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신념

선택한 사명信念(신념)속에 행사
指導者(지도자)는 意志(의지)있는 政治家(정치가)라야
 

自身(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에 意見(의견)이나 方法(方法(방법))을 고치는 수가 있다. 이것을 얼른 보기에는 겉은 겸손하고 善意(선의)로운 態度(태도)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自明(자명)한 理致(이치)에 大海(대해)서 완강하게 反對(반대)하는 일 그것은 狂氣(광기)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國民(국민)이라는 것은 優柔不斷(우유부단)한 指導者(지도자)에게는 별로 즐겁게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곧잘 볼 수 있다.
  ‘안소니ㆍ이든’경은 英國(영국)에 있어서 극히 사랑받는 人物(인물)이고 또 그것은 充分(충분)한 理由(이유)가 있는 일이지마는 그가 수상이 된 후에는 野黨(야당)의 政治家(정치가)뿐만 아니라 때로는 與黨(여당)에서까指導(지도) 그를 반대하는 슬픈 꼴을 보았다. 그가 어떤 일을 決定(決定(결정))한 후에 가끔 그것을 取消(취소)하려고 하였던 까닭이다.
  이것은 例外(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國民(국민)으로부터 長期間(장기간) 國事(국사)를 指導者(지도자)적 位置(위치)에 받들어지고 빛나는 名譽(명예)를 남긴 사람은 언제 어느 때던지 意志(의지)가 굳센 사람이었다. 나폴레옹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난 그를 尊敬(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나폴레옹이 逆境(역경)에 처하여 놀랄만한 굳센意志(의지)를 보여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1814년 聯合軍(연합군)이 和親(화친)을 要請(요청)하였을 때 만일 나폴레옹이 佛蘭西(불란서) 본래의 國境(국경)까지 물러날 것을 승인할 것 같으면 그의 제위를 그대로 維持(유지)시켜 줄 것임을 알려왔다.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내가 不名譽(불명예)에 빠지는 것인가?’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拒絶(거절)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능한 方法(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尊敬(존경)을 그 한몸에 지니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10년 후 浪漫主義(낭만주의) 世代(세대)의 靑年(청년)들이 나폴레옹을 얼마나 尊敬(존경)했는가를.
  ‘윈스턴ㆍ처-칠’은 어떠한 政治家(정치가)도 그렇다 싶이 그 生涯(생애)에 있어서 여러 가지 過午(과오)를 범했다. 그러나 歷史(역사)는 그러한 잘못을 모두 용서하고 단지 그의 부요불굴의 態度(태도)만을 간직하고 있다. 國民(국민)이란 것은 그들의 政府(정부)에 예컨대 ‘알렉산더ㆍ듀-마’의 主人公(주인공)과도 같은 英雄(영웅)을 發見(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항상 正義(정의)의 鬪士(투사)이며 泰然自若(태연자약)하고 일에 임해서는 언제나 堂堂(당당)하게 應(응)하고 일단 칼을 뽑으면 반드시 이기고 사소한 일에 결코 흔들리지 않고 어떠한 사람보다도 늘 월등한 그런 美雄(미웅)을.
  잘 생각해보면 大衆(대중)이 指導者(지도자)들에게서 이토록 斷乎(단호)한 결의를 要求(요구)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指導者(지도자)란 意志力(의지력)을 가지고 國民(국민)을 躊躇(주저)로부터 갈라놓는 人物(인물)을 말한다. 만일 指導者(지도자)自身(자신)이 체념한다면 國民(국민)은 어떻게 行動(행동)해야 좋을 것인가. ‘아이젠하워’와 같이 尊敬(존경)받는 人物(인물)조차도 분명히 그 빛나는 過去(과거)에는 넓은 信賴(신뢰)를 받고 있었으나, 大統領(대통령)에 就任(취임)한 첫 반년은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났다.
  그는 어떻게 나갈 것인가를 탐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決然(결연)히 國民(국민)을 指導(지도)하자마자 그는 또다시 崇拜(숭배)를 획득하였다.
  ‘그것은 극히 危險(위험)한 思想(사상)입니다’이러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大衆(대중)이 강한 性格(성격)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으며, 아니 아마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指導者(지도자)가 방침을 틀리고 그래도 오히려 완강하게 그것에 執着(집착)해 있을 때에 國民(국민)全體(전체)를 파국으로 이끌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나폴레옹’이나 다른 많은 指導者(지도자)들의 경우였습니다. 181년에 佛蘭西(불란서)를 구한 것은 ‘타레-랑’이었습니다.
  그는 斷乎(단호)한 性格(성격)과는 아마도 正反對(정반대)의 사람입니다. 政治(정치)의 태풍이란 大海(대해)의 태풍과도 같은 것, 오른쪽으로 기울거나 왼쪽으로 기울거나 해서 비로소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우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타레 랑’은 氣骨(기골)있는 人物(인물)이었다. 분명히 그는 오른쪽을 향했다 왼쪽을 향했다 하였다. 그러나 실은 그는 自己(자기)가 어디를 향해 있는가를 확실히 알고 있었으며 또 그곳에 到着(도착)했던 것이다. 둘째로 氣骨(기골)이란 必要(필요)條件(조건)이긴 하지만 充分(충분)한 條件(조건)은 아니다. 거기에 과학(또는 事實(사실)에의 인식)과 객관성(또는 事實(사실)에의 尊敬(존경))과 良識(양식)과 虛榮心(허영심)의 不在(부재)를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성질이 있어야만 政治(정치)적 指導者(지도자)는 事態(사태)를 있는 그대로 幼想(유상)도 自己(자기)滿足(만족)도 섞지를 않고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指導者(지도자)에 大海(대해)서 決定(決定(결정))을 내리기 전에 徹底(철저)하게 분석할 것을 要求(요구)하고 있다. 斷乎(단호)한 性格(성격)을 가지고 계획의 실현을 꾀한다는 것만 가지고는 充分(충분)치 못하다. 그 계획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에 넣고 만들어지는 것이 必要(필요)한 것이다.
  政治家(정치가)들이여, 國民(국민)이 그대들에게 구하고 있는 것, 그것은 오늘 내린 명령을 내일 取消(취소)하지 않으면 안 될 位置(위치)에 몸을 두지 말 것이다. 그것은 愼重(신중)하게 길을 선택하고 일단 선택한 후에는 올바르게 그 길을 우리들에게 지시하는 것이다. 우리들을 끌고 가면서 서중에 한 발자국 마다 발을 멈추고는 “용서하십시오. 아무래도 길이 틀린 것 같습니다”라는 따위의 말을 안 해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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