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이 펴는 동대관…그 찬양과 비판


   ‘大學(대학)’하면 言必稱(언필칭) “歷史(역사)와 傳統(전통)에 빛나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과연 우리들에겐 얼마만큼 자랑할 만한 “歷史(역사)와 전통”을 가졌는지?
  20년 전 우리들이 學校(학교)를 다닐 때를 생각해 본다.
  8·15 解放(해방)과 더불어 새로 昇格(승격)한 大學(대학)과 雨後竹筍(우후죽순)처럼 솟아난 新生大學(신생대학)등 그 많은 大學(대학)들 가운데서 ‘동대’에 籍(적)을 둔 것을 우리들은 얼마나 自矜(자긍)하고 自負(자부)하였던가?
  우리는 모두가 그 現實(현실)이 그대로 우리 ‘東大(동대)’의 ‘歷史(역사)’가 되고 ‘傳統(전통)’이 되어 이 나라 이 社會(사회)에 길이 뻗칠 것을 다짐하고 바라마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더운 여름날, 梨花女高(이화여고)에서 서울신문사 見習記者(견습기자)시험이 있었다. 都下(도하) 각 대학의 졸업자·졸업예정자 약 2백50명이 無冠(무관)의 帝王(제왕)의 꿈(그때)과 學校(학교)의 명예를 걸고 角逐戰場(각축전장)(?)에 임하였다. 이윽고 두달 후 이 시험에서 뽑힌 6명의 젊은이들이 月灘(월탄) 朴鍾和社長(박종화사장)으로부터 入社辭令(입사사령)을 받았다.
  40대1의 경쟁을 뚫고 言論界(언론계)에 入門(입문)한 이 6명의 出身校(출신교)를 보면 東大(동대) 4, 서울文理大(문리대)1, 延世大(연세대)1명이었다.
  우리의 同門(동문)은 全合格者(전합격자)의 실로 3分(분)의 2를 압도한 것이다.
  (당시 서울신문은 全國日刊紙(전국일간지)중에서 最高(최고)의 發行部數(발행부수)를 내고 있었음.) 이상은 1949년 10월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쩐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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