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학생들이 ‘의대생 성추행 사건’ 가해자들의 출교 조치를 학교 측에 요구하고 있다.

‘야 봉숙아 택시는 말라 잡을라고/오빠 술 다 깨면 집에다 태아줄게/저기서 술만 깨고 가자 딱 30분만 셔따 가자/아줌마 저희 술만 깨고 갈께요’

위는 밴드 ‘장미여관’의 ‘봉숙이’라는 노래가사 중 일부분이다. 노랫말에는 데이트 상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는 한 남자가 그려졌다. 만약 불행하게도 ‘봉숙이’가 그날 밤 성폭행을 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녀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하려 수화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돌팔매가 두려워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오히려 자신을 자책하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제2의 봉숙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봉숙이는 남자를 신고했어야 옳다. 그랬다면 그 남자가 또 다른 봉숙이를 찾으러 다니는 악행을 막지 않았겠는가.

성범죄 2차 피해 두려워 신고 못해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성폭행관련 사건 피해자의 신고율은 12.3%(2010년)에 불과하다. 왜 많은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았을까. 아니 왜 신고하지 못했을까? 성범죄는 1차 피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이다. 피해 여성의 30% 이상이 심지어 자살하고 싶었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이유는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Secondary victimization)가 두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 성범죄 피해 학생들도 봉숙이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A대학 김혜진(가명) 양은 같은 학교 남학생 최인규(가명) 군과 술을 마시던 중 성폭행을 당했다. 이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최 군은 오히려 합의를 안 해주면 학교에 소문을 내겠노라 김 양을 협박했다. 견디다 못해 합의를 해주자 최 군은 돌연 태도를 바꿔 김 양의 자퇴를 종용했다. 이를 거부하자 최 군은 ‘김혜진이 자신을 꼬셔 성관계를 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결국 김 양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B대학 한소영(가명) 양은 동기들과 대학 인근에서 술을 마셨고, 일행 중에는 이수철(가명) 군도 포함돼 있었다. 한 양은 자취방으로 자리를 옮겨 2차로 술을 마시던 중 필름이 끊겨 버리고 말았다. 일어나보니 자신의 옷이 벗겨져 있음을 발견하고 그제야 이 군에게 성폭행 당한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한 양은 자신을 문란한 여자로 볼까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데이트 성폭행’,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2010년)

위의 사례들은 대학사회 성범죄 유형 중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누가 대학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는가이며, 그 누구는 바로 내 주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또한 자그마치 6년 동안이나 함께 공부한 동기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또 무려 19명의 동료 여학생들을 추행하거나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학생 또한 같은 과 급우였다.

한 방송국 보도에 따르면, 성폭력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전체의 77.9%가 친인척, 연인 또는 지인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일반 성범죄는 물론이고 대학 내 성폭행의 경우도 무려 84%가 동급생, 선후배 등이 가해자로 밝혀져 결국 아는 사람이 저지른 범행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처럼 아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를 학술적으로 ‘데이트 성폭력(Date Sexual Violence)’라고 한다.

성폭행 피해자는 무고하다

학내 성범죄 피해자들은 상대적으로 공동체 규모가 작은 대학사회 내에서 소문과 비난을 감내하기가 더욱 힘든 처지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선 성범죄를 성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최근 들어 성범죄를 강간(Rape)이 아니 라 성폭행(Sexual assault)이라 부르는 것도 편견을 타파하고 있는 한 예로 볼 수 있다. 즉, 성범죄는 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폭력행위인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는 어떤 경우에도 비난 받지 않아야 하는 무고한 피해자(Innocent victim)다.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강도를 살해한 가장은 ‘자기방어(Self-defense)’가 인정되어 모든 비난이 강도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성범죄 가해자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때문에 모든 비난은 성범죄 가해자에게만 향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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