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이 어두운 새벽을 열고 굽어지지 않는 참나무가 되리라는…
 

  월광이 싸늘하게 부서지는 10월의 강에 서면, 내 양심 저 밑바닥까지 긁어낸 實體(실체)들이 그렇게 초라하고 작아 보일 수 없다. 지금 메워야 하는 이 원고지의 한칸 한칸들이 이렇게도 무섭게 다가올 줄이야. 지난 6개월은 진실된 나의 터를 닦기엔 너무나 허술하고 어쩌면 아직도 가식의 겉옷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갓 버려진 새끼호랑이가 그 엄청난 절벽을 기어올라 어미를 만날 수 있었던건, 오직 산다는 것에 대한 의지, 그것이었을 게다. 신문사로 통하는 계단도 정확히 몰랐던 아이가 이제 그 보호막을 벗어야 하는건 다시금 새로운 세계로의 버려짐 그것일 테고 新世界(신세계)에서의 내게 주어진 임무는 '眞實(진실)의 펜!'그것이리라.
  난생 처음, 말로만 듣던 그 황홀경(?)이 호화찬란하게 마련될 줄 알았던 신고식이 아현동 어느 낯선 주점에서 거창하게(?) 거행될 때 '강인함'그것을 새겼고, 입사 후 처음 맞는 세미나에서 선혈 같은 東大新聞(동대신문)이 어두운 창고에 갇히게 됐을 때 또다시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쩌다 신기한 진리를 발견할 때면 복잡한 두뇌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가끔씩 자신의 살아있음에 대한 경이를 가질 땐 저만치서 이 마른 계절과 마주한 눈뜬 소경의 무리가, 귀머거리 벙어리들의 무리가 아픔의 실체로 명멸해간다. 오늘, 이 옷을 벗으매, 아직은 작은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이 어두운 새벽을 열고 굽어지지 않는 참나무가 되리라는 다짐으로 일어서고 싶다.
  내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말하는 벙어리와 귀머거리, 소경의 무리를, 그 속에서 발버둥치는 한 정신병자의 썩어빠진 골통, 그러나 정작은 그 무리들 중의 작은 그림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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