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지 말 것. 비록 절망에 가까운 심정이 된다 하더라도 재치 있는 여유를 가질 것. 모든 生活(생활)은 技巧(기교)이다. 他人(타인)을 ‘나’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만큼은 사랑하도록 할 것.
 

  따끈한 커피라도 앞에 놓고 가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서 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겼다. 돈빚은 져도 글 빚은 지지 말라던 말을 새겨보며 곤란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았다. 여지껏 비를 오시게 한 먹구름이 몰려가면서 마알간 하늘이 수줍게 고개를 든다. 그 하늘은 가을 하늘마냥 참 곱다.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애매한 이 비가 물러 가고나면 추워질 텐데 겨울준비를 안 해서 걱정이다. 올 겨울은 유난스레 추울 것 같고 봄은 아직도 너무 멀리에 있다. 마음만이라도 불을 품고 산다면 겨울을 섭씨 37.5도만으로 지내기에 하나도 춥지 않을 텐데 마음은 바깥 기온보다 더 영하로 내려가고 있으니.
  다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따스한 커피에 몸을 녹이고 있자니, 그렇게 거대하게 부딪쳐 오던 生活(생활)이 눈 아래 보이는 듯하다. 태산에 오르니 노나라 땅이 작데 보인다더니 이쯤의 안락에도 생활이 왜소하게 보인다.
  살아가는 것이 生活(생활)이고 생활은 사람이며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며 앞에 있는 친구 녀석을 바라본다. 그도 역시 他人(타인)일 수밖에 없는데, 오늘따라 유난스레 예쁘게 보인다. 세상의 모든 他人(타인)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타인, 그리고 한번 만나고 말 타인들, 그들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듯 시침을 떼고 있다. 앙징스럽게.
  새끼를 낳은 고양이가 자기 새끼의 몸에 묻은 피를 깨끗이 핥아 먹듯이,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살아온 생활을 깨끗이 핥아 먹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침을 떼고 있는 것은 아닐지? 무엇을 감추기 위해 말끔히 핥아 먹는 것인지 그것은 혹시 부끄러움은 아닐지, 생활이 남긴 상처와 도처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
  시골에 가 있던 몇 날 중에서 매일 열여덟 시간의 수면을 통해 얻은 하나의 수확, 生活(생활)은 곧 技巧(기교)이다.
  技巧(기교)란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性質(성질)의 것이어야만 하고 智慧(지혜)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살아가는 者(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들을 했다.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쏟아지는 지식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는 아마도 망망대해 속에 갇혀 있는 뗏목위의 피난민은 아닐까?
  오직 하나 남아 있는 바이올린의 G현을 바라보는 孤獨(고독)한 人間(인간)이 우리의 모습이여야 할 것 같다. G현을 바라보는 시선은 生活(생활) 해나가는 방식이 다른 만큼의 각도를 갖는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와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고독과 그리고 살아 남아있다는 충일한 생명력, 혹은 감사의 마음을 우리 모두는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 색깔과 무게는 다를지언정 다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한줄 G선의 바이올린이다. 智慧(지혜), 곧 技巧(기교)는 G선을 연주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항상 외롭고 우리는 항상 거대한 사회에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는 공포에 떨고 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은 그 고요 속에서 G선을 연주할 수 있는 技巧(기교)이다.
  절망하지 말 것, 비록 절망에 가까운 심정이 된다 하더라도 재치 있는 여유를 가질 것, 모든 生活(생활)은 技巧(기교)이다.
  他人(타인)을 ‘나’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만큼은 사랑하도록 할 것.
  그러나 항시 깨어있는 단 한사람이 되기를 기도할 것.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지 말고 스스로 가난한 마음을 가질 것.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되 추한 것 까지를 똑바로 바라볼 것.
  감사하게 받은 목숨의 각오로 잡초처럼 씩씩하게 살 것.
  이런 저런 순서 없는 생각들을 한 잔의 커피를 통해서 떠올린다.
  이젠 오래도록 못 만난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하고라도 부둥켜 안고 정다운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동악의 뜰에 계신 부처님께 삼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이젠 불같은 마음을 가지고, 튼튼한 겨울 준비를 자랑하며 강의실에 들어가서 용기 있게 박수를 쳐야겠다. 한학기동안 잘 배웠노라고 종강을 응큼 맞게 기뻐하며 신나게 박수를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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