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누군가 저를 또 한 번 현실의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눈앞에 존재하는 현실의 모든 實體(실체)가 幻想(환상)으로 보일 때의 그 서글픔……
오늘따라 유난히 無人山中(무인산중)庵子(암자)에서 木魚(목어)를 들고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 諸行無常(제행무상) 製法無我(제법무아)… 皆是虛妄(개시허망), 諸相非相(제상비상)’이라하시며 讀經(독경)하시던 스님의 목소리가 저의 귓전에 구슬피 메아리쳐와 차가운 겨울의 하늘을 한층 더 서럽게 만듭니다.
만면에 미소를 지우시던 선생님의 博士學位論文發表會(박사학위논문발표회)가 엊그제 이고 지난 일년 동안 어름같이 차가운 眞理(진리)를 父子之情(부자지정)으로 뜨겁게 講義(강의)하시던 그 모습 그 순간들이 어제이온데 벌써 幽冥(유명)을 달리 하셨사오니 소털같이 많다던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선생님께서 저희 제자들을 울리 옵니까?
새삼 손때 묻은 선생님의 遺著(유저)가 된 책을 펼쳐보옵니다. 지난해 一學期(일학기) 첫 시간에 하신 말씀은 우연히도 <후리-노트>가 되어 몇 자 옮겨 보옵니다.
“배워서 남 주는 것이 아니오! 언제든지 思索(사색)하고 思考(사고)하시오. 변소에서도 그대로 앉았지 마십시오.
無形的(무형적)인 精神的(정신적)財貨(재화), 이 얼마나 깨끗하고 高貴(고귀)합니까? 우리는 피묻은 高貴(고귀)한 學問(학문)을 파헤쳐 가면서 自我儀式(자아의식)을 갖고 批判(비판)을 하며 主體性(주체성)을 가져야합니다.
글자 한자 두자가 피가 많이 들은 글자요. 듣는 게 能事(능사)가 아니라 豫習(예습)을 하시오. 일생을 두고 두고 해도 어려운 것을 간단히 되겠소? 또 復習(복습)을 해요…
떡장사도 자기가 만든 떡을 하나도 못 먹어요.
여러분 세상에 공짜가 없습니다.
‘클레오파트라’를 보고 싶은 마음 없겠습니까? 아서라 다음에 보지!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글공부를 하려면 그러한 시간을 짜요!” (1967年(년) 3月(월))
眞理(진리)와 항상 함께하시며 피맺힌 學問(학문)을 熱講(열강)하시던 말씀들이 너무도 生生(생생)하여 저 자신 學問(학문)의 姿勢(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으며 깊이깊이 가슴속에 간직해 두겠습니다.
선생님의 가심이 生者必滅(생자필멸)이란 진리와 함께 人生無常(인생무상)의 敎訓(교훈)을 다시금 통감케 하셔서 놀랍고 서러운 마음 어찌 다하겠사옵니다.
이제 서글픔 옛사람의 “生也一片淨雲起(생야일편정운기) 死(사)也(야)一片淨雲滅(일편정운멸) 淨雲自體本無實(정운자체본무실) 死去來亦如然(사거래역여연)”이란 글귀를 되씹으면서 平素(평소)에 주신 敎訓(교훈)과 함께 서럽고 의로운 마음을 달래며 雲霧(운무)속에 쌓인 旅程(여정)에 발을 딛어 보렵니다.
‘人在名(인재명) 虎在皮(호재피)’란 先生(선생)님을 두고 일컬으시는 말씀이온 것 같아 주고 가신 몇권의 책들이 저희들 주위에 함께 있사옵기에 우둔한 弟子(제자)를 또 한 번 깨우쳐주옵니다.
선생님!
고이고이 잠드시옵소서! 沙婆世界(사파세계) 저쪽 西方淨土(서방정토)에 極樂往生(극락왕생)하셔서 無限劫(무한겁)常住(상주) 하시옵소서…

1968年(년) 1月(월) 11日(일)
愚弟子(우제자) 再拜(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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