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대표

워싱턴포스트와 워터게이트. 이 단어 조합을 떠올리며 가슴 뛰지 않을 기자가 있을까? 지구상의 수많은 언론인들에게 워터게이트 특종 스토리는 로망이다. 그래서 지난 8월 5일 발행인 캐서린 웨이머스가 신문매각을 발표했을 때, 영문 모르고 편집국에 모여든 워싱턴포스트(WP) 기자들 못지않게 나도 충격을 받았다.

이런 신문이 아마존 창업자에 팔린 사실을 ‘주간조선’은 “최고급 지성지로, 뉴욕타임스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신문이 세계 19위의 졸부 제프 베조스 손에 넘어간 것”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WP의 매각 금액은 베조스가 보유한 재산의 1%에 불과한 2억 5천만 달러였다. 문제는 유력 신문이 이른바 ‘큰 손’에 넘어가는 일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의 수익 구조가 악화되면서 지난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이 루퍼트 머독에 넘어간 것을 필두로 지난 8월 초엔 보스턴글로브가 팔렸다. 2010년엔 프랑스의 르몽드와 영국의 인디펜던트도 갑부의 손에 들어갔다.

흥미로운 것은 WP 매각에 대한 국내 언론의 반응이다. 베조스를 위기에 처한 WP를 구하기 위해 홀연히 나타난 백기사로 간주하는 논조가 많다. 여기엔 아마존이 혁신적인 기업이고, 베조스가 디지털 시대의 총아이자 천재라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해외에선 우려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WP 기자 출신인 에릭 맥길리스는 아마존이 저임금 경제구조를 촉발해 출판산업을 황폐화시킨 주범이라며 베조스의 WP 인수는 ‘나쁜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뉴요커 지의 존 캐서디는 베조스가 아마존의 독점화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WP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베조스를 WP의 백기사로 보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우리는 해외의 유력 신문들이 줄줄이 갑부의 손에 넘어간 이후 이윤창출이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사례를 여럿 봐왔다. 그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탐사보도나 국제뉴스 부문과 제일 먼저 희생됐다. 물론 베조스가 WP를 적자에서 구해내고, ‘킨들’과 결합한 멋진 온라인 매체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널리즘에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건강한 공론장을 제공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역할이 있어야 한다.

‘올드 미디어’가 퇴조하고 언론의 사적 소유가 심화되는 추세에서도 한 가지 희망적인 현상은 비영리 독립 언론매체가 잇달아 생겨나는 것이다. ‘뉴스타파’도 이런 역사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본다. 언론 매체는 사주나 주주의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가 아니라 오로지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할 때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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