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조화시켜 새로운 시적공간 형성

의식ㆍ자연ㆍ彼岸(피안)의 世界(세계)를 共有(공유)
旣存(기존)언어의 사용으로 풍요로운 詩語(시어)창조



  작가는 외부 세계로 열리는 비약과 내부 의식 세계로 향하는 심화로 實在(실재)와 現象(현상)을 짜 맞추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어휘 수와 의식구조를 주름잡는 핵심 어휘는 폭넓고 새로우며 아름답게 구성될 수 있도록 조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할 때, 작가가 하나의 사물 속에 잠재해 있는 수많은 개별적 이미지 등을 통하여 독자에게 무한한 의미와 상상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未堂(미당)의 詩(시)는 다른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全體的(전체적) 면목에 있어서나 端緖的(단서적) 조건에 있어서 독특하다. 고유명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상징과 실존적 이미지가 그러하며, 일상성에 존재하는 영역을 넘어서 체험 가능한 空地(공지)를 마련하는 것이 그러하다. 따라서 그 詩(시)에 대해서 명사 하나하나가 지니고 함축한 內包(내포)와 外延(외연)을, 그리고 의미의 반응과 정서의 明暗(명암)을 그 전체의 영역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未堂(미당)詩(시)의 경우 고유명사, 즉 <花蛇(화사)>에서 ‘뱀’과 ‘이브’ 등을 통하여 보여주는 기독교적 창조관과 친죄의식의 분위기, ‘순네’의 이미지를 통하여 보여주는 순수미 등은 눈에 보이지 않은 형식이다.
  클레오파트라ㆍ이브<花蛇(화사)>, 에레미야 書(서)ㆍ오픽이리아<桃花桃花(도화도화)>, 샤알ㆍ보오드레르ㆍ금女(여)동생<水帶洞詩(수대동시)>, 李太白(이태백)이 처럼ㆍ포올ㆍ베를레느의 달밤이라도ㆍ福童(복동)이와<葉書(엽서)>, 高乙那(고을나)<高乙那(고을나)의 딸>, 막다아레에나ㆍ카인<雄鷄(웅계)下(하)>, 관세음<西風賦(서풍부)>, 臾娜(유나)ㆍ鍾路(종로)<復活(부활)>
  ‘花蛇集(화사집)’에 나오는 이러한 인물 중심의 고유명사는 그 낱말 자체에서 이미 다정한 친근감을 주면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친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막다아레에나’는 순수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대표하고 있고, ‘금女(여)동생’이나 ‘臾娜(유나)’도 ‘금’(귀함)ㆍ‘동생’(사랑스러운 정감이 담김), ‘臾(유)’(착할 유ㆍ활이 뒤로 잦혀질 유) 娜(나)(여자의 풍채가 아리따울 나)등의 아름다운 語感(어감)으로 향토색까지 풍겨준다. 이와 같이 이미 아름다움이 풍겨지고 있는 고유명사를 통하여 아름다운 존재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은 未堂(미당)의 특기라 하겠다.
  이 외에도 ‘이브’에선 원죄를, ‘에레미야 書(서)’에선 진리를, ‘毘盧峰上(비로봉상)’에선 자연의 순수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十字架(십자가)’는 기독교적인 교훈을, ‘관세음’은 불교적인 敎示(교시)를, ‘아라스카’ㆍ‘아라비아’ㆍ‘아메리카’ㆍ‘아프리카’를 통해서는 비전을 갖도록 베푸는 기호로 Sing과 상징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는 곧 고유명사를 통하여 독자의 경험의 원형에 새로운 실존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연과 현실에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파생시키는 원천이 된다.


  아름다움의 파생적 힘에 또 하나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옹골지면서도 비약적인 힘이 있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현실에서의 활동이 있는 반면, 꿈의 시간이 있다. 이 활동의 시간과 시간이 交互作用(교호작용)을 하면서 삶은 영위된다. 둘 중 어느 하나가 없어도 삶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꿈은 현실 생활에 변화와 소망의 용기를 북돋아 주고, 현실 생활 역시 경험을 통하여 꿈을 키우는 작업을 한다. 未堂(미당)詩(시)가 많은 愛讀者(애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를 다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본다.
  앞에서 언급한 고유명사를 통한 현실에서의 美(미)의 파생적 원천은 상상력을 가지고 새로운 시적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未堂(미당)詩(시)는 드넓은 공간 속에 의미의 폭을 깊게 하고 있다.
● 구비 江(강)물은 西川(서천)으로 흘러 나려… <입맞춤>
● 瓦家千年(와가천년)의 銀河(은하)물구비 <瓦家(와가)의 傳說(전설)>
● 高句麗(고구려)에 사는 듯/ 아스럼 눈감었든 내 넋의 시골<水帶洞詩(수대동시)>
● 地歸千年(지귀천년)의 正午(정오)를 올자<雄鷄(웅계)上(상)>
● 創生(창생) 初年(초년)의 林檎(임금)이 ?酒(?주)한가 <雄鷄(웅계)下(하)>
● 江(강)물은 또 멫천린지, 한번가선 소식없든 그어려운住所(주소)에서 너무슨 소지개로 네려왔느냐 <復活(부활)>
  현대 詩人(시인)들은 어떻게 해서 詩語(시어)라고 하는 정서적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고심하는 것 같다. 그런데 未堂(미당)은 현실과 결부된 상상력으로 이러한 문제를 무난히 해결하고 있다. ‘高句麗(고구려)’ㆍ‘十年(십년)전 옛날’ㆍ‘創生(창생) 初年(초년)’ㆍ‘멫萬時間(만시간)’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상상의 공간을 누비고 다닌다. ‘네넋의 시골’ㆍ‘물결치는 銀河(은하)의 밤’ㆍ‘빈하눌’ㆍ‘한번가선 소식없는 그 어려운 住所(주소)’에서와 같이 의식ㆍ자연ㆍ피안의 세계를 共有(공유)하여 공간이 드넓어 비약이나 심화의 쾌감까지 제공하고 있다.
  ‘네넋의 시골’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관념과 경험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것이 될 수 없다.
  ‘횟불켜든우에 물결치는 銀河(은하)의 밤’과 같이 현실에 내재한 의미를 부각시키는 순수한 자연이 그 시가 내표한 주제 의미를 더욱 부각시킨다. 자연은 인생과 결부된 여러 의미와 진리를 그 안에 갖고 있다는 것을 東洋思想(동양사상)이나 기독교 思想(사상)을 몸소 체득한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雄鷄(웅계)下(하)>에서는 ‘創生(창생) 初年(초년)’의 원초적인 자연으로 人生(인생)에 부활과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기에 거기에 나타난 감정도 그토록 신기하고 간절하며, 영생주의까지 택하고 있음을 본다.
  ‘臾娜(유나)’ 이것이 멫萬時間(만시간)만이냐. 그날 꽃喪輿(상여) 山(산)넘어서 간다음 내눈동자속에는 빈하눌만 남드니,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없드니(復活(부활))구비 江(강)믈은 西天(서천)으로 흘러나려…<입맞춤>
  그리하여 그의 손에 의해 日常性(일상성)의 나르시즘에 젖어 무기력해진 언어들은 신화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며, 언어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여 새롭게 生(생)의 모든 것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면서 現象(현상)속에서 存在(존재)의 부제를 보기도 하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아득한 기억들을 되돌려 주기도 하며, 나 스스로를 발견케 하기도 한다. 나 자신의 경험으로 편협하게 된 나를 본래적인 나로 되돌려 주고, 그 근본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게 名哲性(명철성)으로 幻顯(환현)하여 주는 그의 언어는 실로 풍요롭다. 그의 詩語(시어)는 그렇다고 무슨 철학 용어를 끄집어 오거나 새로운 언어를 가져오는 일이 없다. 귀에 익은 기존 언어로 새로운 시어의 기존 질서를 세우는 것이 그의 詩世界(시세계)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未堂(미당)詩(시)의 공간은 매우 방대해서 참다운 인간의 존재 의미를 규명하고,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감정으로 감동을 깊게 울린다. 그러나 의식의 확산ㆍ비약ㆍ상승의 時空(시공) 속에서도 결코 안정감과 긴장의 밀도를 잃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花蛇集(화사집)>에 나타나는 시어들의 고유명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상징과 개개인에게 실존적 의미를 부여한다. 투박한 열정과 몸부림으로 그의 시는 시와 산문과의 거리를 좁히며 生動感(생동감)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인간의 공통 속성과 감격 본래적 의미를 잠재하고 우주까지 나아가는 상상력을 가진 그의 私的(사적) 체험은 萬人(만인)의 개개인에게 실존적 의미를 부여한다. 더구나 소박한 언어를 초월성으로 無(무)의 세계에서 새롭게 빚어 놓은 것은 인간 본연의 자세에서 인간성을 되찾게 해 준다.
  <花蛇集(화사집)>에 나타난 언어적 특성은 실로 인간적이면서 우주적이다. 여기서 시인은 앞으로의 향방의 기초를 다져놓고 있다. 상상력을 통한 상승의 욕망과 헬레니스틱한 전락의 기쁨과의 교호작용을 하면서 그려나가는 임의 이미지는 바로 시인의 이상을 향한 몸부림이다. 그리하여 시에 나타난 님의 시인 자신의 발전이요 <復活(부활)>에 나오는 ‘臾娜(유나)’의 부활은 시인 자신뿐 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까지도 각자에 맞는 실존적 의미로 파급되는 효과를 지닌다. 말하자면 ‘영원 시간’과 ‘무한 공간’속에서 아름다운 님의 이미지를 萬有(만유)의 ‘님’으로 심어놓는 작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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