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신문 그 못다한 말 접어두고 - 퇴임기자의 변

記者(기자)는 中和劑(중화제)역할


  길을 걷다보니 다시 原點(원점)에 되돌아와 섰다. 卒業(졸업) 그리고 退任(퇴임)-젊은 놈에게 씌워진 당치 않은 굴레다.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 이 무거운 굴레가 너무도 조그마한 보람을 덮어버린다.
  강의마저 거의 외면하고 열이 나게 쏴 다녔던 大學生活(대학생활), 핑계 좋은 記者(기자). 처음에는 어린애 시장가는 格(격)이라서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내내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싫증을 달랬다.
  記者(기자)에의 매력, 그것은 바로 소녀의 미소와 같은 것. 그것 때문에 난 大學(대학)을 다닌건지 신문사를 다닌건지 지금도 분간키 어렵다. 시시하기만한 學士學位(학사학위)보다는 ‘新聞社(신문사)를 졸업한’ 얼룩진 퇴역기자의 역광이 어처구니없게도 더욱 자랑스럽다.
  거기엔 진한 反抗(반항)과 숱한 낭만이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記者根性(기자근성)은 스스로 중립을 포기하고 政治記者(정치기자)를 자처하리만큼 나를 불만투성이로 얼버무려 놓았다.
  이제 우스꽝스런 푸념밖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없다. 내가 신문을 키웠든 신문사품에서 내가 자랐든 따질 것도 못되고 학생이기 전에 記者(기자)냐, 記者(기자)이기 전에 학생이냐는 것도 한때 소화제 구실밖에 못했다.
  부정이 있다면 記者(기자)가 밝혀야한다고 핏대 내던 올챙이의 항변도 메아리처럼 사라져갔다.
  어리석은 부모에겐 건방진 자식들만이 필요하다고 나는 당시 그렇게 믿었다.
  항상 바쁘기만 했던 記者(기자), 학생과 學校(학교)의 틈바구니에서 갖가지 감정을 교묘히 중화시켜야만 했던 記者(기자).
  어두컴컴한 식당을 지나 구석진 방, 거기 신문사 책상 밑에 버려진 원고뭉치처럼 빨간줄 파란줄이 그어진 채 난 이제 버려진 것일까.
  하룻밤만 묵었어야할 목로 酒店(주점)에서 지금까지 턱없이 긴날을 삼켰다.
  바삐 떠나야겠다. 털털한 막걸리가 아쉽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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