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직장에서도 쫓겨났대. 자기는 뭐 병아리처럼 죽어가고 있다나?”
  그녀가 조그만 소리로 웃었다.
  “병아리처럼?”
  “그렇데.”
  “죽긴 왜죽어?”
  “글쎄 그걸 모른다는 거야.”
  혜의 웃음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지더니 다시 남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격장의 총성도 벌써부터 산을 넘어오고 있었나 보았다. 나는 급히 담배를 꺼내 물고 성냥을 켜 달렸다. 연기를 푹 들이마실 때마다 머릿속은 더욱 어지러웠다. 순간 깜짝 놀라는 듯한 의혜 목소리가 나를 놀라게 했다.
  “어머! 저기 사람 있나봐, 담배연기가 나고 있잖아?”
  나는 꽁초를 풀속에 던져버리고 다급하게 도망쳐 내려왔다.
  우체통을 열어보러 갈 차례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까의 휴식 때와 같은 자신감이 없었다. 집을 나설 때, ‘오늘 중으로 꼭’이라고 했던 다짐을 되살렸다.
  (오늘 중으로 꼭 죽는다.)
  나는 내 목숨을 조금이라도 연장시켜야 한다는 얼토당찮은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해가 산머리에서 한 뼘 정도 남아있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동네를 쏘다녔다.
  이제 육교를 건너서 우체통으로 가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한발 한발 육교의 계단을 올랐다. 해는 이미 산머리에서 설핏 거리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갑자기 요란한 경적 소리가 귀를 울렸다. 불자동차가 육교 밑을 질주하고 있었다. 깜박 깜박 깜박, 깜박, 소형 승용차가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지휘 차량인 모양이었다. 앞산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놈이었다. 수백 명의 예비군들이 산을 포위하며 개미떼처럼 오르고 있었다. 불길은 석양 아래서도 빨갛게 빛났다.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욕지거리 소리도 들렸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현 듯 방화범으로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동회의 확성기에서는 소화 작업에 참가해줄 것을 촉구하는 방송이 찌지거리는 잡음과 함께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육교 위에는 행인이 없었다. 언제나 앉아있던 병아리 장수도 없었다.
  (웬 일일까?)
  나는 육교계단을 내려오면서 그가 도망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교문이 바라보이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우체통이 한발 한발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열쇠를 찔렀다. 손등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렸다. 철커덕하고 문이 열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병아리는 온데 간데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방위표 모양의 쪽지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골목에는 저녁 햇빛만이 비스듬하게 들어차 있었다. 쪽지를 쫙 펼쳤다.
  마지막 병아리도 물론 죽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명복이나 비는 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병아리의 무덤을 만들어 볼까합니다. 당신이 잘 아는 J동의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가 될 것입니다.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에 늘어서있는 대추나무들 중에서 가장 앙상한 가지 나무 아래가 될 것입니다. 병아리의 사체가 꽃과 열매를 성숙시키는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한번 둘러봐 주십시오. 단 추모는 은밀해야 합니다. 죽은 자, 특히 병아리처럼 죽어간 자를 추모하는 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져있지 않다는 현실을 상기해야할 것입니다.
  자, 당신의 축소된 자유를 위해서, 안녕히. 능의 입구에는 수많은 불구경꾼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인파 속을 헤치며 능문을 통과했다.
  그리고는 가장 앙상한 가지를 가징 대추나무를 찾앗다. 호각소리가 등 뒤에서 연달아 들렸다. 소방차의 호수가 포물선으로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불길은 차차 잡혀가고 있었다. 나무에 팔을 기대로 이마를 붙였다.
  발 밑에 무덤 다섯 개가 둥그라니 솟아있었다. 무덤의 수를 확인한 순간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무덤 하나를 구두 부리로 툭 건드렸다. 흙으로 범벅이 된 병아리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두 번째 무덤을 무너뜨렸다. 또 한 마리의 병아리가 발아래에서 나뒹굴었다. 나는 무덤 다섯을 모두 발길로 헤집어 놓았다. 이때 산너머에서 또다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총소리를 다섯까지만 헤아려보았다. 소방차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사방의 병아리처럼 노랗게만 노랗게만 보이고 있었다. 나는 W자로 널브러져 있는 다섯 마리의 병아리에게로 눈을 돌렸다.
  다시 총소리가 터뜨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총소리는 머리가 아닌 나이 가슴으로 들어박히고 있는 듯 햇다. 나는 다섯 발의 총성을 헤아리고 있는 다섯 마리의 병아리에게로 눈을 돌렸다. 갑자기 온몸의 구석구석에서 석양처럼 붉고 선명한 피가 거꾸로 휘도는 것 같았다. 더욱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명복을 비는 일뿐이라는 지금의 현실이 가슴에 불을 지폈다.
  타앙 탕 트앙 탕
  총소리가 내 가슴에 다시 들어와 박혔다. 나는 병아리위에 구둣발을 얹었다. 그리고는 몸의 중심을 발바닥으로 옮겼다.
  ‘찌익, 툭!’
  병아리의 내장이 구두창 옆으로 삐져나왔다. 나는 또 한마리의 병아리 위에 발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힘껏 밟아 비틀었다.
  관저 수비대의 사격연습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다섯 마리의 병아리를 잇갈러버린 나는 살기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신중하고도 기민하게 능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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