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일을 맞이하여

萬人(만인)이 首肯(수긍)하는 眞理(진리)
항시 마음의 淨化(정화) 게을리 말아야
利己主義(이기주의)타파 위해 一生努力(일생노력)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새삼스럽게 생각되어지는 석가세존의 교훈을 몇 가지 되씹어 생각하고저 합니다. 그렇게 하여 올바른 그 교훈을 실천하는 길만이 우리가 ‘부처님 탄생하신 날’을 뜻 깊게 축하하는 소치가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 부처님께서 우리의 현실을 보신다면 첫째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바로 그렇게 듣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엇보다도 만인이 수긍하는 진리를 현양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합심하여 일하며, 개인이나 어떤 파당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부리지 말라.
  우리는 지금 국가적으로는 소위 정당이라는 이름 밑에 모인 소수인사들이 사실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들 다수의 빈곤한 실정을 덜기 위한 일에 지혜와 노력을 다 경주하기는커녕 과히 지혜롭지도 못한 그들의 능력을 보다 더 연마하고 수양하는 일에는 힘쓰지 않고, 우선 자기 개인과 그 개인에게 유리한 집단의 이익을 계산하는 일에 전신경을 쏟고 있는 느낌이 짙은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사회의 여러 분야에 있어서 그러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가까운 주변에 그와 꼭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기주의를 뿌리 빼고저 하여 이 세상에 오시었고, 그 일생의 모든 교훈은 거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인간치고 욕심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은 한결같지가 않은 것입니다. 오직 자기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욕심은 욕심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욕심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 ‘자기’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그 ‘자기’·‘나’ 한 몸의 五官(오관)이 훨훨 불타오르듯 나만을 위해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먹고 싶고 만지고 싶고 누리고 싶어지는 그 욕심처럼 고약한 욕심이 없다는 생각이 부처님을 出家修行(출가수행)의 길로 이끌어 가게 한 동기가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의 교훈의 근본바탕은 이 ‘자기’ 한 몸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욕심은 꼭 다른 이기주의적 욕심과 곁들여 면치 못하게 생겨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적 욕심은 그대로 두고 그 격돌만을 어떻게 피해보자니까 절충이니 타협이니 하는 소극적 행위가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정당화되고 그것이 진리인양 선전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격돌을 면할 수 없을 때 그때에, 이기주의자들의 생각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지 자기만의 욕심이 관철되도록 상대방을 눌러 이기는 수밖에는 없다는 방향으로 번져 가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이세상사람들 사이에 이기주의로 인한 대립과 투쟁이 소멸되고 평화가 이룩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가르치는 것으로 그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나는 앞서 ‘만인이 수긍하는 진리’라는 말을 썼습니다. 만인이 다 옳다고 긍정하는 일, 만인이 다 틀림없이 그렇다고 하는 말, 그런 게 어디 있느냐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것이 있으며, 그것이 자기 안에 실현되어진 것으로 직접 보여준 분이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이 진리로운 일, 진리로운 말을 알만큼 순수하지 못해서 그 진리의 존재는 부정되고 있을 따름인 것이지요. 어떤 일이나 어떤 말이 소수 이기주의적 집단에 의해서 긍정되는 일을 우리는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두고 진리라고 속단할 만큼 어리석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진리를 조작하는 방법이 꼭 이와 같습니다. 아니 진리는 이 이기주의적 세상에서는 흔히 의로운 것으로 나타나기가 일쑤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이 이기주의적 욕심에 물들어 있으니까 말이지요. 사람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진리를 모른다고 할만큼 치명적으로 썩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조상 때부터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이 깨끗한 마음을 무디게 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고 물들인다는 게 어떻게 한다는 말일까요.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 많은 사람들의 정당한 삶의 희망과 노력을 외면하고 오직 ‘나’ 한사람만의 이익을 악착같이 추구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기주의적 욕심이 바라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권력입니다. 그 욕심을 남의 간섭 없이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공인된 힘 말입니다. 그 힘의 지배를 받는 가난한 군중의 마음은 그 힘의 남용이나 誤用(오용)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眞面目(진면목)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權力(권력)이란 어디까지나 진리의 힘을 대행한다는 조건하에서만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리의 힘에 뿌리박혀 있는 것이 아닐 때 군중이라고 불리는 그 개개인의 마음은 결코 무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권력의 자리를 뒤엎는 진리의 힘을 발동하고야 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권력이 이기주의적으로 극도로 남용되었을 때의 민중의 분노는 터지고 그들의 마음은 참으로 한결같이 不義(불의)를 무찌르는 길로 규합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결코 조작된 진리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원히 그렇기만한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느 때, 어디에서도 틀림없이 들어맞는 진리, 양심이 바른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에요. 학식이 있는 사람도 학식이 없는 사람도 양심만 바르면, 아니 상식만 있으면 다 알 수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만인이 수긍하는 진리를 현양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합심하여 일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그 양심을 바르게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양심이 지극히 비뚤어져 있는 경우에도 그것을 채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사람일수록 내 양심은 바르다 하고 선전하며 다니는 게 또 이세상의 한 풍조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다 다소간 그러한 어리석음을 모면하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정도가 꼭 같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므로 사람은 참으로 겸손해야 되며 사람은 항상 그 마음의 淨化(정화)를 게을리 하지 말며, 그러한 사람들끼리는 세상에서나마 생활이 희망찬 것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러한 마음의 스승을 지도자로 모시고 같이 합심하여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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