 나의 정신적 육체적 무게를 잊어버리고, 地上(지상)에 걸려 있는 여러 닷줄이 끊어진다. 아주 홀가분한 몸으로 어디든지 높고 높은 저 하늘 가아 까지 아니 그 넘어 永遠(영원)의 世界(세계)에 까지도 날라 가게 될 것 같다. 解放感(해방감)치고 가을하늘이 안겨 주는 만큼 깊은 느낌을 던져주는 것은 없으리라. 그것은 보통 우리들이 기쁨이라든가 喜悅(희열)이란 말로 表現(표현)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보다 次元(차원)이 높은, 말하자면 靈的(영적)인 것이다.
  한여름에 햇빛이 작열하는 하늘가에 뭉게뭉게 떠있는 흰 구름은 손을 펴고 한 아름 안아보고 싶은 즐거움은 일어나도 가을의 맑고 높은 하늘은 그러한 육체적인 감격은 주지 않고 깨끗하고 존엄하고, 숭고하고 성스러운 무엇을 풍겨주어 심신의 淨化(정화)와 昇化(승화)를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時機(시기)를 마치 篤信者(독신자)가 聖地(성지)의 神殿(신전)에서 참배하는 날을 기다리듯 기다린다. 초가을에 코스모스가 피어나올 때면, 그 꽃의 아름다움보다, 바라던 그 하늘이 다가옴을 알려주기에, 가을의 감상이나 애수보다 구원의 희망과 기쁨을 더욱더 느끼게 된다. 이러한 季節(계절)이 있기 때문에 그 季節(계절)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온통 빨아들이는 하늘이 있기 때문에 삶의 보람을 새삼 느낀다.
  또 이런 하늘을 가지게 된 우리의 땅을 좋아하게 된다. 산은 벌거숭이가 되고 강물은 줄어들면서 더러워지며 사람들은 理性(이성)을 잃고 야박해질 대로 되어 국토의 沙漠化(사막화)를 보는 우울한 사람에게는 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은 하나의 희망이요 구언이요 기쁨이다. 살벌하고 침울한 겨울이 뒤쫓고 있다는 것을 알면 구름을 타고 이 하늘 따라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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