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창간 33주년 기념소설

꿈틀대는 쥐를 만세 부르듯 들고 있는 천수
그의 입과 손엔 피가 묻었고, 한쪽 손엔 쥐똥이 낭패스럽게…


  쥐똥을 천수에게 건넸다. “먹어” 예의 그러하듯 그가 쥐똥을 바라보고 코, 귀에 가까이 가져갔다. “먹어” 물을 내밀었다. 나는 집요하게 그를 지켜보았다. 묘한 긴장감으로 몸이 떨렸다. “먹어” 천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그가 나를 뜨악하게 쳐다보더니 쥐똥을 버렸다. 숨을 죽였다. 이미 웃을 기회를 놓쳤다. 그러자 그의 행동이 내 눈에는 거칠게 내던지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힘껏 그의 따귀를 갈겼다. 어쩌면 그가 정신박약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섭도록 가슴을 후볐다.

  “쥐약 다 놓았느냐?”
  “조용히 말씀하세요.”
  먼저 아버지에게 핀잔을 준다.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댄다. 그욱. 딸꾹질이 나온다. 천수가 들을까봐 겁이 난다.
  감나무 아래 앉아있는 천수가 히물쩍 웃는다. 손을 놀려 땅을 파헤치고 있다. 쥐약을 먹어도 저럴까.
  동생이 하던 짓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손으로 목을 툭툭 친다. 마냥 기분이 좋을 때 하는 짓이다. 다시 땅을 파헤친다.
  “잡았냐?”
  천수에게 소리친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뒤돌아보는 그의 얼굴에 유난히 햇살이 쏟아진다. 그욱. 다시 딸꾹질이 나온다. 지금도 그는 땅강아지, 돼지벌레, 지렁이 따위를 잡고 있을 것이다.
  “동생 잘 감시해라!”
  아버지의 거듭되는 염려가 수긍이 간다. 천수는 쥐보다 쉽게 유혹에 넘어갈 놈이다.
  “읍내에 다녀와야 하는데요.”
  사뭇 공손히 말한다.
  “뭐하러?”
  읍내에 가게가 있다.
  “어머니가 오라구 했어요.”
  어머니, 어머니를 어머니라 불러야 할 때 어영부영하면 아버지의 이맛살이 찌푸려지고 이내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머니는 계모다.
  “그럼 동생 방에다 가두고 나가.”
  “알겠어요.”
  다 계획된 일이다.
  그러나 동생의 탄탄한 잔등이를 바라보면 가슴이 절구질을 한다. 집안에 내려앉은 어둠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식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환한 게 천수의 얼굴이다.
  천수만은 영원히 그 밝은 웃음을 잃지 않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모진 마음으로 가슴을 압박하는 검은 손을 밀쳐낸다. 그래도 뇌리 속에 도깨비불처럼 남아 있는, 천수가 쥐고 있던 사진이 자꾸만 떠오른다. 애꾸. 다 건강하지만 단 한 곳 썩어있는 내 눈 마냥 집안의 어둠이 뿌리 깊다. 어제도 늘씬 두들겨 맞았다.
  “학교도 다니지 말앗!”
  쥐어 박히는 것은 별거 아니었다. 그러나 살천스러운 계모의 눈빛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쭈뼛쭈뼛 소름이 돋았다. 물론 계모는 내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아이인줄로만 알았다. 읍내에 가서 기차를 타려고 생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계모는 내가 천수를 병신으로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 못된 버릇을 고쳐 놓겠다.”
  이를 테면 타협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마지막 미안함을 감추려는 계모의 성의 표시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제 껍질 속에 움츠린 달팽이 같이 꼼짝 안했다.
  “밥을 굶을래? 천수를 잘 돌볼래?”
  어차피 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묵묵히 화투로 패를 떼고 있는 아버지가 더 괘씸했다. 밥을 굶는다고 하면 협상이 결렬될게 뻔했다.
  “천수를 돌보겠어요.”
  “좋아, 그러면 그렇게 해.”
  “그렇다고 종일 천수 뒤만…”
  “알겠어, 못난 꼴을 보이지 말게만 하란 말야.”
  “그래가지고 천수가…”
  똑똑해지는 것도, 감춰지는 것도 아닐 텐데…, 라는 말을 잇새에 부볐다. 또 다른 위기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천수가 시궁창에 빠졌듯이, 나는 계모 앞에서 사진으로 연유되었던 늪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약속하지.”
  계모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뒤로 벌렁 자빠질 뻔 했다. 손가락을 잡자, 마치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이었다.
  “내일 가게에 와라.”
  계모는 시장에서 잡화상을 하고 있었다.
  읍내에 나갈 준비를 한다. 다시 아버지가 묻는다.
  “다락에도 놓았느냐?”
  “예, 그윽”
  웃음이나올 뻔한 목젖을 딸꾹질이 막는다.
  “천수야, 아무것도 주워 먹지 말아!”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함으로써 불안감을 감춘다. 항상 두 살 터울의 천수를 애지중지하는 아버지에게 확인시켜둘 필요가 있었다.
  “혀엉!”
  자물통 채우는 소리에 천수가 금새 울먹였다. 언제나 그랬다.
  “얌전히 있어!”
  그때마다 천수는 다락을 올라갔고 천장 쥐구멍을 뒤졌다. 그욱. 나의 왼쪽 눈알에 박힌 하얀 점이 놀림감이 라면, 아예 천수는 갖다 버리는 편이 나았다. 살똥스러운 계모. 그런 계모에게 욕설이 튀어나올라치면 아버지까지 가세하여 나를 거의 초죽음으로 만들었다. 그럴 때 아버지의 표정에는 어떤 서글픔이나 초조함이 담겨있었다. 계모는 우리의 가족 위에 군림했다. 계모에게 괴로움을 주고 싶었다. 계모에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나 혼자였다. 나의 내부에서 자리 잡은 응어리가 노박이로 잉걸불로 남았다.
  계모가 천수를 가장 아낀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그 순간, 또래 아이들 가운데서 제일 많이 뱀을 잡은 내가 덜컥 겁을 먹었다. 뱀꼬리를 잡고 맴을 돌리는 것과는 또 달랐다. 마침내 나는 계모를 골탕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인광이 번뜩이는 밤중에 공동묘지 한 복판에서 막대기를 뽑아온 적이 있었다. 추종하는 아이들이 환호 속에서 나는 간이 부어 있었다. 나는 계모에게 두들겨 맞을수록 아이들에게는 더욱 극성을 떨었다. 나는 악바리가 되어 갔다.
  한 번은 우리 악동들이 함께 모험에 나섰다. 천수도 부득불 따라 나섰다. 구름마저 잔뜩 낀 음산한 밤이었다. 공동묘지에 귀신을 잡으러 가자가 내가 제의 했다. 멈칫하면서도 내색을 못하는 아이들이 모두 파랗게 질려 있었다. 산 입구에 서 있는 둥구나무가 기이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예의 도깨비불이 나타났다. 한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아무도 동요의 빛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혀엉!”
  천수였다. 데리고 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하긴 그가 졸도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빨리 가자!”
  나는 강행군을 명령했다. 바들바들 떠는 천수를 한 방 갈겼다. 그는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울기 시작했다.
  “그만 돌아가자.”
  한 아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모두 숨을 죽였다.
  “누구얏!”
  약간은 겁에 질려있는 나의 목소리가 아이들을 더 압도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우리는 주저앉은 천수를 남겨둔 채 묘지로 접근했다. 인광이 흐릿하게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무서움을 위장했다.
  “빨리 박앗. 너무 시간을 끌면 귀신이 발광한다.”
  도깨비불들이 우릴 에워싸고 묘지끝어림에서 춤추었다. 그래도 우린 무덤 위에 말뚝 하나씩을 박았다. 금세 박아놓은 말뚝 위에도 도깨비불이 앉아 있었다. 흐gm. 우린 산을 허겁지겁 내려오면서 우리들의 용맹스러움을 자랑했다.
  “우린 귀신 잡은 용사다.”
  “귀신이 마구 울던데, 살려달래문서.”
  “말뚝을 박는데 막 잡아당기더라구.”
  우리들은 동료들의 경험담을 모두 믿었다. 실감나지 않은 모험을 자랑하려면 그런 말로도 부족했다.
  버려둔 천수가 까무라쳐 있었다. 우리는 그를 업고 내려왔다. 그는 마을에 다 와서야 의식이 깨어났다.
  “무서워, 무서워…”
  천수가 잠꼬대하듯 헛소리를 하였다. 아무도 그를 겁쟁이라고 놀릴 틈도 없이, 그는 그 이후로 죽 앓아누웠다.
  어른들 사이에서 야단이 났다. 마을이 술렁거렸다. 누군가 불었다. 갈이 공동묘지에 갔던 용사들은 집안에 감금되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불려가 진창 맞고 오랫동안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벌을 섰다. 나는 아이들에게 빨갛게 부어오른 회초리 자욱을 내보이며 힐힐 웃었다.
  “이사갑시다. 읍내에 살면 장사하기도 더 편할 거 아니요?”
  “장사까지 망치게요.”
  계모가 아버지의 말을 일축했다.
  이즈음 굼뜨던 천수의 행동이 눈에 띄게 이상해졌다. 좀 모자란다고나 할까. 그 웃음부터가 그랬다. 차츰 계모의 화풀이가 나에게 쏟아졌고 아버지는 아예 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말을 안 들으면 발목댕이를 분질러 놓겠어.”
  방과 후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엄명을 내렸다. 아버지도 천수의 변화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에게 잘못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점점 아이들 만나기도 힘들어졌다. 참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칭칭대는 등신 천수하고나 어울리려니 답답하고 좀이 쑤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혀엉!”
  “야아, 병신 새끼야.”
  오직 하나뿐인 나의 대답이었다. 홧김에 동생을 쥐어박기 일쑤였다. 그즈음 천수가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나 잘 따랐다. 그 예 길을 잃고 헤매는 적이 많아졌다. 요행히 마을에서 멀리 벗어나는 적은 없었다. 대개는 사람들이 천수를 집에 데려다 주었지만 나는 늘 그를 찾아다녀야 했고, 그럴 때마다 계모에게 구박을 맞았다.
  “형!”
  “저리 꺼져”
  함께 놀아주기를 바라며 빙긋이 웃는 천수를 방에 가둬놓고 꼼짝 못하게 했다. 그러나 매양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천수를 길들일 필요를 느꼈다. 결코 그에게서 귀엽다거나 흥미를 느낄만한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조금만 정답게 대해주면 해죽해죽 웃었다.
  재미가 없었다. 잠을 잤다. 어린애처럼 방바닥에서 뒹굴며 무작정 잠 속에 빠졌다.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집안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다. 간혹 누룽지나 강정, 그리고 재수가 좋을 때는 과자부스러기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군입질할 것은 곧 바닥이 났다. 그러면 괜히 혼자서 구시렁거리다가 욕을 해대고 그러고도 심심해지면 학교에서 배운 노래로부터 아이들과 함께 부르던 유행가 따위를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그러나 노래도 곧 바닥이 났고 언제나 그 짓만 되풀이 할 수도 없었다.
  오랫동안 누려왔던 골목대장 지위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러자 이런 저런 헛생각이 들었다. 천장에서 우당탕거리는 쥐가 반주를 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듯, 나는 어디서 주워온지도 모를 놈일까. 왜 아버지는 나에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을까. 내 눈알에는 어찌해서 하얀 점이 박혔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를 일투성이였다. 무언가 근본부터가 잘못되었다. 그렇다고 그런 몽상에 오래 젖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상상력은 그렇게 길게 뻗어나가지 못했고, 이내 피곤하고 귀찮아졌다. 그래도 방안의 어둠에 길들여지면서 상상에 대한 호기심은 날로 늘어갔다. 다른 것보다도 나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놀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주웠는지 천수가 사지니 한 장을 들고서 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계모와 아버지의 모든 태도들. 사진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파리똥이 내려앉은 오래된 사진이었다.
  “이 사진 어디서 주웠니?”
  “저기”
  천수가 다락을 가리켰다. 왜 이제야 다락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나는 의아했다.
  결혼식 사진이었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신랑이었다. 신부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 뒤로 둘러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들 낯설었지만, 내 또래 꼬마로부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까지 있는 게 틀림없이 친지들의 사진이었다. 좀 자세히 들여다보던 나는 계모를 발견하고 덜컥 충격을 받았다. 계모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신부였더라면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계모는 친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사진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예쁘게 단장한 신부가 계모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복잡한 사건이 사진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사진을 얼른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거 내꺼야.”
  “이 새끼가!”
  나는 그를 쥐어박으려다 말고 아껴둔 누룽지를 건넸다. 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벽장문을 열었다. 사진의 다른 흔적을 기대하는 것을 떠나 다락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충분하고도 남았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그 동안 왜 다락을 뒤져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구식 옷장, 선풍기, 집에서 담은 술 등, 꽤는 소중한 물건들이 먼지에 덮이고 거미줄이 쳐진 채 쌓여 있었다.
  벽장문을 열었을 때의 경이로움은 언제나 새로웠다. 그때마다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헌책 사이에서, 옷장 근처에서, 콩이 든 마대에서 쥐가 뛰쳐나오는 섬뜩함만 빼놓는다면, 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끼니를 다 잊었다. 서까래에 매달린 메주 썩는 냄새가 조금은 음산하도록 퀴퀴하여서 보다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렇게 다락에 익숙하여지면서 나는 집안에 쥐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기야 천장에 나 있는 쥐구멍도 발견했다. 쥐구멍은 다락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다. 더러 쥐구멍에서 주먹만한 쥐가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다락에서의 나이 놀이는 더욱 은밀해졌다.
  기실 쥐는 계모가 짜증내듯 그렇게 흉측한 동물은 아니었다.
  천장에서 우당탕거리는 게 탈이긴 했지만, 방에 갇혀 있으면 그 소리만으로도 초등학교 넓은 운동장이 떠올랐고, 질주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조금은 외로움이 달래졌다. 아무튼 다락은 보물섬과 마찬가지로 잔뜩 나의 흥미를 돋우었다. 나는 천수에게 감사했다. 그것은 집을 지키면서 느낀 최초의 만족감이었다.
  또 다른 사진의 비밀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손에 걸려드는 것은 쥐똥뿐이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차츰 천수에게 정감이 갔다.
  천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공통점이라고는 계모가 싫어하는 쥐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밖에 없었다. 그가 일을 저지르면 즉각 나한테 반응이 온다는 것을 나는 항시 염두에 두었다.
  “그만 쳐먹어라. 살만 디룩디룩 쪄가지고”
  나의 거친 음성은 힐책보다는 애정 쪽에 가까웠다. 나는 천수를 살폈다. 덩치는 나보다 큰 그가 미련스럽기는 마을을 쏘다니는 미친 사람보다 더 했다. 점점 그를 감시하고 어르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한시도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심심하면 말썽을 피웠다.
  적어도 천수가 일을 저지를 때는 나보다 훨씬 행복했다. 그건 아버지가 감싸고, 계모가 맛있는 것을 많이 주어서 그렇게 보인 게 아니었다. 그는 거의 신비로운 눈초리를 하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고 다녔다. 그는 재미있는 놀이를 곧잘 발견해냈다.
  뒤뜰에 맨드라미가 피어 있었다. 어슬렁거리던 천수가 우뚝 멈추어 서서 볼에 함뿍 웃음을 담았다. 나는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한 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차라리 그의 표정은, 본다기보다는 느끼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터였다. 나는 숨을 죽였다. 당장 무슨 일이 있을 건더기도 없었지만 그의 움직임에 사뭇 등등한 기운이 돌았다. 권총을 뽑아들기 직전의 서부사나이처럼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는 듯한 천수를 보며 나는 아연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가 닭벼슬 같은 꽃을 어루만졌다. 그는 온통 맨드라미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가 꽃을 볼에 부볐다. 냄새를 맡아보고, 무슨 소리라도 들으려는 양 꽃을 귀에 갖다 댔다. 그러더니 무슨 말인가 중얼거렸다. 마치 뜨거운 국화빵을 손에 든 아이처럼 이리저리 손을 놀리면서 군침을 삼키는 흡족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천수의 태도가 돌변했다. 꽃을 꺾었다. 그리고는 손아귀에 움켜주어서 꽃을 으스러뜨렸다. 몹시 화난 표정이었다. 그는 나폭하게 꽃을 물어뜯었다.
  “뭐 하니?”
  “배고파”
  천수는 곧 얼굴에 환한 웃음을 되살리며 언제 그랬냐는 양 다시 주위를 뚤레뚤레 살폈다. 나는 한 동안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며 넋이 빠져있었다. 천수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배고파’라는 말을 되뇌곤 했다.
  내가 나무라지 않자 천수는 안도감이 느껴지나 보았다. 그가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코와 입에 꽃가루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배시시 웃었다. 손의 따뜻한 감촉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혀엉!”
  “그가 목을 툭툭 쳤다.
  “이거 먹어”
  꿀을 한 숟갈 훔쳐다가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는 수저를 물고 폴짝폴짝 뛰었다.
  그 후로 나는 천수의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는 내가 주는 것이면 다 받아먹었다. 땡감이나 날 옥수수까지 아귀아귀 씹어 삼켰다. 천수는 그 만큼 나를 신뢰하게 되었고, 보다 잘 따르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주었더라도 먹었을 것이다.
  키우던 토끼 한 마리를 천수에게 주었다. 끼야. 토끼를 조심스럽게 받아 든 그가 기이한 함성을 내질렀다. 한 동안 토끼의 빨간 눈을 쳐다보더니 다시 손가락 끝으로 토끼의 털을 구석구석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토끼를 가슴에 안고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이젠 토끼집에 갖다 넣자.”
  “싫어”
  천수는 토끼를 놓지 않았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토끼를 더 힘껏 안으며 뒷걸음질 쳤다.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는 온 종일 토끼를  쓰다듬고 있었다.
  하루도 못가서 토끼는 결국 목이 부러진 채 담벼락에 패대기쳐져 있었다. 천수는 자곡 귀여운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생명체를 손끝으로 확인하길 즐겼다. 아무런 악의 없이 그가 나의 짓누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 것은 그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천수와의 놀이는 대개가 다락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곧잘 심부름도 해냈다. 그도 다락의 물건들을 어느 정도 꿰고 있어서 시키면 대체로 가져올 줄 알았다.
  천수의 지능지수는 얼마쯤이나 될까? 동생을 시험해 보고 싶은 장난기가 동한 것은 천장 쥐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한웅큼 집히는 쥐똥과 함께 우발적으로 일어났다.
  쥐똥을 천수에게 건넸다. 먹어. 예의 그러하듯 그가 쥐똥을 바라보고, 코, 귀에 가까이 가져갔다. 먹어. 물을 내밀었다.
  나는 집요하게 그를 지켜보았다. 묘한 긴장감으로 몸이 떨렸다. 먹어. 천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그가 나를 뜨악하게 쳐다보더니 쥐똥을 버렸다. 숨을 죽였다. 이미 웃을 기회를 놓쳤다. 그러자 그의 행동이 내 눈에는 거칠게 내던지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힘껏 그의 따귀를 갈겼다. 어쩌면 그가 정신박약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섭도록 가슴을 후볐다. 나는 발작적으로 그를 때렸다. 갑자기 천수가 덤벼들어 나를 껴안았다. 억센 힘이었다. 담벼락에 패대기쳐진 토끼가 생각났다.
  “이거 안 놓을래!”
  “혀엉, 아파”
  천수의 힘을 느끼며 나는 계모의 눈초리에서 뿜는 살의를 떠올렸다. 식구들에게 대한 적대감이 동생에게 쏟아졌다. 이때 결정적으로 천수에 대한 흉계를 계획했다. 언젠가는 가의 억센 힘이 나의 목을 누를 것만 같았다.
  다락에 드러누워서 음모를 성숙시켜갔다. 결코 천수가 지진아는 아니었다. 그의 몸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고, 손아귀 힘은 더욱 세어졌다.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이 불안하여 그가 모든 면에서 거대해져 보이는 줄 몰랐다. 나는 애꾸였다. 천장에서 쥐들이 우당탕거렸다.
  천수가 쥐똥을 거부한 이후로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더 친절해졌다.
  어느 물건이든지, 좋고 맛있는 것이면 그에게 갖다 주었다. 나는 흐흐 웃었다. 나는 이미 쥐구멍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찾아 봐!”
  그에게 먹을 것을 보여주고 다락 어느 구석에 감추었다. 그는 더디기는 해도 그것을 찾아내었다. 물론 처음에는 찾기 쉬운 곳에 숨겼다. 그리고는 점점 찾기 힘든 곳에 감추었다. 옷장 밑이라든가, 도리와 서까래 사이 같은 곳은 어지간해서는 예측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나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갔다.
  “제발 쥐약 좀 놓아요.”
  “알았대두.”
  “말로만 그러지 말고요.”
  벌써 몇 번째 계모는 성화를 부렸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미적거렸는데, 계모의 극성이 더욱 심해질게 뻔했다. 그러면 마침내 아버지는 쥐약을 놓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물건 찾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나는 더 숨길 곳을 찾지 못했다.
  쥐구멍에다 메뚜기볶음을 감추었다. 반쯤은 쥐가 먹은 것을 천수가 찾아내어 게걸스럽게 먹었다. 나는 매일 먹을 것을 쥐구멍에다가 집어넣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쥐구멍을 뒤졌다. 천장의 종이가 헤져서 너덜거렸다. 아직까지 천수가 온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쥐약 놓자!”
  마침내 아버지가 약을 사왔다. 그래도 결행을 하기에는 너무 두려워서 망설여졌다. 그러나 전날 밤 계모와의 타협을 잊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천수가 영원토록 밝은 모습 환한 웃음을 간직하길 바랐다. 나는 태연한 척 했지만 기실 오줌을 질금거렸다. 마음을 모질게 수습하고 아버지를 거들었다. 쥐약을 밥에 비빈 후, 멸치 두 마리씩을 갈라놓은 먹이에다 미끼로 올려놓았다.
  나는 메뚜기를 볶았다. 쥐는 메뚜기를 좋아했다. 천수는 곁에서 계속 침을 흘리고 있었다.
  “잘 갖다 놓아라”
  나는 쥐약 놓는 일에 흠뻑 빠져 들었다. 집안의  은밀한 장소는 거의 알고 있었다. 낡은 책장을 찢어서 버무려진 쥐약을 종이마다 골고루 놓고 다녔다.
  “다락에도 놓아라”
  흐흐. 나는 마구 웃었다. 단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일 테다. 아버지는 내가 뛰어다니는 모습이 흡족한가 보였다.
  “방에는요?”
  “관둬. 동생이 먹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알겠어요.”
  메뚜기볶음에 쥐약을 뿌렸다. 그리고는 다락 쥐구멍에 갖다 놓았다.
  “왔구나”
  가게에는 온갖 물건들이 있다. 장사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계모가 한참이나 지나서 아는 체 한다. 슬쩍 오징어 발목을 떼어 먹는다.
  “쥐약 놓았어요.”
  “그래 잘 했구나”
  어젯밤에 그렇게 때리고선 계모는 싹싹한 음성으로 말한다. 하긴 시장사람들도 계모가 나에게 더 없이 좋은 어머니인줄 안다. 아버지는 읍내에 일이 있어도 가게에 들르지 않았다. 식구들 중에서 나만 가끔 시장에 들를 뿐이었다. 그것은 아버지나 천수보다는 내가 계모에게 망신을 덜 주기에 그러는 것이 틀림없었다. 동공에 박힌 하얀 점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오히려 나는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장사람들이 대수롭지 않았다.
  “왜 그렇게 힘이 없니? 빵이나 하나 먹어라.”
  나는 앙꼬빵을 덥석 베어 물면서 계모의 얼굴표정을 살펴보았다. 여느 때 같으면 입에 살살 녹을 텐데 그렇지가 못하다.
  다락의 주구멍에는 다른 곳보다 쥐약을 듬뿍 놓았다. 천수가 메뚜기볶음을 찾아냈을까. 쥐들이 먼저 먹어버리지나 않았을까. 여자 손님이 힐끔 나를 쳐다보며 몸서리친다. 여자의 눈알에 대꼬챙이라도 찔러주고 싶다.
  여자 손님이 나가자 가게에는 계모와 나 둘만 남았다.
  “여기 와서 좀 앉거라.”
  의자를 가리키며 계모가 두루 물건들을 살핀다.
  “빨리 갈래요. 쥐도 치워야 하구…”
  “앉으래두!”
  계모의 세모꼴로 치켜뜬 눈앞에서는 꼼짝 할 수 없다. 엉거주춤 앉는다. 사진 속에서 계모를 발견 한 것도 그 눈매 때문이었다. 사진 속의 신부가 누구일까? 왜 그 많은 친척들이 한 번도 집에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들을 만나보고 싶다. 어머니, 계모, 이모… 되는대로 웅얼거리다가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 많이 컸구나. 그간 에미가 너무 심하게 굴었지?”
  “……”
  “애써 돈을 버는 것도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서란다. 열심히 공부해라”
  공부해서 뭐해요, 라는 말이 입 언저리에서 맴돌았지만, 나는 얌전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만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는 것을,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라고 해야 할까.
  “뭐가 되고 싶니?”
  “권투선수!”
  되는대로 내뱉는다.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기실 있다 해도 계모에게 말해 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권투선수라고 못할 것도 없다. 아무리 덩치 큰 아이더라도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자 마치 권투선수가 꿈인양 생각이 들고, 천수에 대한 불안감도 조금 가라앉았다.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니?”
  “아뇨.”
  고집을 부려본다. 사실 나에게 권투선수건 의사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계모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가게를 빠져나갈 기회를 놓쳤다. 집으로 달려가고 싶을 뿐이었다.
  “요즘 많이 착해졌더구나. 항상 천수에게 잘해 주어라.”
  “알겠어요.”
  계모의 입에서 튀어나온 ‘천수’를 듣고 화들짝 놀란다. 마지못해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계모가 손을 뻗어 나의 볼을 어루만진다. 나는 겉으로 태연한 척 하면서도 질겁한다. 땀이 밴 계모의 손이 당혹스럽다.
  “곧 눈을 고쳐줄게”
  가게를 나온다.
  파란 하늘이다. 악마의 손길 같은 햇빛이 쏟아진다. 빛은 빛인데 갈증을 해소시키는 빛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빛이다. 햇빛이 사금파리조각처럼 따갑다. 걸음을 내달았다.
  “죽은 쥐는 모아놓아라.”
    집 부근에서 마주친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어 세운다. 천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색도 없다. 아버지를 노려본다. 머릿속에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혼란하다. 혼자서 집에 들어가야 된다는 사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분별력을 잃게 만들었다.
  “내 진짜 어머닌 어디 있어요?”
  눈물이 머금은 떨린 목소리였다.
  “뭐야?”
  아버지가 흠칫 놀란다.
  “확실히 말해주세요.”
  “음-”
  아버지가 쩔쩔맸다.
  “말해주세요.”
  “네가 좀 더 크면 자세히 이야기 해주겠다만….”
  어머니, 계모, 이모, 그리고 아버지. 나는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꼭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자 다시 천수의 모습이 절박하게 떠올랐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더러 쥐들의 주검이 눈에 띄었다. 아직 살아있는 놈들은 술 먹은 듯 꿈틀댄다. 나는 방문에 단단히 매어달린 자물통을 보았다. 동생이 방안에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뒤뜰을 서성거리다간 볼풍나게 광문을 여닫는다. 방문을 쉽게 열 수가 없다.
  자물쇠에 열쇠를 꽂는다. 손끝이 바르르 떨린다.
  방문을 연다.
  푸른빛을 띈 어둠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방안의 어둠이 목을 조른다. 천수가 웃고 있다. 그의 웃음이 땀이 밴 나의 얼굴을 핥는다. 천수의 모습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방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서 있었다. 쥐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천수는 꿈틀거리는 쥐를 손에 들고 있었다. 마치 만세를 부르듯 두 손을 들며, 천수가 나를 반겼다.
  “천수야!”
  그 소린 나지막했다. 꼬리가 떼어진 놈, 머리가 으깨진 놈, 눈알이 패인 놈, 나는 그런 쥐를 보면서, 이어 천수의 손과 입에 피를 보았다. 그의 한쪽 손에는 쥐똥이 낭패스럽게 가득했다. 끼야. 천수가 소리쳤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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