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에서는 오는 2月(월) 28日(일)에 學士(학사), 碩士(석사) 및 博士學位(박사학위) 授與式(수여식)을 가지게 되었다. 學位(학위)를 授與(수여)하는 학교 당국자나 學位(학위)授與(수여)를 받는 학생들은 다 같이 이 慶賀(경하)스러운 잔치를 앞두고 기쁨과 感激(감격)에 가슴 설레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간다.
  생각건대 이 卒業(졸업)식에서 碩士學位(석사학위) 혹은 學士學位(학사학위)를 授與(수여)받는 학생들은 4년간 또는 그 이상 본교에서 所定(소정)의 학업을 마치고 규정된 시험에 합격하여 영예의 學位(학위)를 받게 되었은즉 오늘날 卒業(졸업)하는 마당에서 입학하던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그 期間(기간)동안에 있었던 기쁜 일 쓰라린 일 다사多難(다난)했던 학원생활을 回顧(회고)할 때 과연 千感萬懷(천만감회) 가슴이 벅찰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이러한 말을 꺼내는 이유는 단순히 학생들의 感傷(감상)을 자극하고 사치스런 祝賀(축하)의 기분을 돋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學士(학사)로서 또는 碩士(석사)로서 業(업)을 마치고 사회에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는 한층 高次元(고차원)의 自覺(자각)과 긍지와 姿勢(자세)가 서있었을 것을 기대하고 그들이 받는 學位(학위)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再認識(재인식)할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大學(대학)이란 진리의 探究(탐구)와 人格(인격)의 도야 個性(개성)의 啓發(계발)을 통하여 국가나 사회의 지도자를 養成輩出(양성배출) 하는 것을 그 사회적 의의로 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 없는 明明白白(명명백백)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간혹 그 의의를 망각하고 설립자는 大學(대학)이란 교육기관을 營利手段(영리수단)으로 이용하고 개인은 값싼 허영심의 滿足手段(만족수단)으로 착각하여 귀중한 세월을 허송하는 경향이 흔히 있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卒業(졸업)식을 앞에 둔 이 마당에서 大學(대학)과 大學(대학)생의 根本(근본)의의를 再反省(재반성)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인생의 짧은 일생에서 大學(대학)의 在學期間(재학기간)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성숙의 一(일)段階(단계)를 劃(획)하는 실로 귀중한 시기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최종적이라고 할 수 있는 期間(기간)동안 학생들은 학문과 지식의 연마와 그 활용방법을 습득하고 지도자로서의 諸般姿勢(제반자세)를 준비하여 사회에 제일보를 내어 디디는 것이니 大學(대학)의 졸업은 실로 인생일대의 重大事(중대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大學(대학)에서 습득 연마한 학문과 지식을 이제 실지로 활용하고 지도역량을 발휘하여 사회에 奉仕(봉사)할 기회가 도래할 것이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회는 그들의 지능과 그 역량이 필요하여 쌍수로써 환영하겠지만 한편 그들을 보는 눈은 지극히 批判的(비판적)이고 냉혹하리라는 것을 각오해야한다.
  大學(대학)에서 각자 어떠한 학업과정을 겪었건 그것을 참작해줄만한 너그러운 사회는 아닌 것이다.
  ‘大學卒業生(대학졸업생)’이란 표준은 모든 면에서 거의 최고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니 그 수준에 미달일 경우 거기에 내려지는 심판은 준엄할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제시하는 지식과 기능은 완전하고 참신하여야하고 그 언어해동은 지식인답게 세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개인이 받는 비판은 곧 그의 장래를 좌우할 것이고 일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修學(수학)한 모교의 명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항시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직장에 나가던 事業(사업)에 投身(투신)하건 학생들은 좁게 개인의 榮達(영달)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항상 국가와 민족의 현실을 냉철히 파악하여 한 사회인으로서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連帶意識(연대의식)을 잊지 말고 處身(처신)하는 것이 곧 大學(대학)을 다닌 의의를 살리는 길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부탁까지에 이를 수 없는 당장 오갈 데 없는 딱한 卒業(졸업)생이 다수 있는 것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다. 現下(현하) 우리나라의 현실로 大學(대학)의 卒業(졸업)생을 전부 흡수할 수 없는 深刻(심각)한 就職難(취직난)의 시대에 大學(대학)을 卒業(졸업)한 학생들은 내일부터 行方(행방)이 막연할 것이고 초조와 불안의 생활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짐작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지성인의 특성은 궁지와 위기에서 그것이 발휘되어야한다. 초조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는 여유 있는 姿勢(자세), 또는 궁지를 타개하여 새로운 活路(활로)를 개척하는 창의성 등은 오직 지성인에게만 기대할 수 있는 특성인 것이다. 비록 就職(취직)전선이 좁다 해도 능력 있는 개인이 死藏(사장)되는 사회는 아닌 것이고 반드시 旣存職場(기존직장)이 아니라도 스스로 자기의 生活場(생활장)을 창조할만한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여 逆境(역경)을 선용하여 행복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 것이다. 東西古今(동서고금)의 偉人(위인)과 大家(대가)들은 대강 불행을 딛고 일어선 용기 있고 슬기로운 사람들이었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大學(대학)에서 도야된 人格(인격)과 啓發(계발)된 個性(개성)은 학생들이 어디에 가서 어떠한 처지에 처하건 그들을 행복으로 이끌고 사회를 발전시킬 터전을 마련할 것이니 학생들의 장래에 끊임없는 영광이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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