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장의 총소리는 여전히 아침잠을 깨웠고 혜를 알고부터 조금씩 가셔졌던 두통도 또다시 나의 하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혜와의 교제가 두통을 결코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안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그녀를 만나는 처음 며칠 동안은 병아리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전혀 듣지 못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불현듯이 우체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병아리의 울음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처음으로 사창가에 다녀온 소년이 다음날 아침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과 같이 은밀하고도 뚜렷하게 나의 자아 속으로 전달되어 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사격장의 총소리 뒤 끝에 처절한 신음으로 공명(共鳴)되는 병아리의 울음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혜를 알기전보다 더 격심한 통증으로 내 머릿속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타앙, 탕트앙, 탕.
  이제 총소리는 머리를 금낼 기세로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꼭 병아리의 안부를 확인해야 될 것 같았다.
  이제 한 마리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체부의 마지막 편지가 나에게 결정적인 무력감을 주사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뼈마디가 녹아버린 듯한 무력감에 흠씬 젖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병아리는 오늘 안으로 죽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다. 병아리가 죽기 전에 나는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초조감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방안에는 신문지들이 이불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깨어진 혜의 사진유리를 신문지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얼굴을 신문지와 함께 마구 구겨서 휴지통에 쳐박았다.
  아스피린 두 알을 마저 삼켰다.
  반쯤 열려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대추나무 가지는 꼭 이 앙상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옹이 마다 파릇한 새순이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병아리가 죽기 전에, 병아리가 죽기 전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달리 갈 데가 있을 턱이 없었다. 몇 시간 동안이나 동네를 방황했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골프장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혜의 상아빛 얼굴이 걸음을 재촉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몹시도 뜨거웠다. 도시의 대기는 멀미처럼 아련했다. 산등성을 가로질렀다. 이제 곧 J릉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곳에서 우선 휴식을 취해볼 도리 밖에는 없었다.
  차차 갈증이 심해졌다. 마른 잎 같은 갈증이었다. 편도선이 찢어지듯이 땡겨지고 있었다. 사막 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능의 약수터가 희미하게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햇볕 속을 쉬지 않고 달렸다. 코끝에서, 이마에서, 목덜미에서 땀방울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러나 능에는 폭포와 그늘이 있을 것이었다. 물론 능을 아무나 무단으로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철조망에는 언제나 개구멍이 나 있다는 것을 함께 알고 있었다.
  작은 언덕배기 하나를 숨 가쁘게 넘었다.
  개구멍이 점점 크게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개구멍 앞에서 허리를 구부렸다.
  “뭐요, 당신?”
  나무 그늘에서 두 사내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펜치와 철조망 절단기가 쥐어져 있었다.
  “좀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안되오.”
  그들의 태도는 완강했다.
  “좀 들어갑시다.”
  나도 완강하게 그들을 밀쳤다. 갈증 때문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순간 억센 손아귀가 멱살을 조여 왔다.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저것이 보이지도 않소?”
  다른 사내가 나무 밑을 가리켰다. 서너 다발의 철조망 뭉치가 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우린 지금 철조망 보수를 하고 있는 중이오.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을 어떻게 들여보낼 수가 있겠소?”
  멱살이 스르르 풀렸다.
  “아, 아!”
  푸른 하늘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듯한 절망감이 내 몸을 조여 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능 안에는 꼭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빠개질 듯한 머리를 폭포수로 식혀야 될 것이었다.
  “제발 좀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나는 애걸하다시피 매달렸다.
  “상부의 지십니다.”
  “상부라구요?”
  “그들은 철조망 같은 것을 치는 일일 좋아하지요”
  사내가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들어가고 싶거들랑 정문으로 가서 정식 입장을 하도록 하시오.” 
  멱살을 잡았던 사내가 끼어들었다.
  “어떻게 한 시간 씩이나 걸어 돌아간단 말이요?”
  “그것은 내 알바가 아니요”
  나는 그들 앞에서 물러났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던가? 개구멍은 여기 말고도 또 있을게 아닌가?
  나는 보수 공사가 안 된 방향으로 철조망을 따라 걸었다.
  두 바가지의 약수를 쉬지 않고 들이켰다. 그리고는 폭포수에 머리를 식혔다.
  능 쪽으로 다가갔다. 기와지붕을 얹은 돌담이 능을 에워싸고 있었다. 꼭대기까지 돌담을 따라 올랐다.
  담 밑에 주저앉았다. 머리도 그닥 아프지 않았다. 최근 얼마 동안의 내 행동이 조금은 이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아리에게 그렇게도 몰두했던 나 자신이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내려가는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병아리의 안부를 확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들었다. 나는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때 웬 남녀의 목소리가 돌담을 넘어 들려왔다.
  “이런데서 할 때는 꼭 자기가 먼저 하더라.”
  “그래서 못했단 말이야?”
  “아니 하긴 했어.”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가 혜를 처음 만났던 날, 추리닝을 입고 있었던 사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요즘 널 찾아오는 녀석은 누구야?” 
  다시 사내가 물었다.
  “아랫동네 사는 사람이래. 머리가 이렇게 된”
  혜가 검지를 이마 옆에서 돌리는 장면을 상상하며 귀를 기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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