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문화적 측면


갈등의 근원적 해소 아닌 일시적 마취
말초감각 자극하는 일회적 소비문화


  최근 몇 년 사이에 스포츠부문의 양적 성장은, 전통적으로 비활동적이며 정체성이 강한 우리의 문화현실 전반에 하나의 충격파였다.
  더구나 대중문화의 창출과 보급을 주도하다시피 하고 있는 전파매체, 특히 텔레비전의 스포츠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과 분배는 엄청난 양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포츠에 대한 전파매체의 이러한 배래는 우리 국민 대중에게 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고 더 나아가 서울 아시안 게임과 국제 올림픽을 맞아 주최국의 국민으로서 스포츠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은 실어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말초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대중문화에 스포츠가 편입되어 일회적인 소비문화로 떨어지고 있음도 간과할 수만은 없는 사실로서, 우리에게 이러한 문화변용의 현실을 보다 분석적이고 심층적으로 바라 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문화 현상 자체가 ‘대중문화를 창출하고 공급하는 기업가의 이윤증대’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더 나아가 ‘기존의 지배현실을 유지하고 재생산 구조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대중문화 비판론자들의 이론을 상기할 필요도 없이 그 역기능이 심각한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스포츠 행위 자체가 집단의식의 창출과 유도는 물론 수많은 관찰자들과 시청자들의 의식 속에서 잠재되어있는 사이 아니라 스포츠 행위, 즉 직회적 갈등과 억압을 이성적인 방법과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직접 뛰거나 관람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카타르시스 시켜 버린다는 측면에서 갈등과 억압이 근본적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닌 일시적인 마취상태로 잠재화시켜, 갈등과 억압의 모순관계를 온존시키고 다만 표출되는 것을 일시적으로 연장시키는데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포츠행동이 이렇게 왜곡되어 나타날 때 그것에 영향을 받는 개인이나 집단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그것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특히 그 악영향에 무비판적으로 매몰될 수밖에 없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는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한 문화양태에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이ㄹ들은 선수나 스포츠 집단의 전형을 쉽게 추구해 버린다.
  쉬운 예로 어느 프로야구단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면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 준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돈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페셔널 선수와 팀이 지향하는 스포츠 행위로는 그 성취가 불가능하다. 왜? 상업주의 스포츠는 오직 자본논리에 충실한 경제적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말로 한다면 그들의 스포츠 행동에는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캐치프레이즈 뒤에는 어린이들에게 꿈이나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최대 목표인 경제적 수요 창출과 더 나아가 잉여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마추어 스포츠현실은 어떠한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역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아마추어 스포츠와 선수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면 것은 그 선수가 집단의 스포츠 행동이 프로 스포츠와는 달리 순수한 아마추어 스포츠를 지향할 때만 가능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국민학교에서부터 대학, 실업팀에 이르기까지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이 들어가고 또 그 선수를 원하는 팀과 가족, 학교 간의 이해관계와 얽혀 선수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사례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아이들이 수없이 모아놓은 선수들의 모습이 담긴 딱지나 그림,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책받침 속에 끼어있는 선수들의 사진, 대기업의 엘리트사원들의 귓밥 위에 꽂혀있는 이어폰, 그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긴박감 넘치는 아나운서의 중계 목소리를 이 시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그리고 텔레비전에 의해 대중문화 속에서도 가장 많은 총애를 받는 스포츠는 우리의 사회현실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가.
  정말 지배문화의 재생산을 위해 스포츠가 이용되는 것인가. 아니면 스포츠의 저변확대와 수용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스포츠라는 것은 관람만으로 충분한 사회적 기능을 하는 것인가. 진정한 스포츠 행위란 관람이나 선수에 대한 기록이나 룰에 대한 상식을 숙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직접 뛰는 것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위와 같은 물음을 자기 자신과 우리의 스포츠현실 앞에 준엄이 요구해야 될 것이다.
  흔히 축구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과 광적인 심취는 그 나라들의 사회현실과 그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음을 가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축제분위기속에서 축구경기에 열광적으로 매몰되어 가고 있을 때 그 뒤에서는 국민경제를 외국의 빚더미 위에 팽개치고, 수많은 애국시민들이 행방불명되거나 죽음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모르고 그 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축구경기장을 찾아가 소리치고, 욕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나 팀이 연출한 황홀한 경기 모습을 되새기면서 경기장을 빠져나오며 다음 경기를 목메어 기다리는 것의 반복이 아니었는가.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사회와 공동체와 눈물겨운 조국이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