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만큼 절실하지도, 마냥 들뜨지도 않았다. 오히려 세태에 휩쓸리는 듯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대학원 진학과 같은 유학이면 모를까. 호주 배낭여행 때 본 한국 어학연수생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던 내가, 바로 그 어학연수 준비를 한다는 게 참 모순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다. 가서도 즐겁게 열심히 생활했다. 그렇게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지난 2007년 한 해는 내게 둘도 없이 소중한 인생경험이다.

 2006년 가을, 졸업 전 한 학기를 남겨둔 채 휴학을 하고 취업 대비 영어공부를 하면서, 현재 나의 위치와 미래에 대해 무척 고민했다. 그렇게 오랜 갈등 속에서 결정한 것이 어학연수였다. 내가 마음먹은 것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었다.

 국가는 영국으로 결정했다. 부모님께서는 지연이 있는 미국 동부 쪽을 권하셨지만, 학비와 생활비, 체류비 등을 따져 봤을 때 영국 지방도시와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평소 선호도였다. 영국의 역사, 나아가 유럽 역사와 문화에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던 터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유학생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 홈스테이를 주로 한다는 점, 다리만 튼튼하면 왠만한 곳은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점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공부할 도시는 잉글랜드 북서부 체셔(Cheshire) 주의 주도 ‘체스터(Chester)’라는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로 정했다. 도시 역사가 2천년이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가까이에 우리와 친숙한 맨체스터와 리버풀이 있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마음만 먹으면 대도시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억양이 너무 강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나는 거센 억양이라도 그들만큼 구사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학교 입학허가 신청과 홈스테이 선정, 비자발급 등 까다로운 서류작업들은 대행사에서 해주었다.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 제출하고, 세부적인 의사만 전달하면 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실질적으로 내가 신경을 쓰고 준비한 것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전 공부 및 영어공부이다. 아무래도 배경지식을 쌓는다면 적응 시간도 빨라질 것이었다. 또한 영어에 대한 자신감과 능력을 키우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했다.

 배경지식은 주로 책을 통해 습득했다. 신사와 훌리건이 공존하는 사회, 하루에 사계절을 다 경험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날씨, 그람(g)과 킬로그람(kg) 대신 온스(oz.)와 파운드(pound)를 사용하는 영국인들에 대해 읽었다.

 영어공부는 회화중심의 듣고 말하기에 집중했다. 12월 한 달 간,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온 친하게 지내는 동생과 매일 한 1대 1 회화 스터디는 정말 큰 도움이었다. 일기쓰기를 통한 작문연습과 관용어 암기 및 사용도 병행했다.

 이렇게 3개월간의 준비를 마치고 2007년 1월 6일, 마침내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하얀 벌판과 함께, 나의 새로운 도전은 이제 막 발을 내딛는 참이었다.
 

최민희(사과대 신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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