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경제적 측면

指導層(지도층)자각 없이 實效不可(실효불가)
현실 외면한 유치 서민생활 압박
올림픽 聖域化(성역화)는 政治(정치)의혹 유발


  “외국에서 빚을 얻어다 경부고속전철을 꼭 놔야합니까?” 이 말은 올림픽유치에 수훈을 세었다는 어느 재벌의 신문대담기사의 일부다.
  지난 여름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재벌도 때로는 바른말 할 때도 있구나!”하고 적이 감탄했다.
  이 가을 나는 ‘경부고속전철’을 빼고 ‘88서울올림픽’을 넣어 이렇게 뇌까려 본다.
  “걱정 없다면 外債(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全國民(전국민)이 外債節減(외채절감)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마당에 달러나 소요되는 88올림픽을 國力(국력)을 기울여 가면서까지 끝내 감행해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러나 정작 이것을 원고지에다 옮기려니까, 펜을 잡은 손놀림이 그다지 부드럽지 못함이 웬일일까?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당국은 외채누증·부실채권으로 뒤틀리고 있는 경제현상을 놓고 핑크빛 낙관론을 펴다가 무더위가 수그러들면서 톤을 낮추더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자 마침내 외채문제의 심각성을 시인하고 정부자신이 앞장서서 범국민 외채절감·소비절약운동을 벌이겠다 공언했는데 “경제적 부담이 너무 힘겨우니 88올림픽을 이담에 하는 것이 어떻겠소?”하고 진솔하게 툭 털어놓고 말못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이 정도의 말을 하는데도 똑 던질 돌멩이나 쏠 그 무엇이 필요한가? 필요이상의 신중론이나 침묵 미덕론은 상대방을 지나치게 나쁜 존재로 몰아가는 그릇된 論理(논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도대체 바른말을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知性(지성)을 말할 수 있는가? 인류의 歷史(역사)를 통틀어 洋(양)의 東西(동서), 時(시)의 古今(고금)을 막론하고 바른 말하는 것을 척척 들어준 政府(정부)나 市民(시민)이 과연 어디 있단 말인가? 때와 곳을 분별치 못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붙는 것도 나쁘지만 知性(지성)을 자처하는 자들이 꼭 말해야할 때 입 다물고 있는 것은 더욱 민망하고 얄밉다. 이번에 정부당국이 외채절감·소비절약운동을 표방하자 部下言論(부하언론)은 “거봐라 내가 뭐랬더냐”하는 식으로 異口同聲(이구동성)·각종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갖가지 얘기를 다하면서도 정작 내놔야할 “外債危機下(외채위기하) 88서울올림픽 再考論(제고론)”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싹 빠뜨리고 있다.
  내 굳이 그 사연의 曲直(곡직)을 따지자는 건 아니나, 뭔가 뒷맛이 씁쓸하다. ‘88서울올림픽’도 어느덧 聖域(성역)이 되었는가? 聖域(성역)이란 예사사람이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곳, 選良(선양)을 자처하는 祭司長(제사장)이나 獻官(의관)만이 출입할 수 있는 성소나 신전인데,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같은 곳이 聖域(성역)이지 올림피아 平原(평원)의 체육축제가 무슨 성역이었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에도 현대판 성역은 존재했었다. 가령 50년대 政治權力(정치권력)의 카리스마였던 李承晩(이승만)의 칭호라든가(당시 그의 이름 뒤에 ‘博士(박사)’대신에 ‘氏(씨)’를 붙였다가는 혼줄이 났다) 그의 ‘北進統一(북진통일)’에서 북진대신에 平和(평화)라는 말을 썼다가는 사상적 의심을 받아 곤욕을 치렀던 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따위가 성역시 되던 시대는 지나갔고 올림픽과는 그 성격상 거리가 먼 政治的(정치적) 문제이다.
  게다가 88서울올림픽은 大韓民國(대한민국)이 아닌 서울特別市(특별시)라는 지역적 행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經濟的(경제적) 難局(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범국민적 캠페인이 벌어지는 마당에 한 조각 良心(양심)을 빌어 말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올림픽은 아직도 만 3년이나 남은 순수 스포츠잔치 놀음일 뿐 政權(정권)의 運命(운명)에 누를 끼치는 政治聖域(정치성역)이 아니다. 그러니 政局(정국)의 탓만 하지 말고 바른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당국이 스스로 問題(문제)를 제기하고 國民的呼應(정치적호응)을 기대하고 있으니, 이런 때 말 못하면 언제 말하려 하는가?
  돌이켜 보라. 經濟現實(경제현실)을 살펴보면 과연 올림픽 잔치가 될 말인가?
  우리 經濟(경제)는 外債利子(외채이자) 무는데만 GNP(정확히 말하면 GDP가 더 옳다)의 5%를 지불하고 있다. 게다가 또 GNP의 5%를 外債元金(외채원금)갚는데 써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經濟(경제)가 웬만큼 成長(성장)해봤자 이것저것 다 빼내고 나면 外債利子(외채이자) 하나만 물기도 벅차다.
  결국 갚아야할 외채원금은 외채를 새로 들여다 갚아야 하는 지경이다. 따라서 현재의 국민생활수준을 높이는 문제는 제쳐놓고서라도 매년 40만 명에 달하는 새로운 고용인구를 감당할 수 없는 처지다.
  國民生活(국민생활)이나 고용을 늘리려면 외채를 계속 들여와야 한다. 외채문제는 이제 더 할 나위 없이 심각하며, 올해와 내년 사이에 우리는 자칫 외채 때문에 국제적 망신을 당할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 차렸음인지 이번에 당국이 태도를 바꾸어 외채절감 캠페인을 벌이자, 국민들 일각에선 그 많은 外債(외채)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느냐고 수군거리기도 하고, 하물며 外債(외채)가 이토록 위험수위에 이르도록 불어난 것은 高位公職者(고위공직자), 高所得層(고소득층), 不實企業(부실기업)(대부분의 재벌이 여기에 속한다) 등 사회 지도층의 탓이라고 지탄하기도 한다.
  그리고 外債(외채)증가와 관련해서 指導層(지도층) 자신의 觀光性外遊(관광성외유), 外貨(외화) 빼돌리기, 外製選好(외제선호), 奢侈享樂(사치향락)과 그 자녀들의 外遊性(외유성)·逃避性留學(도피성유학) 등을 매섭게 非難(비난)하고 있다. 따라서 外債(외채)절감운동은 外債累增(외채누증)에 앞장섰던 主役(주역)들=指導層(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있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當局(당국)이나 言論(언론)의 주장에는 一理(일리)가 있다고 본다. 外債(외채)를 쌓아올린 者(자)와 外債(외채)를 걱정하는 者(자) 사이에 一體感(일체감)이 형성되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特權層(특권층)은 제쳐놓고 一般國民(일반국민)들만'대상으로 소비절약캠페인 따위나 벌이는 것으로는 오히려 대다수 서민층의 (政府(정부)에 대한 不信(불신)이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자극할 우려가 있고, 나아가 國民的違和感(국민적위화감)을 키우는 결과만 낳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3~4年(년)동안 當局(당국)이 안정화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勤勞者(근로자)·農民(농민)·下位公織者(하위공직자) 등 서민층이 겪어온 고통이 어떠했는지 아는가? 우리는 一過的(일과적)이 아닌 장기적 안목을 갖고 문제의 소재를 정확히 洞察(동찰)해야 한다.
  한마디로 오늘날 經濟的(경제적) 難局(난국)의 진원지는 對外依存的(대외의존적) 經濟基造(경제기조)이고 청산되어야 할 작태는 낭비와 사치다. 지난 84년의 수입실적 3백 64억달러의 구성을 훑어보면, 수출용원자재수입은 1백 26억달러(구성비 41.1%) 원유 58억달러(18.8%), 원목·원당·펄프 등 38억달러(12.4%), 양곡17억달러(5.6%), 기계·화공약품류 58억달러(19.0%), 그리고 소비재 10억달러(3.1%)로 되어있다. 따라서 외제 상품수입액의 15배나 되는 금액이 우리의 생활용품제조에 쓰이고, 또 그만큼이 수출상품제조에 쓰이는 대외의존적 경제구조 밑에서 덮어놓고 수입억제니 외제 안 쓰기 운동이 얼마나 공허한 소리인가? 소박한 소비절약을 해동원리로 지키는 사회적 계층이 어디 존재하는가.
  對外依存的機造(대외의존적기조) 속에서는 當局(당국)이 가령 혼분식 장려캠페인을 벌릴 경우 그 것은 國民들더러 수입원가비 중 76.6%의 밀가루와 71.0%의 설탕, 그리고 25.2%의 酪農製品(낙농제품)의 대량소비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는다는데 있다. 돈 없는 학생들이 즐겨먹는 라면의 42%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穀物輸入(곡물수입)의 60%가 사료로 쓰이는 나라에서 國産(국산)쇠고기와 수입쇠고기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는가? 게다가 우리 경제는 투자의 효율성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總投資(총투자)의 84.5%가 비조업부문에, 그중에서 46.2%가 서비스부문에 투자되었던 점을 상기할 때, 이처럼 유흥비에 대한 투자나 상업용 빌딩 같은 비생산적 투자가 일부계층의 사치성 소비풍조와 발맞춰 기승을 부리는 경제풍토의 근본적 개선이 없다면 해외여행 및 유학생경비로 약 30억달러(80~84말)나 유출되고 TV중계료로 850만달러(83.8~84.7) 프로 복서·가수·악단초청 등에 350만달러(같은 기간)나 물쓰듯 낭비하는 풍토의 쇄신이 없다면 '캠페인'을 몇백번 벌인들 무슨 실효를 거두겠는가?
  사태가 이쯤 이르렀는데, 10억달러의 외채의 추가부담을 안겨줄 올림픽잔치를 꼭 치러야 하겠는가? 産業戰(산업전)은 아닌 非産業的筋肉(비산업적근육)을 양산해서, 그리고 輸入原價比重(수입원가비중) 44.9%의 시멘트와 75%의 합판으로 올림픽스타디움을 세워 國威(국위)를 선양하자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東洋初有(동양초유)의 造形(조형)을 구가하는 빌딩을 무리해서 세우고 종말을 맞을 國際商社(국제상사)한테서 우리는 무언가 교훈을 얻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올림픽은 아직 3년이나 남았다.
  政府(정부)는 서울시에, 國會(국회)는 政府(정부)에, 그리고 國民(국민)은 國會(국회)에 對(대)하여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참마음’으로 돌아가 當面(당면)한 外債危機(외채위기)를 打開(타개)할 때까지 ‘88서울올림픽’을 미루자고 바른말을 해야 하지 않는가? 혹시 國威損傷(국위손상)을 걱정할지 모르나, 그건 천만의 말씀 오히려 그 反對(반대)의 效果(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요 2, 3년 사이에 우리 經濟(경제)를 誇大評價(과대평가)하면서 各種(각종) 保護主義的(보호주의적)제재와 輸入開放(수입개방)을 强要(강요)하다시피 促求(촉구)하는 先進國(선진국)의 熱火(열화)같은 채근질을 鎭靜(진정)시킬 수 있는 特效良藥(특효양약)이 될 수도 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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