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광명 큰 지혜 큰 힘으로


<탄생의 기쁨안고>
  5일(陰(음) 4월 초파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누리에 가득찬 어두움을 깨뜨리고 광명과 지혜를 밝혀 참다운 삶을 이룩하기 위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이다.
  만남은 이별의 슬픔을 지녀야 하며 태어나는 모든 목숨은 언젠가 죽음의 어둡고 두려운 수렁으로 빠져 들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동국의 학생들만은 아픈 탄생의 계기를 아예 즐거운 마음으로 받들어 섬기는 떳떳한 까닭을 지닌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사를 초월한 法體(법체), 즉 제三(삼)생명에의 귀의를 선언하고, 나아가 그 길을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동국은 그러한 부처님의 혜은을 입어 비로소 탄생되었으며 그 심오한 진리를 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하기에 갖은 노력과 힘을 바쳐왔다.
  동국대학교가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것은 62년 전 5월8일이다. 이날을 우리는 축하하는 마음 실로 큰 것이다.
  마치 前生(전생)의 죄악으로 점철된 두꺼운 업장을 깨뜨리고 새 출발의 계기에 선 듯 이름 모를 갖가지 초목과 벌레들이 눈을 뜨고 티 없이 맑은 하늘빛을 받아마시기에 더욱 발랄한 계절에, 우리는 개교기념일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축전을 벌이고 學問(학문)과 技藝(기예)를 다듬어 자랑하며 더 높고 더 원대한 理想(이상)을 좇아 자세를 가다듬는다.
 

<明進(명진)에서 東國(동국)까지>
  3大(대)私學(사학)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본교의 60여년 역사는 1906년에 창설된 明進學校(명진학교)에서부터 비롯된다.
  당시 우리나라 佛敎界(불교계)의 중앙교육기관으로 舊(구)한국정부의 인가를 얻어 元興寺(원흥사)(現(현)昌信洞(창신동))에 전문학교정도의 명진학교가 발족되어 민족문화개화기로 접어든 한국의 知性(지성)을 가다듬기에 힘썼다. 명진학교가 곧 佛敎師範學校(불교사범학교)로 이름을 바꾼 다음 中央學林(중앙학림)으로, 1930년 佛敎中央專門學校(불교중앙전문학교)로 昇格(승격)되었다. 1940년 惠化專門學校(혜화전문학교)로 개칭하였고, 解放(해방)을 맞이하여 東國大學(동국대학)로 승격되어 국어국문학과·영문학과·사학과를 증설하고 계속하여 정치학과·경제학과·임학과 등을 증설, 1953년 東國大學校(동국대학교)로 승격되어 지금의 종합대학 大東國(대동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의 단과대학을 보면 佛敎大學(불교대학)·文科大學(문과대학)·法政大學(법정대학)·農林大學(농림대학)·그리고 大學院(대학원)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어 각 단과대학 안에 필요한 모든 학과를 구비하였으며 대학원에 博士學位(박사학위)과정·경상대학·2부대학·敎養學部(교양학부)·産業大學(산업대학)·行政大學院(행정대학원)을 속속 增設(증설)하였다.
  현재 본교는 6개 단과대학 및 대학원, 행정대학원, 교양학부 등을 갖추고 있다.
  13만권 이상의 藏書(장서)를 자랑하는 맘모스 中央圖書館(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불과 근대화의 선두에 서서 한글대장경 번역 50년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東國譯經院(동국역경원), 大學禪院(대학선원), 연습림본부, 농장, 박물관, 과학관, 외국어교육원, 보건진료소(결핵요양원 포함), 기원학사 등 10개 附屬(부속)기관과 佛敎文化硏究所(불교문화연구소), 比較思想硏究所(비교사상연구소), 통계과학연구소, 농림과학연구소, 法政(법정)연구소, 경영관리연구소등 6개 附設(부설)연구소를 가지고 있다.
  한편 학교법인 東國學院(동국학원)은 사립 恩石國民學校(사립은석초등학교)와 東國中高等學校(동국중고등학교),明星女子中高等學校(명성여자중고등학교), 金山中高等學校(금산중고등학교), 금평국민학교를 합병함으로써 모름지기 全人的(전인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大東國(대동국)의 면모를 확립하였다.


<지혜·인내·용맹의 깃발>
  동국의 건아들은 수도 서울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南山(남산) 중턱에서 코끼리처럼 슬기롭고 용맹한 힘으로 正義(정의)의 구현에 앞장서 不義(불의)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번영과 복지의 인류사회를 세우기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다.
  모든 儀式(의식)은 三歸依禮(삼귀의례)(歸依佛(귀의불) 兩足尊(양족존)·歸依法(귀의법) 離欲尊(이욕존)·歸依僧(귀의승) 衆中尊(중중존))로 시작하여 네 가지 큰 誓願(서원)(四弘誓願(사홍서원))으로 맺어 부처님의 제자임을 재인식함과 아울러 보다 보람 있는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寶石(보석)같은 슬기를 수놓는다.
  法輪(법륜)(校標(교표)는 법륜을 상징한 것임)을 크게 굴리며 우리는 누리에 가득찬 암흑과 무지를 깨뜨리노니,
  遠大(원대)한 야망으로 불을 내뿜으며 邪(사)에 물들지 않고, 壯大(장대)한 항해도를 꾸민다.
  봄의 환희를 그 누가 막을 수 있을 건가.
  도도하게 전진하고 포복하는 진리의 깃발을 누가 제지할 것인가.
  東國人(동국인)이야말로 이 나라 사회와 전세계 인류를 구제하고 지도할 기둥이요 일꾼이다.
  부처님을 알게 되었다는 因緣(인연) 하나만으로서도 동국인은 가장 값비싼 使命感(사명감)을 지니는 것이다.
  이 캠퍼스를 거쳐 나간 선배들은 政界(정계) 및 법조계, 무역계, 학계, 교육계, 文壇(문단)등에 진출하고 있다.
  특히 文學家(문학가)로 데뷔한 선배들은 한국문인의 3분지2를 차지하고 있는 한편 그 흐름이 한국 신문학 60년과 함께 하고 있어 가히 동국문인을 손꼽지 않고선 한국문학 60년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한낱 자신의 이익을 거두기에 醜(추)를 보이지 않고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숨기었으며 不義(불의)와 不正(부정) 앞에선 나 하나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의 매력을 秘藏(비장)하고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萬海(만해) 韓龍雲(한용운)스님과 함께 救國(구국)의 투쟁에 앞장 서서 肉彈(육탄)의 사명을 다 하였고 왜경의 총칼을 무릅쓰고 전국 각처에서 독립운동을 전개, 독려하였다.
  上海(상해)에 여러 차례 密使(밀사)를 파견하여 巨額(거액)의 軍資金(군자금)을 전달키도 했다.
  4·19 당시 학생 데모대의 선두에서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부정 선거를 자행하던 李政權(이정권) 과 맨주먹으로 투쟁, 당시 李政權(이정권)의 牙城(아성)이던 景武臺(경무대)로 맨 처음 돌입했던 것도 바로 東國(동국)이다.
  日帝(일제)의 탄압으로 교문을 폐쇄당하기 무려 3次(차) 그러나 동국은 세대를 바꿔 나아가면서 그 용맹과 진리에의 불같은 칼날은 더욱 날카롭게 번뜩이는 것이었다.
  책을 끼고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또는 조용한 校外(교외)에서 젊은이가 갖는 知性(지성)을 닦기에 골몰하였다.
  不義(불의)앞에서는 鮮血(선혈)을 吐(토)하며 쓰러지는 肉彈(육탄)으로서 정의의 수호신이 되기에 주저치 않는 것이 東國人(동국인)의 氣質(기질)이다.
  지혜와 인내와 용맹, 이것은 코끼리의 성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코끼리처럼 유순하고 근면하였으며 지혜와 용맹으로 보리심을 구하며 修行(수행)하기에 부지런했고, 쉽사리 흥분하거나 성내지 않는 슬기와 德望(덕망)을 갖고 있다.

<來日(내일)에 사는 젊음을>
  거룩한 三寶(삼보)의 언덕 위에
  한줄기 눈부신 동국의 빛
  큰 광명 큰 지혜 큰 힘으로
  누리의 어두움 밝히노니
  우러보라 진리의 동산
  학문의 聖火(성화) 높이 들렸다.
  가슴마다 높푸른 理想(이상) 
  오직 의기에 찬 젊은 모습
  이 땅에 새 역사를 창조하리라.
  겨레를 위해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새 역사를 창조하리라.
  <以上(이상)은 校歌(교가) 李殷相(이은상)作(작)>
  知性(지성)과 사랑과 哲學(철학)이 메말라가고 있는 오늘날,
  인간의 精神生活(정신생활)은 점차 야위어 가고 마침내 빈사상태의 一步前(일보전)에 이른 큰 不安感(불안감)마저 들기도 한다.
  무질서와 혼돈, 이 따분하고 지루한 文化史(문화사)의 갈피를 덮고 새로운 꿈과 信念(신념)으로 우리는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 척의 배가 大海(대해)의 한복판에서 태풍을 만났을 때 우리에겐 여러 사람의 사공보다 단 한사람의 有能(유능)한 사공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獨斷(독단)이나 한낱 재능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낮추어 겸손한 마음씨로 먼저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일 할 수 있는 사람을 일 할 수 있도록 공부할 수 있는 사람 공부하여 그 理想(이상)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비로소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이 뚜렷하게 부각되며 따라서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오늘날의 문화를 直視(직시)하라.
  우리는 바야흐로 한국 신문학 60년의 發芽期(발아기)를 거쳤으며 비로소 본격적인 문화형성의 큰길을 걷게 되었다.
  눈부신 계기에 새 일꾼으로 태어난 동국인으로서 가장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눈빛을 깨끗이 씻고 큰 광명, 큰 지혜, 큰 힘으로 누리의 어두움을 밝혀야 한다.
  의기에 찬 젊은 모습은 가슴마다 높푸르고 理想(이상)을 안았으니 이 땅에 새 역사를 창조하기에 염려함이 없어도 좋다.
  구각을 탈피하고 佛陀(불타)의 가르침으로 새 역사 창조의 횃불을 삼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생명이며 체취일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 나아가는 방법이고 또한 길이다.
  이미 佛敎(불교)는 젊은이의 힘과 슬기를 요구한지 오래지만 그릇된 先入見(선입견)에 사로잡혀 밝음을 바로 보지 못하는 失手(실수)를 범한다.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法輪(법륜)을 힘차게 굴리며 人類(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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